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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廬山) 혜원(蕙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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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불교 - 일지 1991년 10월 116호
-불교승가의 영원한 사표(師表)

백련걸사(白蓮結社)
402년 7월 28일. 69세의 혜원은 유유민등 123인의 귀의자와 함께 여산(盧山) 반야대의 아미타불상전에서 정토수행(淨土修行)을 위한 백련결사(白運結社)를 서원한다. 결사(結社)란 오로지 불법(佛法)의 탐구, 에 돗을 세운 구도자들이 상호 탁마하면서 깨달음의 길을 열어가는 모임이다. 물론 불교승가 그 자체가 하나의 결사이기도 하지만 불교수행자들은 옛부터 화엄경결사(華嚴經結社),정혜결사(定慧結社),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등을 조직하고 수행해 왔다. 특히 758년 신라의 발정화상이 개시(開始)된 건봉사의 만일염불회와 보조지눌의 정혜결사는 우리나라 불교수행자들의 치열한 수행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일(萬日)은30여년이다. 30여년은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 만일 염불회의 동참자들은 자신들의 인생 전부를 오직 염불수행에바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년 전 비무장지대의 폐허속에 묻혀있는 건봉사에 가서 보았다.
휴전선의 정적(靜寂)에 덮힌 절 안에서 가장 나의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돌로 깎은 닭을 얹어놓은 석조 원주(石造圓柱)였다. 이른 아침에 우는 닭은 시간의주기, 빛과 어둠의 주기를 알려준다. 옛 건봉사의 수행자들은 석조원주위의 달을 바라보면서 덧없이 흐르는 시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자신들의 시간올 더욱 염불 수행에 바쳤던 것이다.
다시 혜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혜원과 그의 귀의자들은 자신들의 결사를 백련사(白運社)라고 청했다.
알려진대로 연꽃은 대숭불교의 사상을 상정한다. 아울러 연꽃은 인간정신의 완전한 개화, 불성(佛性)의 개화를 의미한다. 그 연꽃은 진흙 속에서만 핀다. 마르고 높은 땅에서는 피어나지 않는다. 연꽃은진흙이나 수렁속에서 피어나지만 오염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마경」 역시 ‘世敵鐘 常善入於空寂’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혜원과 그의 귀의자들은 자신들의 정토에 대한 회구가 연꽃처럽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기를 바랬던 것이다. 정토신앙이란 무엇인가? “염리예토, 자력절망(厭離鐵上自力總望)”, “혼구정토, 타력투귀”의 신앙이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정토신앙은 창조적인 절망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신앙이다. 정토신앙은 고(苦)와 악(惡)으로 오염된 이 세계,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인간존재의 필연적인 유한성(有限性)을 자각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불안정한 운명을 스스로 완성하는 영원의 행법(行法)인 것이다. 아무리 불교교학, 아비다르마의 치밀한 체계와공(空)의 논리, 해탈의 심리학에 정통해 있더라도 번뇌무진(煩繼無盡)의 인간존재는 나약하다. 이성(理性)이나 사상만으(로는 인간의 어두운 숙업을 완성할 수 없다. 정토신앙은 인간구원의 신앙이다. 때문에 아미티붓다의 정토가존재하는가존재하지 않는가를 논한
다면 그것은 이미 정토신앙이 아니다. 아미타붓다의정토가 셜령 존재하지 않더라도 간절히 동경하지 않
을 수 없는 염원(念願)이 소중한 것이다.
