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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혁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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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1년 10월 116호
‘개혁’은 한국붙퍼4 북인가.
불교계에 또다시 ‘개혁’의 소리가 높다. 그런데 소리는 요란해도 실제 ‘개혁’이 되리라고 믿는 불교인은 거의 없다.
얼마 전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개혁을 위해 모든 기득권(총무원 집행부·본사 주지 ·종회의원직등)을 포기하자”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 제기돼 한때 주위의 눈길올 의아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안은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고 이것이 계기가 돼 불교중흥회(회장:능혜)측은 승려대회를 강행한다고 한다. 이 승려대회에서는 또 하나의 총무원과 종회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보다 앞서 서원장측은 7월 8일 해인사 승려대회를 통해 ‘불교개혁위 원회’(위원장:송서암 원로회의의장)를 구성했다. 동위원회는 승려대회를 앞둔 최근 “개혁안 마련을 위한 사부중(四部據)의 대화의 장을 연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펴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힘을 주고 받는 관계였던 서원장과 반서원장 진영의 양측이 개혁을 명분으로 종단을 위기로 몰고 있는 것이다.
협력관계 시절이었던 양측은 9대종회에 ‘제도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능혜)를 구성하여 동위원회가 설문조사와 연구보고서 동을 마련하고 종회에서 토론올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유야무야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종권문제로 양측이 서로 대립 분열되어 다시 ‘개혁’을 명분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정을 아는 까닭에 대부분의 불교인들은 이들에 의해 제기되는 ‘개혁’에는 신뢰를 갖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뭇있는 불교인들은 이제 ‘개혁’마저 싸움의 도구로 전락한 것에 비애를 느끼고 있다. 이를 또다른 측면에서는 조계종의 종권 다툼도 겉으로라도 어떤 명분을 걸지 않는 한 존립 근거마저 약해진다는데서 진일보한 것으로 풀이하는 이도 있다. 물리적 폭력이 자제되고 명분과 여론에 신경을 쓰는 현상용 발전적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유신’ ‘혁신’이라고 불려지기도 하면서 불교개혁이 외해지기 시작한 지 8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당시 주장이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에 많은 불교인은 더 큰 비애를 느끼고 있다. 누가 무슨 내용으효 어떻게 개혁할 것언가가 함께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불교의 개혁은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릴 수 없는 깃발
정치적 수단이나 사욕올 위한 개혁이 아니라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이를 중생과 함께 하는 본래 불교 실현을 위해 애쓰는 흐름도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 2~3년 전부터는 승속올 막론하고 결사훈동(結社運動)을 주창하고 나선 대중에 적지않다. 승가의 선우도량이 이며 결사 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10월 중에는 각계각층의 재가불자들이 신앙 결사운동을 표방하고 ‘우리는 선우’라는 모임을 발족시킬 것이라품 소식이다. 이러한 시류에 즈음해 다시금 결사운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13세기경 타락한 고려불교의 반성과 극복을 위한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와 원묘의 백련결사를 재조명하고 20세기 말 한국불교의 결사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 연구 ·실험 중에 있는 것이 이들의 모습인 듯하다.
개혁을 위한 몸짓은 어느 세대에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규모따 대중의 반향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세상과 사물의 이치가끊임없이 변화하고 인간의 욕구와 추구가 더 많은 발전을 원하는 까닭이리라.
또 시대상황에 따른 과제와 역할도 있기 마련이다. 현대에 제기되는 불교개혁은 그 뼈대가 만해 한용운선사의 ‘조선불교유 신론(1913년 발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었다. 만해가 주장한 승려에게 현대교육을 시킬 것, 포교를 현대화 할 것, 사원을 도시로 옮길 것, 의식(嚴式)을 간소화 할 것, 주지 결정은 선거로 할 것 풍의 12개항은 70-8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 실현이 희박해 자주 거론되는 사항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불교를 일본 불교에 통합하려는 음모를 끊임없이 획책하는 가운데 한국불교의 전통을 지키고 스스로 개혁하고자 한 이는 만해스님 말고도 몇 분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인 백용성스님은 ‘불교’ 인상을 탈바꿈하기 위해 ‘대각교’라 부르고 대각사를 창건하는 등 대각교운동을 전개했다. 전통적인 한국 선종(輝宗)의 특색을 살리고 선과 율(律)의 겸행과 선농일치를 주장했다.
박한영 스님은 유신의 근본 문제를 불교인의 정신적 자각해 두고 포교의 시대화를 주장했다.
그밖에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은 ‘조선불교혁신론’을 발표하고 불교의생활화·시대화·대중화를 역설했다.
일제시대 불교계의 선각자들은 일제히 불교의 현실화·대중화·생활화를 부르짖은 것이다. 지금의 제도개혁이나 종단개혁을 부르짖는 많은 내용은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포교·교육·역경 문제등이 그것이다.

