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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침 잣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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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89년 01월 83호
푸른 잎새도 꽃도 하나 없는 이 황량한 계절에, 묵은 기억을 지워 없애고 새로운 희망의 말들을 가슴에 새겨 본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도회의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껏 눈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땐, 고궁의 뒷뜨락에라도 가서 양광(陽光)에 모여 앉은 비둘기들의 날개짓을 보라. 그래도 우울하거든 민초(民草)들이 모여 사는 저자거리와 인정이 사무치게 그리운 고아원이나 양로원으로 가서 당신의 삶이 얼마나 사치한지를 반성해 보라. 그리고 겨울 들녘에 서 있는 겨울나무를 생각해보라.
지상의 희망의 말이란 말은 모두 땅에 묻어버리고 가녀린 손을 바람에게 맡기고 있는 겨울 나목(裸木)들.
온종일 잠들지 못하는 숲의 아우성이 우리들 영혼의 갈피를 뒤적일 때면 가만히 장지문을 닫고 춧불 하나를 켜 놓아 보자 그리고, 얼어붙는 뿌리가 지열(地熱)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듯 이 세상을 향하여 오늘 하루만이라도 간절해 보자. 헝클어진 머리단 같은 가지 위에 작은 둥우리를 짓는 새처럼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성스러워져 보자.
결빙(結永)의 시간과 함께 풀잎이 시들듯 이제 한 해가 이울고, 저 짙푸른 동해 바닷물에서 방금 말갛게 씻은 듯한 일광(日光)보살이 어둠을 거스르며 새로운 발걸음을 옮겨 놓을 시간이다.
한 해의 시작, 그 얼마나 설레이는 말인가? 역사의 수레바퀴가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대지를 향하여 장엄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이 시간에, 어찌 우리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경건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저 동자(童子)같이 밝고 고운 햇살을 보며 희망의 말 몇 마디라도 걸어 보자.
더는 역사의 흐름을 짓밟고 불의(不義)가 정의의 이름으로 활보하도록 놓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온갖 비리(非理)와 모순이 팽배하고 거짓과 허위가 용납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밝은 대낮의 논리처럼 어둠의 논리가 떳떳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불교에서는 무명업식(無明業議)을 캄캄한 밤으로, 지혜를 햇빛으로 곧잘 비유해 왔으므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기치를 더 높이 세워 참된 새벽을 맞이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민족의 성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 땅 방방곡곡에서 삿됨 없고 그릇됨 없는 백의민족의 숨결이 퍼져 나와 새로운 민족 정기를 세워야 하리라.
이젠, 우리를 둘로 갈라서 등을 맞대게 했던 아픔의 역사도, 피 묻은 이데올로기도 뛰어넘어 한핏줄 한겨레로 만나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 묘항산에서도 지리산에서도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일찍이 백제의 시인 신 동협이 노래했듯이 껍데기는 가게 하자. 그동안 우리의 귀를 먹게 하고 눈을 멀게 했던 낡은 기성의 가치와 관념들은 새빛과 함께 역사의 강물 위로 흘려보내 버리고, 이제 저 높푸른 겨울산을 보자. 몇 천년 몇 만년을 그렇게 변치 않는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잣나무와 소나무들, 그 훤칠한 이마 위로 눈이 내리는 날이면 딸년 같은 까치도 와서 반가운 목소리로 울고 맷새도 덤불 속으로 날아가리니, 소반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저 미래의 가슴, 새날의 가슴에 늘 푸른 소나무, 잣나무들을 심어 보자. 그 이름은 민주, 평화, 자유라고 하여도 좋으리.
아직도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다북솔도 가지를 흔드는 망월동 묘역에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 사람들, 그들의 꽃 같은 목숨이 더 이상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화려한 진혼곡이나 꽃다발로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도도한 물줄기 속에 그들의 혼이 안식하게 하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민족의 제단 앞에 바쳐진 맑은 정화수가 되게 하자.
그리고 저기 민주의 새 아침이 밝아오면 쇠북소리에 어우러져 나와 남이 손을 맞잡지 않으려는가. 가슴을 열지 않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