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단의 지도자는 물론 불교를 아끼는 사람들마다 유구한 불교역사 전통과 문화를 자랑한다. 나라의 밤과 낮을 지켜왔고 민족과 운명올 함께 해 온 불교인 만큼 그에 상응하도록 보장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와 주장들이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불교위치를 가름해 보면 서글프고 답답하기만 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역사와 전통의 주인자리 또는 지도적 위치는 이미 불교의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쩌면 한국불교는 역사의 중심 저편으로 밀려나고 있다함이 솔직하고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쌓아올린 지난날의 연륜과 화려함도 자랑거리가 될 수 없고 주인이고자 하는 주관적인 집착도 부질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몇가지 예를 살펴보면 쉽게 납득되어 질 것이다.
(1)불교세계관의 확립을 근본으로 한 자체내의 청정화합의 실천모습과 구세(救世) 종교다웁게 이웃대중을 향한 헌신적인 행동을 보여줄 때 비로소 신뢰와 존경심을 갖게 된다는 사실. (2)겨레의 염원인 통일의 지평을 열어가고, 민족의 주체성파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며, 민족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전통종교로서의 위치를 지켜가게 된다는 점. (3)가치관의 부재와 제도의 모순으로 인하여 양심과 정의가 조롱받는가 하면 이기적인 사고에 의하여 빈부격차와 세대간의 갈등, 지역감정과 환경오염을 비롯한 환신과 방종 둥 말세론(末世뚫)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한 상황인데 이에 대한 불교적인 처방을 내놓고 구체적인 역할을 할 때 지도적 위치가 확보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도 받게 된다는 점 등이다.
예를 든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수수 방관하고 있는 불교의 모습이 경멸과 혐오의 대상, 또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스스로 자초한 필연적인 결과라 할 것이다.
문제돼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파악에서부터 찾아야 된다고 한다.
그간 승가대중의 자세를 보면 피상적이고도 안일한 현실인식과 무책임하고도 즉흥적인 주의주장만 무성했을 뿐 문제에 대한 근원적이고도 정확한 진단의 노력이 꺼의 없었던 것으로 여져진다.
비상한 일은 비상한 대웅방식올 요하듯이 승단현안의 심각성과 그 원인에 대한 투철하고도 바른 인식을 위한 애씀이 바탕되지 않는 대웅이란 혼란만 가중시키게 되고 만다는 경험적 진실을 상기하면서 몇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ㄱ. 불교세계관과 역사 의식의 결여 역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관에 있다고 한다. 불교를 이념으로 하는 승단도 불교세계관에 의하여 활동 되어질 수 밖에 없다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암울한 승단 현실의 심충적인 원인도 불교 셰계관의 혼란과 부재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교 세계관의 확립을 떠나 어떤 대안을 강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출발부터 빗나가게 되어 있고 결파는 더더욱 어렵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와 함께 역사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마치 미덕이나 전통인 것처럼 착각하는 승가대중의 의식 없음이다. 세간과 출세간의 불이적(不二的) 관계를 통찰하는 안목으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절한 역할을 창출해 내는 역사 의식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원인이라 하겠다. 이에 반증이라도 하듯이 말과 주장과 모양은 불교인데 생각과 생활과 활동 내용은 비불교 ·비역사적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ㄴ. 피상적이고도 안일한 현실인식 불교세계관에 의한 역사의식의 결여는 현실을 인식함에 있어서 피상적이고도 안일한 사고에 안주하게 하고 있다. 승단에 대한 안타까움의 한숨 소리, 거창하고도 화려한 주의주장, 한탄과 원망과 좌절의 몸짓들을 깊숙이 관찰해 보면 그에 걸맞는 주체적인 자각과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무턱대고 어른과 몇몇의 종권자들에게 팩임을 추궁하거나 원망할 뿐, 스스로의 책임에 대한 뼈아픈 자각과 구체적인 노력이 나타나질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모색과 일관된 추진력 부재정화종단이 탄생된 이후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은 치밀한 계획과 원칙도 없이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졸속함과 가시적인 결과만을 노리는 깊이 없음이었다.
