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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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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맑음 1999년 11월 213호
만물이 침잠하는 계절이다. 소슬 바람이 부는 가을밤,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저 소리. 그래, 가을밤은 풀벌레 소리와 함께 깊어 간다.
‘찌르르르 찌르로르’, ‘뀌뚤귀뚤’, ‘베짱베짱’, ‘찔리라리 찔리리리’, ‘왈월왈월’…. 어둠 속 어디선가 고운 음을 퍼뜨리는 풀벌레는 무심하던 내 가슴에다 청자빛 무늬를 그려 넣는다.
풀벌레들의 속삭임을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없이 평화롭다.
가을 풀벌레 소리는 밤에만 들을 수 있다. 마당가 풀섶에서, 갈라진 벽틈에서, 툇마루 밑에서, 뒤란 장독대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소리는 가을 밤을 수 놓는 환상적인 코러스가 아닐 수 없다.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하고 선창을 하면 베짱이가 뒤이어 ‘찍찌르르’하고 화답을 하고, 이에 뒤질세라 여기저기서 뭇 벌레들이 고운 화음을 보내온다.
아, 진정 가을은 깊어 가는가.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 고향이 생각나고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벌레들의 합창을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세던 그 때의 추억이 아슴하게 그려진다.
산사에서 듣는 풀벌레 소리는 풍경소리와 어우러져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요가 구름처럼 깔려 있는 산사의 뜨락에 앉아 무시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문득 산다는 것의 의미가 되살아 나고 꼭 신선의 세계에 들어온 듯 마음이 정갈해진다. 절은 내게 사색의 통로이자 의지하고 싶은 품속이다.
그러고 보니 절을 찾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버거운 생활에 갇혀 도무지 짬을 낼 수 없던 지난 날들이었다.
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절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불심이 깊은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절을 찾아 기도를 올리시곤 했다. 깊은 신길을 허위허위 올라 마침내 닿은 그 절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 날 밤, 절 마당에 나와 있으려니 풀벌레 소리가 자욱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나를 깨우는 소리였다. 일상에 묻혀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있는 내게 가르침을 던져 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들렸다. 아, 밤 하늘에 반짝이던 그 초롱한 별들도 잊을 수 없다. 그 많은 별들이 나를 지그시 내려다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 그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시 풀벌레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비가 봄의 전령이라면 귀뚜라미는 가을을 상징하는 친숙한 곤충이다. 귀뚜라미는 그 소리가 특이하여 고독한 사람의 벗이 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옛 시기에 보면 외롭게 지내는 여인의 정서나 고향을 떠난 나그네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시름에 잠겨 잠 못 이루는 애절한 정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밤이면 나와 함께 우는 이도 있어
달이 밝으면 더 깊이깊이 숨어듭니다.
오늘도 저 섬돌 뒤 내 슬픈 밥을 지켜야 합니다.
-노천명, 귀뚜라미

이 시에서 보듯이 밤에 우는 귀뚜라미는 문인들이 가을철의 서정으로 즐겨 다룬 소재였다.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진하게 담고 있는 이 시를 보면서 덩달아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은 왜 인지.
귀뚜라미는 우리말로 ‘귓돌이’라고도 한다. 앞다리에 소리를 듣는 매우 예민한 감각기관을 갖고 있다. 소리를 내는 빈도와 온도 간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 온도가 올라가면 소리도 자주 낸다고 한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언제나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객지 생활 십년째, 해마다 가을이면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두툼한 보따리를 들고 내 곁으로 다가오시는 것만 같다.
선들바람이 이는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맛도 그만이다. 문풍지를 뚫고 틀려오는 그 소리의 여운이 책을 읽는 내 마음에 절절히 와 박힌다. 뭐랄까,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듯한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귀뚜라미 소리는 그렇게 계속되다 새벽이 가까워서야 잦아들곤 했다.
여치며 베짱이, 방울벌레, 사마귀, 땅강아지 같은 곤충도 제 나름의 소리로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가늘고 긴 실 모양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는 여치는 이른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줄곧 울어댄다. 그 울음소리가 귀뚜라미와 비해 자주 혼동하기도 한다. 옛 문헌에는 여치와 귀뚜라미가 같이 취급되어 있다.

베짱이는 우리 동화 속에 개미와 함께 등장하여 게으름과 나태함을 꼬집는 곤충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이 풀벌레도 요즘은 환경 오염 때문인지 보기가 쉽지 않다.
가을밤에 우는 풀벌레로 땅강아지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이 곤충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벌레이다.
땅강아지는 어린이들이 놀잇거리로 삼던 곤충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이나 컴퓨터에 재미를 붙여 곤충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 어릴 적 추억은 이렇게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에 전해 오는 민담 한가지.
비 온 다음날 아침, 땅강아지와 두루미가 물고기 잡기를 하면서 놀고있었다. 그런데, 동작이 굼뜬 땅강아지가 그만 물고기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다. 이것을 본 두루미가 고기를 잽싸게 낚아채어 배를 찢고 땅강아지를 구해 주었다. 그런데 땅강아지는 자기를 구해 준 두루미의 은혜도 모르고 물고기는 자기가 잡은 것이라고 떼를 썼다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가을밤에 들을 수 있는 이런 풀벌레 소리는 자기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소리이자 저 세상을 맞이한 환희의 노랫소리일 수도 있다. 또 먹이사슬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봄부림의 소리이기도하다.
가을밤, 풀벌레 소리는 우리의 황폐한 정신을 위무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