이 염원으로 해서 정토수행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심법의 정토를 발견하고 오염된 예토(擬土)를 정토로 이행시키는 ‘보리심시보살정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토신앙은 절망자들의 나약한 신앙이 아니다. 인간의 깊은 숙업올 바라본 인간들이 선택하는 강인한 실천의 신앙인 것이다. 정토수행의 깊은 경지에 도달한 달인(達人)들은 탐욕과 무지, 질병과 죽음의 어두운 그늘에 덮힌 인간존재의 고(苦)를 더 이상 피고자(被苦者),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인간존재의 눈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숙업과 고(苦)의 멍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심법(ι法)의 정토에서 인간의 고와 숙업을 능동적으로 반성하고 이를 극복해가는 장중하면서 거센 실천력을 획득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라도 자기존재의 안정을 꿈꾼다. 그러나 자기존재의 안정 역시 에고와 욕망의 부잔물에 오염되기 쉬운 연약한 희망일뿐 참다운 안정이란 꿈꾼다고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의 구도자들은 세계와 자기에 대한 인식의 찬란을 한번쯤 겪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들은 언어와 욕망의 교묘한 휘장으로 가리워진 환상의 포로가 되기를 거역하고 인생의 진실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끈질긴 모색의 공(空)과 마음, 해탈의 사상을 낳은 것이다. 공(空)이란 세계와 자아의 가환성(假幻性)을 철저히 투시하는 관행(觀行) 끝에 도달한 청정한 마음의 세계이다. 혜원과 그의 귀의자들은 이 공(空)의 경애에서 준엄하고 순결하며 자비와 지혜로 충만한 정토를 희구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공(空)의 완성이란 바로 정토(淨土)의 완성이었다. 따라서 정토신앙의 본질은 진정한 자기회복이며 구원인 것이다. 여산혜의 지루가참(支婁加讒, Lokaksema)이번역한 반주삼매경에 의한 선관(禪觀)을 병수하고 있었다. 반주삼매경은 반야경의 사상에 기초한 초기대승의 정토경전이다. 정토삼부경보다 일찍 성립된 이 경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는 시방불국의 현재제불이 공지(空智)의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들이 이 법을 듣고 의혹을 단절, 선정에 드는 방법을 설하고 있다. 이 제불현전(諸佛現前)의 선정을 반주삼매라고 한다. 여산혜원의 백련결사에서는 반야공관을 바탕으로 심상을 통일, 부동적일에 이르는 전사염불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정토신앙의 전사염불과 선(禪)의 내심자중, 자학현성는 항상 상호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자기회복, 구원의 사상인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적어둘 에피소드가 있다. 저명한 시인이며 백련사의 중요한 인물 유유민의 친구이기도 한 도연명은 혜원에게 입사(入社)를 구했으나 시인의 음주 습관을 염려한 혜원은 이를 거절했다. 따라서 도연명은 백련사의 명예회원으로 불입사제현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만족해야 했다. 또한 저명한 문인(文人) 사령운은 그의 귀족주의적 교만과 사치 때문에 입사를 거절 당하고 명예회원으로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만큼 백련사의 회원은 엄선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선경(禪經)의 번역
혜원은 당시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모든 행법과 경전을 여산교단에 수입, 실천했다. 그는 여산에 선림(禪林)을 별치하고 선관수행(禪觀修行)을 장려했으며, 소승 아비르마다교학의 권위 상가데바(Samghadeva), 대,소승불교의 거장 붓다브하드라(Buddgabhadra)를 여산에 초지, 수행방 편선경과 달마다라선경등을 번역하게 한다.
즉, 여산교단은 새로운 불교교학의 수용과 선행관행법을 도입하기에 전념했던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불교교학의 수용과 선관핸법의 도입을 통하여 격의불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수도방법에 대한 엄밀한 반성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체험과 인식의 행법(行法)이다. 이 행법의 특징은 어떠한 상대적인 한정을 초월해 인생의 진실을 밝혀가는 실천의 행법이며 미리 어떠한 도그마를 예상하지 않으므로 역동적이며 다양한 무한대사유의 세계를 열어간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단서가 필요하다. 즉 불도(佛道)의 수행에는 반드시 올바른 수행방법과 지견(智見)이 뒤 받침 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행법에 대한 정견이나 반성이 없는 수행자는 길을 잃고 사상의 퍼즐게임에 자신의 시간을 모두 소모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엄청난 불교 문헌들, 경율론 삼장의 본질을 수행론일 수박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논리나 철학적 구성이 치밀한 교의체계라고 그 교의 체계성립의 목표는 기사구명(己事究明)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사상이란 체험자의 목표와 일치되고 생활의 옷을 입은 사상만이 사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상이란 언제나 미래형(未來形)의 가정(假定)일 뿐이며 남에게서 빌려 입은 옷처럼 부자연스러운 법이다.