제도개혁과 의식개혁(사상운동)
개혁에 있어 두 축은 늘 사상(정신)과 제도의 문제였다. 제도개혁은 주로 종단의 행정가들이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많은 이들은 문제의 본질은 사상등 의식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상적인 방침이 결정되지 않은 채 승려교육이나 포교 현대화, 종단문제 등을 논한다는 것은 근본올 망각하고 지엽올 쫓는 것과 낱다(故 고익진 교수).”
“사상과 이념과 가치관 적인 방향에 대한 정신적 준비없이 제도를 정비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휴암스님}.”
이는 모두 제돼혁보다는 의식개혁을 강조한 글 들이다. 그런데 종단은 제도개혁올 중심으로 문제를 접근해 왔다.
50년대의 대처승 정화나r앓년 신흥사 사태후 형성된 비상종단의 급격한 제도개혁시도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실 비상종단의 제도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으나 그 파장은 적은 것이 아니다. 이때부터 종단은 ‘제도개혁’이 미완의 숙제로 남았고, 새집행부는 이를 과제로 삼은 듯하다. 최근 조계종의 첨예한 종권싸움에 대한 염증과 폐해로부터 중앙집권적인 총무원 중심제를 본사 중심제로 전환하라는 목소리도 심심치않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제도개혁안의 단골 메뉴 중의 하나이다. 이는 중앙집권적인 총무원 중심제를 반대하고 본사 중심제를 찬성하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현 총무원 중심제가 시행됨에 있어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많은 문제가 파생됨으후써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꾸준히 제기되어 온 것이다.
이밖에 교육제도와 내용 문제, 사찰과 종단의 민주적 운영, 포교활성화, 의식(嚴式), 계율문제 등이 제도개혁의 내용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반해 사상이념 정립은 아함·반야·법화·화엄의 교학 체계를 바로세워 한줄기 보살도를 제시하는 근본성전 편찬올 주장하고 있다(고익진 ).
그밖에 의식개혁올 강조하는 이들은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이를 올바로 시행하고 발전시키려면 스스로의 자각을 전제로 한다고 역설한다. 또 종교는, 특히 불교는 사상·이념이 가장 근본이 되므로 사장운동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사상·이념 정립을 통한 의식개혁과 제도개혁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말한다. 서로 너무나 깊게 맞물려 었다는 얘기다.
의식개혁의 대중화를 이루려면 제도 개혁이 따라 주어야 하고 제도개혁이 성공하려면 의식이 뒷받침 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블교의 지평 확대 그동안 주창되어온 ‘개혁’이 현실화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진단이 보편적인 시각인 듯하다. 하나는 불교가 본래 불교의 모습올 강고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의 방해 ·탄압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세력으로는 미국 등 외세와 외세로부터 힘을 받는 군부독재정권을 들고 있다. 또 하나는 불교 스스로의 한계 때문이다. 냥은 역사의식, 호국불교로 통칭되는 왜곡된 불교관, 개혁주도 세력의 조직력 약화 등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시기에 따라 어느 한쪽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특히 불교 외적인 부분이 오늘날의 불교를 규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은 많은 불교인에게 인식의 지명을 확대해 준 공로가 크다.
이들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민중불교운동올 주창하고 10년 이상 조직적인 활동올 전개하고 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緣起)가 지적하듯 불교는 불교 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역사와 긴밀하게 연관 되어 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는 정권으로부터 그 예속성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여 불교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과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되어 었다. 그러므로 불교자주화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불교개혁 운동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불교는 불교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을 뿐더러 불교계 또한 사회문재와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불교도도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것이 불교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라고 역설하고 있다. 예컨대 민족의 자주와 통일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성스님은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들의 개혁은 제도적인 개혁에 그쳐서는 안되고 불교에 대한 정치적 외압과의 싸움과 함께 자기 속에 있는 낡은 의식과의 싸움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곧 붓다가 제시한 연기 론적 세계관에 부합된 칭조적 생훨에의 결단이 한국사회 므순 해결과 결합되는 자기 지향점을 가질 때 불교 자주는 청당한 지표를 가질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의 소리가 높은 요즈음 불교계 상황에서 진정한 개혁을 위한 불교도의 몸짓은 각자가 처한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러한 건강한 삶들이 조직화되어 그 힘올 토대로 할 때 그 현실성은 구체화 될 것이다. 바른 인식과 바른 실천을 위한 불교도의 노력이 각별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참고〉
·한국근대 민중불교의 이념과 전개 (한종만 편, 한길사 1980)·현대한국불교의 방향(고익진, 운주출판사l984) ·한국불교의 새얼굴( 휴암, 대원정사 1987) . 물러섬과 나아캅( 법성, 한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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