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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초월한 출가자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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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소감문 - 심훈 1991년 10월 116호
행자 교육올 받으러 떠나던 날에는 마지막 여름비가 며칠을 흩뿌리던 후덤한 날씨였다.
작은 봉오리를 잔뜩 가진 코스모스는 길게 자라 빗속을 휘청이고, 가서 교육 과정이야 어떻든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차를 타고 떠난다는 것만이 가솜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을 파하면 책가방을 든 채 아카시아가 빼곡하던 절올 찾아 무작정 부처님올 참배하러 가곤 했었다. 버스에서 내려 높은 계단을 오를라 치면 벌써 아카시아 향기가 사방에 번져 있어 얼마나 벅찬 발걸음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출가라는 말이 하늘 저편에 떠 있는 구릅조각 만큼이나 멀었었고 오로지 어릴 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거운 책가방올 힘겹게 들고 다니던 한 여고생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른 채 오로지 부처님을 향해서 절만 하고 가슴 풍광거리며 계탄을 뛰어 오르던 기억들이 세속적인 욕심으로 가득 부풀어 었던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힘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지만, 머리를 깎고 절집 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 감정의 습올 벗어치고 추스리며 살b}야 할지를 몰라 연신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소스라쳐 즐거워하고 깊은 산사의 계절 바뀜에는 또 얼마나 민감했는지 모른다. 많은 것
에 무심하며 살아가는 듯한 스님들이 신기할
따륨이었다.
그런데, 교육기간 중에 짜여진 시간표에 의해 정신없이 생활하다가 가끔씩 올려다 본 새벽녘 하늘이 벅찬 감동보다는 무심코 스치는 바람같은 것이었다. 모두들 그런 것에 무 심하며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 밑바닥에 고이 접어 안고 살아가는 것이란 걸 알수 있었다.
황색 행지복을 헐렁하게 걸쳐 입고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크게 뜨면서 대적광전을 몇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눈을 반짝이며 대열을 지켜보는 관광객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에게는 까까머리를 한 모습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차라리 얘처로운 모양이다. 측은한 눈빛을 하염없이 보내던 보살님, 보기 드문 구경거리를 만난 듯이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삭발하고 출가를 했다는것이 세속 사람들과는 어떤 형태로든지 엄청난 공간이 비워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출가하기 전의 일이생각났다. 출가할 맘은 아직 강 건너쯤 있는불빛이었지만 절집과 우연히 맺어진 인연으로 해서 션방 수좌 스님 삼십 여 분들 틈에끼어 큰스님 법문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법문이 시작하려고 하자 스님들께서는 신비스러워 보이는 몸짓으로 장삼을 입으시고 대가사를 두르는 것이었다. 묵묵히 그 광경을지켜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왈칸쏟고 말았다. 부처님 도량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발심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미웠고긴 머리칼은 또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는지모른다. 그 후로는 세속적인 꿈이 방울이 터져 나가는 비누거품처럼 조금씩 사그라져 가기 시작했고, 무지하게 아파하시면서 몸을 바꾸신 아버지의 죽음은 나를 슬프게 하기보다는 무상함만을 더해주었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맹세를 했었다. 그래서, 슬픔에 잠겨있는 가족들을뒤로하고 사십구제를 보자마자 무작정 절을 찾아 나섰다. 아직 눈발이 흩날리던 이른 봄에 장시간 기차를 타고 가면서 어떤 목적지에 가는 사람보다도 행복할거라고 생각했다.
교육을 받는 동안에 위의를 배우고 여러가지의 습의 과정을 익히고 많은 강의를 받으면서 참 많은걸 느꼈다. 육체는 힘들다고야단을 하고 수마는 소리도 없이 다가와 눈꺼풀을 천근 만근의 무게로 늘여놓곤 했지만잘 정립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던 마음의한 갈피를 분명하게 잡을 수 있는 날들이었다.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승려로서의 바른길을 일러 주시는 어른 스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생사출가를 했다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었고 몸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서 게으름을 피웠는지 스스로 부끄러웠다.
누더기 하나 쌀알 하나의 귀중함을 간직하고 계신 스님들께서는 물질 만능이라고 하는시대를 홈뻑 거쳐온 우리들을 지켜보시면서 차라리 특별한 사명감을 나타내시는 듯 했다. 여전히 세속의 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입선 죽비를 치기가 무섭게 망상에 빠져들곤 했지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같다.
회향식을 치르고 모두들 각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마지막 청소를 하자니 넓은 공중속으로 아쉬움이란 물기가 날아 올랐다.
머리를 깎으면 만나고 헤어점에 참 빨리도익숙해지나 보다. 모두들 불룩한 바랑을 늘어뜨리고서 뒷모습을 보였다. 집에서 데리러온 차를 타고 오면서 모두들 피곤한지 ER가 옆으로들 넘어간다.
심한 차멸미에 시달리느라 그렇게도 좋아하던 계곡도 보지 못한 채 도착했나 보다.
텃밭에 서 있는 호도나무도 담벼락에 의젓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도 혼미해진 정신으~로인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유난히 조용한 지리산 우리집의 계곡 물소리는 항상 아침을 열고 온강 벌레소리, 새소리가 요란하다. 떠날 때 봉오리만 맺혀있던 코스모스는 어느새 그 큰 키를 자랑하면서 아침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앓은 여닮장이파리가 새벽을 가르며 도량을 거닐던 스님들의 장삼자락 같이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