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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길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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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전 1991년 11월 117호


짧은 가을의 저녁 노을이 산꼭대기 위로 사라지고 총총한 별들이 얼굴을 내는 자작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땀으로 피워 내었던 감자꽃의 웃음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가올 산은 자연의 정연한 질서를 대변하는 양 고요의 품속에서 순결한 생명을 또 하나 잉태하면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황토의 서러움으로 몸을 씻은 자작나무는 별빛 이슬에 눈물처럼 흐르는 그리움을 닦으며 숲을 열병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째 거닐던 자작나무 숲길, 그가 손을 들어 하나하나 들풀의 여름을 호명활 때마다 5월의 햇살처럼 어우러지던 그와 나, 그 자리에는 이미 우리 사이의 간격은 간 데 없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버리고 마른 밭가를 적시는 한 줄 물길이 되어 흐르자고 다짐 하였습니다.
각자가 해체되어 줄기 하나로 모여 흐르는 넉넉한 물길, 그는 잠자던 나의 의식에 불 같은 깨우침의 의미를 던지고 사라졌습니다. 어떤 스님은 아침에 마당을 쓸다가 빗자루에 휩겨진 돌이 대나무를 때리는 소리에 문득 어둠을 여의고 광명을 보았다는데, 그이가 나에게 던진 말 하나하나‘는 시들해진 내 온몸의 세포를 맹렬하게 일으켜 세우며 나의 젊음을 미망과 혼돈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던 어둠을 깨뜨리는 불 같은 화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금 파리처럼 반짝이는 기억들을 추억으로 남겨 두며 홀로 어두워진 숲길을 걷습니다.
나는 그를 강원도의 어느 산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땅거미질 무렵에 배낭을 메고 산사를 찾아온 사람,호랜 도보 행각 끝이라서 그는 몹시 초훼체 보였고, 그가 산에 풀어놓은 것이라고는 고작 주린 배와 시린 발의 아픔이 전부였습니다. 공양주 보살이 건네는 공양을 차분히 먹기를 마친 그는 그 동안의 행각을 담담히 풀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겨울, 혹한의 국토를 걸어서 40일, 푸르름으로 물결치던 생명들은 모두 겨울 땅속으로 사라지고 줍고 배고픈 것들 만 땅 위에 나와 헤매이는 황롯길을 따라서 그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되풀이하면서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긍정과 부정의 변증.
스스로 찾은 고행길. 그가 마지막 다다른 곳이 절집이리는 말에, 우리의 작은 방에는 그날 밤 내내 불빛이 꺼질 줄 몰랐습니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풋풋한 인정과 그의 자아 해체 과정이 지니는 이별과 결단들이 바람처럼 빌려와 우리를 마구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방황혜 온 길이 번뇌와 혼돈의 길이라면 그가 걸어온 길은 그 혼돈을 하나하나 걷어내며 빛을 더해 온 길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그와 나는 낮에는 나무하고 청소하면서 오로지 육체 노동에 현의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냉기가 서린 자작나무 숲길을 앓도록 걸으면서 노동과 생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수행과 회향에 무엇인지, 그리고 세계와 철학의 문제가 삶에 무슨 가치를 가져다 주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마다 한 사물과 현상을 놓고서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분석해 내는 그의 깊은 탐구 정신은 내게는 그저 경외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바라보려던 나의 일방적인 세계관이 어떤 헛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이야기의 회향처는 궁극적으로 수행의 완성으로써, 한 인간이 가지는 욕망을 어떻게 창조적인 힘으로 변화시켜 나가는가 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그러한 겨울의 토론을 거치면서 나는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과학적인 토대 위에서 현실의 현상들을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고, 인간과 역사를 새로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말 속에서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어 가던 무렵, 그는 진달래 꽃 길을 밟으며 떠나갔습니다.
옴이 자아 부정의 멈춤이라면 감이 자아 부정의 이어짐이라는 듯이 머물던 곳에 어떤 긍정의 표지 하나 없이 참 삶을 찾아서 끊임없는 모험을 단행하던 사람, 객관 세계에 늘 자아를 개방하면서 타인의 삶을 자기의 것으로 구현해 나가던 참 생명의 사람,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무엇으나로도 메울 수 없는 허전함이 머물고 그가 던지고 간 낱말들은 하나하나 되살아와서 나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 흘렀습니다.
나무 잎새들이 뿌리로 돌아가서 또 다른 환생을 꿈꾸는 가올 오후, 그러한 나뭇잎새의 순리처럼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다는 그의 편지. 그리 멀지 않은 곳. 고살리 마을은 감자를 캐기에 분주했습니다. 밭 가운데에서 감자를 마대에 담던 그는 흙손으로 달려와서 덥석 나를 껴안았습니다. 그는 여름내내 더위를 견딘 감자꽃 웃음을 내게 주었습니다. 잠깐 동안의 만남과 길지 않은 이별이었지만, 그와나 사이에 이미 놓여진 우정의 다리는 넘치는 기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내 생의 초입에 천둥처럼 만난 그 인연은 앞으로 내 삶의 틀을 짜 나가는 의미를 가질 것이지만, 나 자신의 수행과 회향이 중요한 만큼 이 소중한 도반의 의미 또한 그와 더불어 커다란 무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제 진흙 속의 삶에서 참 진리를 찾고자 좀더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머무는 현장의 삶과 내가 수행하는 이곳에서의 삶이 긍극적으로 한 개 진리를 찾아간다고 한다면 그와의 헤어짐은 좀더 새로운 만남의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오늘 다시 자작나무 숲길을 찾아와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걸망을 벗듯이 그에 대한 그리움을 찬찬히 벗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