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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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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리태극 1989년 01월 83호
88 서울 올림픽으로 나라 이름을 온 지구상에 떨친 지 얼마 안 되어 국내에서는 오공비리에 대한 청문회로 다시 한번 정국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어수선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해를 맞이하면 으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인사가 오고간다. 복이라 하는 것은 특히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말이요 매우 좋아하는 말이다. 수저나 식기 따위에도 수복(壽福)이라는 한자를 나타내고 돌이나 수연(壽筵) 또는 혼인 때 쓰이는 옷감에도 수복이라는 글자가 짜여져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옛부터 유난히 ‘오래 살고 복 받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복 받고 오래살기’를 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복 받지 못하고 오래 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자연 발생적인 염원이기도 한 것이리라. 가난에 쪼들리며 살았고 또 질병으로 오래 살지 못하였던 생활에서 얻어진 기연(旣然)일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바라는 바임은 사실이다.
옛부터 복(福)자가 들어간 말은 위에서 말한 수복(壽福) 외에 행복(幸福), 복운(福運), 복지 (福祉), 복록(福緣), 복리(福利), 복분(福分), 복상(福相), 복신(福神), 복인(福人), 복지(福地), 복택(福澤), 복덕(福德), 만복(萬福), 지복(至福), 청복(淸福), 축복(祝福), 화복(禍福) 들이 있는데, 이들은 복이 운수에 달려 있기도 하고 물질과 어울리기도 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유독 ‘청복’ 하나만큼은 물질이나 운수 따위를 초극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실천적인 삶을 영위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은 하여야 할 것이다.
또 요즘은 ‘복지국가’라든지 ‘복지사회’같은 말을 흔히 쓴다. 여기에는 말뿐이 아닌, 실천과 실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 복권이니 복덕방 같은 말도 있다. 복덕방은 비록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소위, 중개소라는 정확한 뜻의 말보다는 연륜도 깊고 월등히 나은 말이 아닌 가도 여겨진다. 그 뜻과는 관계없을지라도, 오랫동안 써온 만큼 친숙미가 있어 굳이 고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다시 옛말로 돌아가서 보자. 복선화음(福善禍淫)이라는 말과 같이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음난한 사람에게는 화를 준다”고 경계하는 말도 있고, 복인복과(福因福果)와 같이 “좋은 일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하여 인과론적인 일깨움의 말도 있다. 또, “웃음 있는 집에 만복이 들어 온다[笑門萬福來]”라는 말도 오래 쓰여져 내려 왔으니, ‘복을 받으려면’, 항상 화기애애하여 웃음꽃을 피울 것이며 또한 분수를 알아 지나친 욕심을 버림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지킬 도리를 다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한편 그믐이나 초하루 새벽에 ‘복조리’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데, 이것을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복을 조리질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참된 복을 건져 얻으라는 뜻에서 전해져 온 풍습일 것이다. 곧 복을 얻으려면 때맞춰 얻을 수 있도록 항상 대기하고 힘써야 함을 가르치는 풍습이리라.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다. “화가 복이 된다” 또는 “화를 바꾸어 복으로 만든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크게 생각하면, 국가와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받친다는 뜻으로도 새겨볼 수 있다. 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여사 같은 분들이 자기 한 몸을 바침으로써 조국과 독립과 평화를 앞당기려 한 것인 그런 보기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에서도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 예를 한번 들어보다. 어떤 사람이 재정적인 곤경에 빠져서 자기의 집까지 잃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치자. 한 친구가 그를 딱하게 여겨 동정한 나머지 자기에게는 힘겨운 돈을 무리하게 만들어 도와주었는데, 돈을 빌어간 집 주인은 그 고마움을 이기지 못하였지만 그 돈을 갚을 도리가 없어 마침내 돈을 마련해준 친구까지 곤경에 빠뜨릴 찰나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돈을 빌어 쓴 사람의 집 쪽으로 도로가 확장되어 집값이 곱절 이상으로 오르게 되니 그 집 주인은 자기 집을 처분하여 친구의 돈도 갚아주고 더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다. 이것은 친구의 딱한 처지를 제 일처럼 걱정하고 도운 사람의 선한 마음과 또 그것을 진정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의 도리가 이끌어낸 전화위복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지방 중고교에 봉직하고 있던 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해방 직후여서 전무대학도 안 나왔지만 중고교의 교원이 되었고 교무 경력이 많았기에 교무주임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교감 제도가 생겨서 교감이 될 재목을 내신하라는 도 학무국에서의 시달이 있었다. 당시의 경우로 보면, 교무주임이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 교무주임에게는 교사자격이 없었다. 같은 학교에 ㄴ이라는 교사가 있었는데, 그도 무자격증이지만, 재빨리 6개월 단기 강습의 중등교원 양성소를 다녔다. 나이도 ㄱ보다 한 5년쯤 많았고 정식의 중등교원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기에 교감이 되려고 운동에 나섰다. ㄱ은 결국 교감 자리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ㄱ은 거기에 주저않지 않고 대학 편입시험에 응하여 대학에 편입하였고, 직장도 서울로 옮겨서 대학을 나와 다시 대학교수로 진출하여, 현재는 사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이 경우에도 만일 ㄱ이 그때 교감이 안된 것에 상심하여 자포자기하였다든지 그냥 그 자리를 지켰다면, 다시 말해, 그에게 닥쳐온 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ㄱ의 오늘은 있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ㄱ은 한때의 불운 곧 화를 복으로 바꾸기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화가 복이 된다”는 것을 단순히 운명적인 견해로만 미룰 수는 없다. 화가 닥쳤을 때 그 화는 화로서 받아들이고 다시 복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진지하고도 조심스럽게 노력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한다. 화와 복이 숨바꼭질하는 인생항로이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에 붙잡혀서 부침(浮沈)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전화위복’하는 꿋꿋한 삶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 모두들 더 많은 복들을 받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