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당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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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관암
2001년 06월 232호
십년 전 일인가 보다. 내가 지리산에서 수년간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막고 공부하다 서울 구경 겸 볼일이 있어 열차로 올라갔다. 다시 지리산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승객의 볼일과 휴식을 위해 금강휴게소에 들렀다. 십분 간의 휴식을 취하고 승객이 모두 올랐을 즈음 두 사람의 남자가 차내로 올라와 호객행위를 했다. 자동?수동 겸용 카메라를 소개하며 “수출용 신제품인데 수출 기념으로 국내 수요자에게 특별 사은기간 동안 행운의 당첨자에 한해서 삼십만원 짜리 고급 카메라를 단돈 이만원. 거의 공짜로 한정 출시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 성능에 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한 사람은 설명하고 다른 한 사람은 승객 모두에게 행운의 당첨권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관심있게 주목하여 듣고는 은근히 행운을 기대하며 당첨권을 받아 번호를 확인했다. 거의 사십 명의 승객 중 세 사람이 당첨되었는데 내 번호도 불렀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 “여기” 하면서 큰소리로 손을 들었다. 당첨된 다른 두 번호는 행운을 포기했는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런데 큰소리에 모든 승객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쳐다보는 눈초리가 선망의 눈치가 아니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사꾼은 나에게 달려와 ‘축하한다’면서 카메라를 주었다. 돈을 받아갔고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지리산에 가서 화개동천의 물안개 피는 아침계곡과 저녁 노을 그리고 지리산의 사계를 찍으리라 마음 설레며 카메라를 풀어 찬찬히 작동시켜 보았다. 아이고 이럴 수가! 껍데기만 고급 카메라 모양을 갖춘 완전 고물로 어린이 장난감 카메라만도 못했다. 나는 일순간 호객꾼들에 대한 원망보다는 내가 당첨되어 큰소리로 대답하며 손을 들었을 때 모든 승객들이 나를 쳐다본 시선의 의미를 알고는 얼굴이 화끈했다.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몸을 감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무슨 잘못을 하다 들킨 양 승객의 분위기를 살피며 생각했다. 승객들이 이 스님을 어떻게 생각할꼬?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스님이라 할까?” 아니면 “머리 깎고 도를 닦는 스님이 상대방의 마음도 못 잃는 바보 같은, 공부 안 된 스님이라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도착할 때까지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다음날 선원 지대방에서 이런 쑥스러운 일을 고해 바쳤더니 또 한번 바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덕에 다른 스님들의 ‘바보 된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다양한 호객행위에 대한 예비 지식은 많아졌지만 세상을 사는, 바보가 안 되는 요령만 늘고, 중생을 향한 분별만 더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이젠 아득히 기억이 사라질 쯤인 지난달 서울 남부 터미널에서 해인사로 오는 버스를 탔다. 물건은 다르지만 십년 전과 똑같은 당첨권을 나누어 주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수법에 이미 수업료를 지불한 터라서 그들의 말에 관심도 주목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나의 무릎 위에 올려 놓은 행운권의 번호만 살짝 확인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세 명의 당첨자를 발표하였는데 나의 번호가 들어 있었다. 나의 마음은 씁쓸했다. 또 내가 또 당첨되다니-걸려들다니-! 승복이 문제인가? 아니면 내 얼굴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