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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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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효림 1989년 01월 83호
누가 저들을 용서할 것인가.
살아 있는 우리로서는 아무도 저들을 용서할 자격이 없다.
우리도 같은 죄인이므로 용서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죽은 자들의 몫이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총칼로 부처님 좌복 밑을 쑤셔대던 오역죄인이 총무원장의 문안 인사를 받으몀서 절 집안에 있으니 말이다. 온 나라가 그 사람을 욕하고 그를 좇던 무리가 온 국민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는데, 절 집안에서는 그 사람을 마치 큰 상전인 양 모시고 있다. 옛말에 이르기를, 다시는 안 마신다고 침 뱉고 간 놈이 돌아와서 그 물을 마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말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경우다. 그 잘난 대통령 좀 해보겠다고 사람을 목을 무수히 잘라대더니 그것도 모자라 스님들의 죽음까지 요구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절이며, 그것도 어찌해서 백담사란 말인가.

백담사는 성지다. 그 사람이 감히 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악과 파렴치로 더러워진 사람이 함부로 더럽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조선조 중엽에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권을 찬탈한 데 항거하여 출가한 생육신 김시습이 있던 도량일 뿐만 아니라, 저 유명한 한용운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다. 또 불의의 항거하던 지사들이 불법에 귀의하여 날카로운 반야검을 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감히 가 있다니,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땅의 불교를 더럽힐 작정인가.
불교에서는 오역죄를 가장 큰 죄악으로 생각한다. 소승에서는 오역죄를 아버지를 죽이는 것, 어머니를 죽이는 것, 아라한을 죽이는 것, 승단의 화합을 깨는 것, 부처님 몸에 피를 흘리게 하는 것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승단의 화합을 국가난 민족의 화합으로, 그리고 부처님을 진리로 바꾸어 놓고 보면, 비단 불자에게뿐 아니라 일반 사람에게도, 이 오역죄를 멈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큰 죄악이 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라한은 곧 성자이며 사회의 지도자이다. 그런 아라한을 죽이고 국민의 화합을 깨뜨리고 진리를 배반한 자, 그는 누구인가. 이 가운데 한 가지만 범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진대, 오늘의 그 사람은 그 다섯 가지 가운데 한 가지도 면치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칠십, 팔십 된 노인들까지 종로 네거리에서 그를 ‘단군 이래 최고의 도둑’이라고 했겠는가.
대승에서 꼽는 오역죄는 소승오역죄와 또 다르다. 탑사를 파괴하고 경상을 불사르고 삼보재물을 훔치는 것, 삼승법(三乘法)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천하게 여기는 것, 스님네를 욕하고 부리는 것, 소승의 오역죄를 점하는 것,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고 악구(惡口)나 사음(邪淫)과 같은 불선업(不善業)을 짓는 것들이 그것인데, 그 사람은 여기서도 그 어느 한 가지 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가 이 대승오역죄를 어떻게 범했는지는 이미 세상에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부처님 당시에도 오역죄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유명한 조달이다. 조달과 같이 공모한 아사세 왕도 여기에 든다. 그리고 앙굴마라도 빼놓을 수 없다.
조달은 데바달다라고도 불린다. 그의 아버지는 곡반 왕으로서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 왕과 형제 사이다. 따라서 부처님과는 사촌이 되는 셈이며, 부처님과 한날에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어찌되었든 항상 부처님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부처님을 끝없이 괴롭혀 왔다. 그 때문에 경전의 온갖 악역은 그의 몫이 되었다. 결국 뒤에 아사세를 꼬드겨서 그와 공모하여 부처님 자리까지 넘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교단의 통솔권을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하다가 그것이 관철되지 않자 계속해서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가니, 그를 추종하는 무리 오백을 거느리고 교단을 떠나고 말았다. 뒤에 부처님이 보낸 사리불과 목련에 의해 그 오백의 추종자도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부처님께 돌아왔다. 하지만 조달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가 코에서 피를 쏟았다고 한다. 어떤 경전에서는 그가 산채로 지옥에 빠졌다고 한다.
아사세 왕은 마갈라국의 빔비사라 왕의 태자였다. 마갈라국은 당시의 인도에서는 강국이었다. 아버지 빔비사라 왕은 불전에서 가장 신심이 돈독한 왕으로 나와 있고, 그의 어머니 위재휘도 신심이 돈독하였다. 아사세 왕은 이처럼 어질고 착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조달의 꾐에 빠져서 큰 죄악을 범하였다. 늙은 부왕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굶어 국게 했으며, 어머니도 죽게 했다. 이렇게 그들 노왕 부부가 고난 속에서 죽어갈 때 이들을 위하여 부처님이 설법한 경전이 바로 아미타경이다.
