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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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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정란 1999년 11월 213호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다. 그것은 한 해의 소산을 정리하고, 여름내 열기에 들렸던 세상살이를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래서 가을은 우리에게 죽음에 관해 성찰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우연히 태어난 이 덧없는 생.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헤어지는 것일까. 이번 가을은 내게 특별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달포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나는 엄마가 늘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엄마는 늘 공기처럼 거기 계실 줄 알았다. 적어도 백 년은 사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암말기 선고를 받으시고도 2년 이상 버티시더니, 호롱불이 꺼지듯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임종도 하지 못했다. 워낙 씩씩하게 잘 버티셔서, 가실 때 되시거든, 며칠 전이고 기별을 주시겠거니, 했다. 그런데 깜빡 놓쳤다. 그냥 십 몇 분 사이였다고 한다. 의사가 심장 박동아 얼마 이하로 떨어지면 연락하세요, 라고 말했는데, 그냥 알릴 틈도 없이 툭툭 떨어지더란다. 그리곤 그냥 호르륵 숨 한번 들이마시시곤, 그걸로 끝이었단다.
엄마 돌아가시기 일 주일 전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벌이 가득찬 우주 창공을 우주선을 타고 매끄럽게 날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별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꿈속의 내가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는 걸까. 그러자 갑자기 장면이 바뀌고, 엄마의 침상이 보였다. 엄마 침상 왼편에 어떤 거대한 존재 하나가 서서 아픈 엄마를 이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의 침상이 한바퀴 획 돌았다. 엄마 돌아가시던 날 새벽에도 꿈을 꾸었다. 찬란한 별들이 가득 찬 짙푸른 창공이 나타났다.
그 곳에서 어떤 투명하고 흰 옷자락이 너울너울 움직이더니, 키가 큰 여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여자는 기쁨에 가득 찬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 올라갔다. 꿈속의 내가 엄마, 하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의 시신을 염할 때, 나는 아기처럼 울었다. 나는 죽어서 싸늘해진 엄마를 한없이 껴안고 쓰다듬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여읠 때와 많이 달랐다. 아버지를 여읠 때와 많이 슬펐지만, 아버지의 육신에 관해서는 별로 마음이 쓰이지 않았었다. 그건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껍질이라는 생각이 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많이 달랐다. 나는 우리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에게 엄마는 늘 엄마이다. 늘상 나를 아기처럼 껴안아 주는 품. 나라는 육체의 씨앗을 담고 있던 내 첫번째 집.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전혀 다른 너무나 원시적이고 살가운 관계.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몸아 이제 없어진다는 것, 이제 더 이상 만져볼 수도 없고, 치댈 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엄마의 몸이 땅 밑에 묻혀 썩는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의 몸은 물론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미워진 늙은 몸이 견딜 수없이 그리웠다. 엄마를 땅에 내릴 때, 흰 나비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왔다. 그냥 우연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삼오제날도 또 흰 나비가 날아왔었다. 뭐, 그도 우연이었겠지. 그냥, 나는 그 나비를 마음속에 집어넣었을 뿐이다. 이제는 아프지도 않고, 즐겁다는 걸 나에게 알리려고 엄마가 대장 천사에게 부탁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걸 내가 별스럽게 이뻐했거든요. 세상에 나가 싸우느라고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 그러니까 뭐든 예쁜걸 저놈한테 좀 보내 주세요. 네 엄마는 이제 아프지 않다고, 세상의 욕망에 얽매여 고통스럽지도 않고, 내가 늘 꿈꾸던 희고 아름다운 세계에 들어와 있다고. 나는 이렇게 가볍고 예쁘다고 말해 주고싶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언니 주리고 했다면서 비닐 봉지에 꽁꽁 싼 오이지랑, 엄마가 손수 길러서 따 두신 풋고추를 주었다. 엄마가 만든 오이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어떻게 만드시는 건지, 너무나 사각사각하고 오드득 오드득 씹힌다. 오이지를 묻혀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나 혼자 먹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하나도 주지 않았다. 고추도 어찌나 매운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된장을 되직하게 풀어서 찌개를 끓여서 다 먹었다. 후아, 후아 해 가면서. 이게 엄마다 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여자여서 세상에서 못했던 말 나에게 대신 다 해 달라고, 남자들에게 빼앗긴 여자들의 혀를 돌려 받으라고. 그러려면 작은 고추처럼 단단하고 매워야 한다고 나에게 가르치시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세상에서 빼았겼던 여자의 혀를 내가 남자들에게서 돌려받을게. 엄마뿐 아니라 엄마처럼 말을 빼앗겼던 무수한 여자들 대신 내가 말할게. 엄마, 안녕.”

나는 살고 죽는 일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이 한바탕 꿈이며, 무수한 다른 형태들 가운데 하나의 우연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도 나의 엄마였을 수도 다른 어떤 사람의 엄마였을 수도 있고, 또 히말라야시다 나무나 목련이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것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주의 거대한 플랜은 이미 다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없음과 있음 사이에서 어떤 엄청난 플랜이 우리의 성을 있음 속으로 떠다밀었다가 또 다른 있음 속으로 옮겨놓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안다는 것, 슬프고 기쁘다는 것, 아프고 쾌하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거의 무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주어진 생 동안 인간이 하는 일의 의미에 따라, 하나의 생 안에서의 모양새는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즉, 우주라는 하드웨어는 그것의 길을 따라가지만, 그것의 운명은 지금 현재 인간의 인식 수준으로는 도저히 관여해 볼 수 없는 것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생이라는 소프트웨어 운용만이 인간에게 허용된 일의 장場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는 지극한 정성으로 생을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깊고 높은 영혼에 이르게 될 때까지, 나는 인간의 생이 나에게 준 모든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생각이다. 돌아가신 엄마를 언젠가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될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그 때는 엄마도 나도 이 모습이 아닐 것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김정란이라는 이 딱한 모습을 가진 한 인간으로 내가 느끼고 사유하는 모든 것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일 생각이다. 엄마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하나의 미망迷妄이라 해도, 나는 그 미망의 복판을 관통할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로 내 안의 깊은 어떤 여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아주 고요하다. 바다 밑처럼 고요하다. 그녀는 조용한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그녀의 눈길을 찾으면 그녀는 가만히 웃거나, 조용히 눈길을 떨어뜨린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 혼자 해.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깨닫지 않으면 길은 없어. 비법이나 묘방은 없어. 나는 다만 네 안에 있을 뿐이야. 네가 도달해야 할 존재의 유토피아로로.”
어젯 밤, 어떤 엄청난 해일의 광경을 보았다. 환상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파도 끝에 달려 있는 어떤 거대한 손과 발도 보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의무’라는 말이 무수히 떠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