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길을 떠나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1년 06월 232호
초파일을 치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사제들이 결제를 떠났다. 나는 남았다. 그러나 남아 있다고 생각되지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늘 떠나는 준비를 하며 산다. 더구나 수행자는 말할 것도 없다. 잠시 한철 동안 하안거 결제를 위해서 떠나는 수좌스님들도 머물던 거처를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뒤를 살피고 또 살피며 떠난다.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고 영원히 살것처럼 짐을 푸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떠나고 다시 오는 준비 작업이 아닐까.
나도 2주일 일정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이번 여행길에 짐을 꾸리면서 떠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금생에 풀어 놓은 마음을 늘 정리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아도 자신의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은가. 사람의 뒷모습에는 살아온 모든 것이 남아 있는 법이다. 뒷모습에 담긴 모든 인연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살지만 사람의 감정에는 사람에 따라 친소親疎가 있고, 어떤 대상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 때문에 평소 삶의 습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수행이나 기도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뚝뚝하고 거친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지,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부처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일에 충실한지…… 사실 돌아보면 “예”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한 가지도 없다.
언젠가 사제가 “형님, 방송하는 스님 맞아요?”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종단의 어떤 사건을 바라보면서 마음 절제하지 못하고 쏟아버린 말 때문에 받은 질문이었다. 순간 내가 능력 밖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 이상의 말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지만 이미 말은 입을 떠나 있었다. 가끔 사제들이 내가 사는 곳을 찾아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형님 책이 너무 무겁지 않아요? 저 음반은 다 듣고 있는 겁니까…… 이런 등등의 말을 조용히 하지만 내심 뼈가 있는 말이었다. 참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일에 필요한 것들이라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곤 하지만 사실 내심 부끄러웠다. 그래 필요한 물건들은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쓰여지기 마련인데 최소한의 것으로 최고의 효과를 내며 살아가는 묘가 나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하나라도 구입할 때는 물론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사제가 했던 질문을 생각한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난 다음에 구입하게 되었다. 부처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있는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는 늘 자신이 없다. 경학을 연구하고 실천 수행을 한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자료를 찾고 바르게 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만족했던 법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 이렇게 마음 속에서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만들어지는 바르지 못한 업의 흐름은 쉽게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번 여행은 나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 주는 셈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수행자에게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경계 했던가…… 새삼 부처님의 말씀에 고개 숙인다. 오늘도 뉴욕 맨하튼 브로드웨이를 걸으며 생각해 본다. 떠나는 자의 부끄럽지 않은 뒷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