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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佛家인지 법가法家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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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9년 11월 213호
지난 10월 12일 시내에 법회를 갔다. 사부대중모임에 참석하려고 조계사로 간 법사스님을 대신한 것이었다. 어느 금융기관 이층 회의실을 빌려 놓았다. 참석 인원이 별로 많지 않아 조금 썰렁했다. 법회의 책임자가 오늘 재가자들도 모두 서울 모임에 참석하러 갔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거듭거듭 사과 겸 양해를 구했다.
나 또한 ‘대리로 오게 되어 미안하다’고 같이 고개를 숙였다.
법회를 주관해 보면 늘 거사님보다는 보살님의 숫자가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 모임은 거사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열성적인 보살님들은 중앙불교를 구하려고 서울로 가고 점잖은 거사님들만 남아서 지역 불교를 지키고 있는 형국이었다. 산중 절을 지키고 있는 내 형편이나 거사님들의 처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이래저래 설법 도중 말이 자꾸 끊어 지고 맴도는 정말 ‘법문 안 되는 날’ 이었다.
아홉시 뉴스가 없는 곳에 살고 있지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라디오 채널을 맞추었다. 뉴스 말미에나 ‘총무원’ 소식을 한 자락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켜자마자 톱 뉴스로 나온다. 그저 싸움 장면만 질타하고 있었다. 뉴스란 ‘개가 사람을 물면 사건이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그림이 되는 것’인 줄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거두절미하고 저런 식으로 ‘소림사 무술 장면’만 보도하려는 언론사의 속성에 이용만 당하는 절 집안의 일이 빨리 끝나길 간절히 발원했다.
60년대 ‘정화’가 불교사佛敎史적으로 정말 긍정적인 업적이었다면 그 뒤로 교단의 대내외적인 위상이 더욱 올라가야 했었다. 당시의 명분보다는 그 뒤 교단운영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정당성 여부의 잣대로 오히려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날부터 결국 사법부 호소 및 공권력 개입의 상습화,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불교적 방편의 상례화가 결국 승가문화의 저변에 고착되어 3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져 불교와 교단의 위상은 날로날로 추락을 거듭해 왔다.
국가로서야 종교가 지나치게 비대화 되는 걸 원할 리가 없다. 서양의 중, 근세사는 신권神權과 왕권의 줄다리기이다. 중국불교사의 법난사태法難沙汰도 그러하다. 우리 발목을 스스로 매어놓고 있으니-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지만-종교 정책으로서는 건국이후 ‘최대의 성공작’인 셈이다.
불법佛法보다 사법司法이 더 수승하다고 믿는다면 법가法家의 종지를 봉대하는 편이 더 낫겠다. 아마 부처님 보다는 한비자韓非子나 이사李斯가 와서 보고 자기 제자들이라고 더 기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