혜원이 아비다르마의 선경 역출(譯出)에 진력한 이유도 해탈의 행법으로서 불교란 미래 가정형의 관념적 주어(主語)가 아니라 항상 실존으로부터 반성하고 점검해나가야 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산의 혜원교단이 선경의 역출과 학습, 쿠마라지바교단과의 교류를 통해 세워나간 독자적인 수행론이야말로 그들이 완성한 불교적 정신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혜원은 당시 나가르쥬나의 대승불교를 중국에 이식한 쿠마라지바에게 대승불교의 본질을 묻는 서신을 띄운다.
이 두 거장이 주고받은 왕복서신은 대승대의장이라는 이색적인 문헌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혜원과 쿠마라지바는 숙업의 세계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자신의 절망을 경전불교의 완성을 통해서 극복한 비운의 천재렸다. 한편 혜원은 일생 동안 긴 호흡을 가진 수행력과 교육정신으로 우수한 불교교단을 육성해 냄과 동시에 중국불교의 거대한 전통을 만들어 간 인물이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이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승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반성
혜원은 시종일관 반성적인 인간이었다. 입적3년 전. 79세의 노혜원은 어느날 밤 홀로 앉아 이렇게 썼다. “굳센 뜻을 세우고 수면을 줄이며 도를 탐구했던 옛 일을 생각하니 오직 부끄러울 뿐이다. 나 이제 입정(入定)하여 밤을 세우며 불법에 마음을 온전히 기울일 뿐.” 혜원의 이와 같은 독백은 젊은 날부터 자신이 걸어온 수도자의 험남한 여정에 대한 회상일 뿐 아니라 갖은 난세를 헤치며 노년에 이른 그 자신의 수행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집약되어 있다. 혜원은 이미 이십초반의 거장 도안으로부터 계속 정토와 선관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혜원은 죽는 날까지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계율의 실천자였다. 혜원이 입적하던 날 주변의 대덕과 장로들이 시주를 마셔 병을 돌보기를 간청했으나 혜우너은 말했다. “율문에 없는 일” 다음에는 미음을 권했으나 “이미 한낮이 지났다”라며 미음조차 마시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할 수 없이 꿀물 마시기를 권하자, 혜원은 율장에 한낮이 지나서 꿀물을 마시는 것이 허용되어 있는지 계율전문의 제자에게 확인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혜원은 제자가 율장을 찾아 보고 있는 동안 입적하고 만다. 혜원이 이토록 엄격한 계율의 실천자였다. 한 평자는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생사를 걸고 그 태도를 굽힘이 없이 계율을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낮이 되었다고 해서 미음조차 마시지 않았다니 아, 아! 참고로 완고하시기도 하여라” 혜원이 이와 같이 엄격한 수행력 때문에 불립문자직지인심(不立不子直指人心)을 선언한 선종에서조차 매년 8월 6일을 ‘정토종주혜원노조기’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어느 잡지에 실린 강연 원고에서는 혜원의 불교에 대해 “권력과 분리, 은둔적 수행, 격의불교적 한계, 결사운동의 효시로 평가되나 신멸심불멸론이라는 사상적 한계로 말미암아 승가의식과 역사의식의 분리로 귀결”이라고 저고 잇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과연 혜원교단은 단순히 은밀을 일삼은 지식인 집단에 불과 했을까?그리고 당시의 광폭한 안티 붓디스트들의 횡포에 의연히 맞선 사문불경왕자의 사상이 단순한 권력이탈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멸신불멸론(身滅神不滅論)에서의 신(神)은 심리적인 원리로서만이 아닌 인간 존재의 반성적 근거이며 도덕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三世因果’ 또한 격의불교는 불교의 중국수용단계에서 표출된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며 혜원은 격의불교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시대의 누구보다도 앞장 선 불교 사상가였다. 사상의 문제에 관한 한 자기방식대로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바탕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왜곡이야말로 승가의 불교운동으로 편협하게 만들어 버리는 비지성적(非知性的), 비승가적 발상으로 변질되기 쉽다.
우리는 사상의 섣부른 칼을 휘두르며 선지식들의 피와 담으로 이룩된 정신의 유산을 난도질하는 소년들의 총명함을 믿지 않는다. 어쨌던 우리는 이제 이 글을 맺어야 한다. 우리는 혜원이야말로 동아시아 불교 불교교단에서 가장 선구적인 호교적 불교사상가, 반야교학과 선관수행의 실천자, 정토수행자로서 불교승려의 대업을 성취한 승가의 사표라고 감히 확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