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넉넉한 딸의 모습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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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혜영
1989년 01월 83호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새해이건만 맞이하는 우리네 설레임의 강도는 여느 때와 다르다. 딱히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아닐지라도 연말을 보내면서 자칫 뒤숭숭해지기 쉬운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은근히 기다려 왔던 새해의 새날들이 아니었던가. 그래서인지 새날들로 가득 자리메움한 새 달력은 곧잘 새해에 걸맞는 설레임의 척도가 되곤 한다.
해마다 비슷비슷한 달력이 수백종 쏟아져 나오건만 새 달력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은 이즈음이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이는 새로 선보일 달력의 모양새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새해를 고대해 왔던 마음 때문이리라. 그래서 새해에 전개될 크고 작은 모양들이 마치 풀어야 할 수수께끼 한마당으로 달력 안에서 노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묵은 달력을 거두어 내고 자리를 차지한 빳빳한 새 달력을 보며 한해의 윤곽을 어림잡아 본다. 공휴일의 수를 헤아려 보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부모님의 생신에서부터 자신의 생일, 형제 자매와 친구들의 생일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행사들로 또아리를 틀기 시작하는 새 달력을 보며 설레기도 한다.
우리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이렇게 확인해 보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마음이나 사랑까지도 그 윤곽을 잡아 보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작별인사 한 마디 없이 떠나보냈는지… 하물며 미래에 대한 확인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해마다 새해에 즈음하면 과대포장까지 곁들여 그럴듯하게 추상일변도로 그려보는 나의 계획들. 애당초 실천과는 무관한 계획일지라도 새해에 갖게 되는 계획들은 ‘새롭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올해엔 이런 포만감이, 애써 부정하려 들어도 엄연한 사실로 다가선 어머니의 연로하심 속에 일찌감치 묻혀 버렸다.
며칠 전인가, 어머니는 삼십여 년 만에 고향 친구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될 것 같다고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하셨다. 생활에 익숙하게 젖어들어서 매끄럽게 일상을 맴돌다가 어느 날 문득 지나간 자취들을 주섬주섬 되찾고 싶어짐은 인간의 귀소본능에서일까? 아니면 막연히 흘려보낸 듯 싶은 세계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차곡차곡 개켜져 있는 장농 안의 옷이란 옷은 모두 들춰내어 하나씩 입어 보시곤,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되니, 열아홉살 꿈 많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시며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들떠 서성거리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 곁에서 괜히 겸연쩍어진 나는 실없이 피식거리기만 했다. 드물게 있는 어머니의 이런 나들이에 딸로서 부응할 수 있는 일이란 면목없게 널찍이도 자리한 흰머리를 뽑아 드리는 것이 고작이다.
“나도 시집 가내 흰머리 뽑아줄 기특한 딸을 낳아야 할 텐데…”
흰머리를 뽑을 때는 유난히도 말이 많아진다고 핀잔하시는 어머니에겐 장황하게 늘어놓는 나의 사설 첫머리쯤은 이미 익숙해져 있는 뻔한 줄거리다. 뽑아 놓은 흰머리 수에 비례해 어머니가 느끼시게 될 고단한 생활에 대한 적막감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미봉책이란 것도.
내게는 어머니의 모습이 항상 늙지도 젊지도 않아 보이지만, 종종 뽑아드리게 되는 어머니의 흰머리를 헤일 때마다 염치 없이 자란 듯 싶은 나의 키 때문에 새삼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솟으려고만 하는 한낮의 태양을 턱없이 닮으려고 드는 나의 어설픈 생활의 몸짓들은 죄송스러움을 더하게 할 뿐이다. ‘세월은 멋을 빚어내는 마술사의 손길’이라고 정의했던 어느 작가의 밀어 떠오른다. 우리들의 일상도, 항아리 속의 술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익듯, 자신만의 독특한 맛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월의 첫머리쯤인 새해라고 하여 정작 그 어떤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는지. 새다짐, 새약속, 새로운 기대들인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하나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고 있으며, 변함없이 뜨는 해 그리고 달라진 것 없이 거두어들이게 되는 일상들과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중에 어떤 것이 매듭지어졌고 또 어떤 것을 새로 시작했다고 규정할 수 있을는지.
이맘때가 되면 늘상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에 대한 이런 류의 발상은 계획만큼이나 야무지지 못한 마음으로 휘청거리기에 족했다.
그러나, 새해에도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넉넉한 딸의 모습이고자 하는 나의 마음 또한 새해이기에 새롭게 가져 볼 수 있는 기대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