앙굴마라는 어릴 때 바라문의 제자가 되었다. 한번은 그의 스승이 출타하고 없을 때, 스승의 젊은 아내가 앙굴마라를 유혹했다. 마음이 순수한 그는 유혹을 거절했다. 자존심이 상한 젊은 부인은 앙굴마라에게 앙심을 품고서, 남편이 돌아오자, 앙굴마라가 그의 옷을 찢고서 범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꾸며대었다. 스승은 앙굴마라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젊은 아내의 말만 믿었다. 그리하여 힘으로는 제자를 다스릴 수 없음을 알고 앙굴마라를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뜨림으로써 앙갚음을 하려했다 그는 앙굴마라에게 마지막 신통을 배우려면 사람을 일천 명을 죽이고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해야 한다고 일렀다. 스승의 교묘한 꾐에 속은 앙굴마라는 칼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그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했다. 구백구십구명을 죽이고 마지막 한 명이 남았을 때,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나섰다. 앙굴마라는 어머니를 죽여 일천 명을 채우려고 했으나, 바로 이때 부처님이 앙굴마라를 찾아와 제도하였다. 뒤에 앙굴마라는 죄를 뉘우치고 사문이 되었다. 그러나 살인마 앙굴마라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탁발 나온 앙굴마라에게 돌을 던지며 욕을 했다고 한다.

오늘 이 시대의 오역죄인은 부처님 당시의 그들 끔찍한 오역죄인과 견주어도 결코 죄가 덜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그 죄의 더함과 덜함은 놓고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아사세 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경전을 결집하는 데 중대한 외호를 했다. 앙굴마라도 출가 뒤에는 부지런히 공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조달은 뒷날 오히려 역행보살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부처님을 부정함으로써 부처님의 위덕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오늘의 오역죄인은 어떠한가. 이땅에서 수많은 민중의 손발을 묶고 또 생명을 앗아가고 도시 하나를 피바다로 만들고서도 재임중에 결코 참회한 일이 없다. 무고한 스님들을 잡아다가 골병이 들게 하고서도 잘못했다고 사과 한 마디 한 적도 없다. 지금까지도 그는 진실된 참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죄를 은폐하고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구태여 그에게 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우리의 태도다. 오늘의 이 세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 이제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국회에서 열리는 오공비리특위, 언론특위, 광주특위에 의한 청문회가 날마다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 특위라고 하는 것이 이번에 처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8.15 직후에 반민특위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특위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마당에서 민중이 눈뜨고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또다시 지난 날 같은 역사의 오류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얼마 전에 어떤 거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국회 특위에서 진상을 규명한다고 저 야단이지만, 이미 알 것은 다 알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만 저런 요식행위를 하는 것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잘 이용해 보자는 것이지요.”이 말은 평범한 우리 대중들도 정치를 보는 눈이 이젠 옛날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회가 진실을 밝히는 데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선전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를 또 다시 서글프게 할 뿐이다. 신동아 12월호에는 청문회에서 재벌 총수가 국회의원들에게 뿌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것도 야당의원에게 뿌렸다는 것이다.
요즈음 ‘단절’이니 ‘청산’이니 하는 말들이 무수히 나돌고 있다. 지나간 악습과 악덕과 또 방관을 깨끗이 씻고 새롭게 서자는 것이다. 실제로 8.15 뒤에 일제 말에서의 매판세력들을 청산하지 못한 채 막을 연 자유당 시대가 얼마나 어지러웠던가를,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민주사가 지금껏 오욕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음을 익히 알기에, 그리는 그 단절과 청산의 중대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자유당 시대 뒤로 ‘구시대의 청산’이라는 것이, 한 시대가 매듭지어질 때마다, 말만큼은 무수히 되풀이되었지만 한번도 실제로 청산된 적은 없었다.
지금 또 다시 한 시대를 매듭짓고 새로운 시대를 펼치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는 과연 오공을 청산할 수 있겠는가? 또 그 청산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저들 오욕죄인을 단죄한다고 해서 오공의 온갖 죄악의 그림자가 청산될 수 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저들을 벌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의식을 개조해야 한다. 왜냐면 한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그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순 못지 않게, 타인의 죄를 쉽사리 용납하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그 탓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비를 실천하는 스님들이라 해도 그 사람의 오역죄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으로는 불쌍하게 여겨 동정할지언정 용서는 할 수 없다. 사실 용서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저들을 용서할 것인가. 살아 있는 우리로서는 아무도 저들을 용서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우리도 같은 죄인이므로 용서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죽은 자들의 몫이다. 광주에서 피흘리며 죽은 사람, 고문받다가 죽어간 사람, 최루탄에 맞아 죽은 사람, 스스로 불살라 죽은 사람, 바로 그들의 몫이다. 만일에 우리 가운데 부처님의 자비 운운하며 섣부르게 그를 용서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땅에서 저질러진 큰 과오를 또다시 용납하고 마는 죄인임에 틀림이 없다.
불교는 자기를 책임지는 종교이다. 운명을 신에게 떠맡기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시대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이땅에 오역죄인이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만에 하나, 저들을 단죄하는 명분으로 또 다른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없는지를, 죄인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용서를 주장하는 자가 없는지를, 그리고 불쌍하다는 일차적인 느낌만으로 죄를 용납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자는 없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