승가대중이 주인으로서의 자각과 책임의식을 갖지 못한 채 제도·어른 ·종권자들올 향하여 분노 ·원망 또는 방관 ·좌절감에 빠져 있는 동안 소수 명리에 집착하는 종권자들의 소 영웅주의에 의하여 갈팡질팡해 왔을 뿐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성실함을 찾아 보가가 어렵다.
위에서 짚어본 원인들을 안고 있는 한 불교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한갓 허망한 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우도량의 탄생과 나아갈 방향
ㄱ. 탄생과 구성
그간 승단문제를 논할 때마다 세대교체가 되면 잘 될 것이라는 논리와 주장들이 일정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88년 봉은사 사태는 이와 같은 꿈을 철저하게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 특히 미래 승단의 주인으로서 참신해야 할 젊은 스님들이 당사자 또는 집단적인 이해에 따라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절망케 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인연으로 하여 도반들과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면서 주인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심각한 불교현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근원적인 원인이 불교세계관과 역사의식의 결여에 있다고 보았으며, 이의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책임과 역할이 우리에게 있다는 판단아래 건전한 의견들이 모아졌다.
“개인의 수행과 승단의 문제와 사회적 역할 등 불교 전반에 걸쳐 걱정을 하면서도 개인적 차원의 기다림 또는 방관과 도피가 해결책인 것처럼 여기는 현실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일이 절실한 과제이다. 특히 교계에 만인 되어 있는 불신과 패배감을 극복하고 어른을 잘 모시고, 도반을 아끼며, 후배들을 도웁고 이끌어 줌으로써 당당한 수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 해야 된다. 이런 일은 개인힘으로 불가능하므로 자신과 승단의 문제를 양심적으로 고민하는 각계의 참신한 스님들이 뜻을 탁마하는 장으로서의 대중결사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다고 나아가 그간의 시행착오를 반성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문제의 근원적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는 입장에서 접근하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성 없는 주의주장보다는 주체자들이 먼저 구체적인 반성, 재정리, 방향모색을 위한 실천모습을 보여주는 책임감과 성실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판단아래 선우도량이 탄생되었다.
구성을 대략 살펴보면 취지에 뜻을 함께 하고자 하는 나이 25세, 승납 5년 이상의 비구님스님으로 선우스님의 추천을 받아 참여할 수 있고, 현제 각계의 참신한 선우들이 백여 명 함께 활동하고 있다.
긴급 시안에 대한 효율적인 처리와 발전적인 운영을 위해 실행건우(25)모임과 상임선우(8인) 모임이 있고, 대표선우3인과 사무처장과 재무 각 1인으로 집행부가 구성되어 있다.(필요에 따라 확대할 수 있음.)
ㄴ. 나아갈 방향
투철한 불교적 문제의식과 확고한 서원으로 출가본분과 승풍진작을 공동의 명분과 목적을 위해 헌신한 선우정신의 수행자를 배출함으로써 불교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선우도량의 서원을 마련했다.
1. 불교관 확립을 위한 항수불학(恒隨佛學)2.청정한 승가상 확립 3. 여법한 불교신앙의식 집행 4. 사차을 명실상부한 수도도량 되게 함5. 불교정신으로 민족과 인류의 역사를 가꿈 6. 불교 생명관에 의한 생명 본연의 질서 회복
이런 내용들을 구체화되도록 한다는 전제 아래 연 2회 수련결사를 하고 일정한 도량에서 장기 또는 한철씩 함께 모여 연구, 수행, 정진하는 것을 중심으로 행자교육전문도량과 승가교육청사진 마련, 그리고 교재의 한글화 및 보완과 교수진 단기 교육 사업을 모색하는 등 참신한 흐름이 형성되도록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양심적인 승가대중을 결집하여 비불교, 비승가적 형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찾아냄으로써 승단의 건정성 회복과 밝은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
끝맺음면서
불법이란, 그리고 출가란 무엇인가.
세상을 세상다웁게 하고 자신과 중생을 삶을 부처의 삶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질에 자신을 바치는 삶이 아니던가. 이와 같은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승단이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출가하는 것은 법게의 평등한 진리에 순수하기 위함”이라는 자경문의 정신을 되새겨야 하겠다.
세상이 병들면 개인의 삶도 건강할 수 없듯이 승단이 무너져 내린 다음 개인고 문중도 설 땅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할 것이다. 승단이라는 공동체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모아야 할 때가 지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