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으로의 계절은 가을이었지만 기온은 여전히 삼십도를 오르내리는 덥기만 하던 인도의 십일월. 기온과 상관없이 가을은 가을 몫을 하려고 했을까.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던 일상이 갑자기 삐거덕거리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런 대로 할만하던 공부에 갑자기 회의가 들였다. 왜 더운 데서 남의 말로 이 짓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하는 생각요로 정말 할 만하지 못하였고, 그런 대로 먹을 만하던
음식은 짙은 향신료 냄새가 역해서 고개를 외로 꼬게 하고, 함께 마주 보고 웃던 인도 사람들은 끔찍한 인도 놈들이 되어 괴롭기만 하였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긋한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 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줄어 들고 있는 물 속의 고기가 그리 답답하고, 바람거센 날 벼랑 끝에 서면 그리 막막할까. 내 편은 어느 곳에도 없었고, 누구도 내 편이 되어 함께 고개 끄덕거려 주지 못했다. 내 편을 찾아야만 하였다.
아무하고라도 마음만 맞으면 형편 없는 인도 음식을 타박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인도 사람들을 비난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공부를 때려 치우자고. 궁리 끝에 히말라야 기슭의 티벳 난민 정부가 있는 달람살라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스님들을 보기로 하였다.
그 곳의 스님네들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달람살라까지는 델리에서 버스로 열여덟 시간이나 걸리지만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동지가 필요하였고, 나의 이 마음을 달래 줄 친구가 필요하였으니까.
목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서 금요일에 있는 세미나에는 적당히 핑계를 만들어서 빠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저녁 일곱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다섯시나 되어야 달람실라에 도착하였다.
티벳 절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 스님들을 찾아 나섰다. 대여섯 명의 우리 스님네들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느 스님은 티벳 말을, 또 다른 스님은 명상을, 누구는 탱화를 공부하며 스님들은 너무나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바삐 지내는 일상 속에 불쑥 끼여든 객을 흔쾌히 맞아 주기는 하였지만 어떤 스님도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오두마니 떠있는 작은 섬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그 섬에 혼자인 것 같은 허전함으로 이 곳까지 왔는데, 누구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서운함까지 더해지자 작은 섬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듯하였다. 그 막막함은 아득함으로 바뀌었다.
아침이면 버터 차 한잔과 꿀 없는 호떡처럼 구운 티벳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혼자 이리저리 다녔다. 걷고 또 걸어서 다리가 뻐근해져 더 이상 결을 수 없을 때까지 걸었다. 그것만이 나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 같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마지막 날 저녁에 숙소로 정한 절 법당 앞 마당에서 우연히 자줏빛 승복을 입은 아기 스님부터 턱밑이 검실검실한 소년 스님까지 학인 스님들이 한 가득 앉아서 진지하게 저녁 논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나도 그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도 왜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손짓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였고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다. 그이들 표정에서 느껴지는 진지함과 오롯함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나는 그저 족하였으니까.
깜깜해질 때까지 논강은 계속되었고 어둠 속에서 이리 저리 바람에 가볍게 움직이는 버터 등잔의 작은 불빛과 끈적한 기름 타는 냄새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하였다. 그저 어둠 속에서 나도 작은 버터 등잔 불이 되어 타고 있는 듯하였다. 이게 바로 하나가 되는 것인가 싶었다. 그 어떤 것과의 합일도 가능하였다. 내가 등잔이 되고 등잔이 내가 되어 타는 모습 속에서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아닌 내 스스로가 나를 위로할 뿐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채워진 것도 빈 것도 아닌 선선함과 함께 더 이상 밖에서 찾을 것도 다론 이에게서 어떤 위안을 받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새삼스러웠다. 나만이 유일한 위안이 었음을….
다음날 델리로 내려오는 버스는 설핏 노을이 질 무렵에 서서히 출발하였다.
버스가 털털거리며 산길을 돌아내려오는 동안 히말라야 산자락은 변하는 하늘색을 받으며 갖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뒤로 두고 오는 산과 앞으로 다가오는 산색은 또 다른 색으로 변하여 갔다. 옅은 포도주 색으로, 보랏빛과 짙은 쪽빛을 띤 남색으로, 검은 보라색으로, 세찬 비 내리는 험한 바다의 검푸른 색으로, 마침내는 아주 깜깜한 검정색으로 어두워지는 하늘과 변하는 산색은 경이 그 자체였다. 올 때의 산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마음이 달라지니 보이던 모든 경계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옴을 알기는 알았지만 이렇게 마음 깊숙이 다가올 줄은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렸을까 차창에 코를 박고 스치는 산들을 바라보다 알아냈다. 그 동안의 삐걱거림의 원인을
아-그래, 그래!
산이, 산이, 우리네 안이 그리웠었구나.
일 년 내내 그 어느 한때라도 좋지 않은 때가 없는 숲이고 산이지만 여름 내내 푸르름으로 자신을 감추었던 앞산 잡목 숲의 나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옷을 갈아 입기 시작하는 십일월.
어떤 나무는 곱게 물이 들고 어떤 나무는 낙엽으로 이파리를 모두 떨구어낸다. 또 이맘때의 나무들이 이루는 숲은, 산은 진솔한 사람에게서 날것 같은 맑은 향내와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 속에 서 있는 나는 그 모든 기운을 느끼곤 했다.
한여름 칙칙한 숲도 좋지만 늦가을의 나무를, 숲을, 산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런 우리네 산을 수년 동안 잊고 지냈으니 절절한 그리움에 가슴이 아플 밖에
델리로 돌아와 기다리는 일상을 마주했을 때 가을은 이미 저만큼 가버렸다.
공부도 할 만했고 커다란 눈으로 웃는 인도 사람들은 정겨웠고 손으로 꼭꼭 다져가며 먹는 풀풀 날아갈 것 같은 밥도 먹을 만하였다.
가을 같지 않던 여름 속에서의 가을을 타도 아주 호되게 뒀다.
다시 십일월.
어찌 보내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