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운동을 새롭게 전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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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법성
1991년 10월 116호
(1) 결사운동은 역사의 위기와 기성교단의 타락상에 대한 각성된 인간들의 집단적 대응양식이다. 그러므로 결사운동은 역사의 오염된 흐름으로부터 자신의 고고함만을 지키는 은둔적인 삶의 모습일 수 없으며, 세계의 실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고립분산된 개인들의 맹목적 활동일 수 없다.
각운동(廳훌動)의 사상적 치열성이 결사 주체들의 모임에 하나됨의 튼튼한 힘을 안겨주며 다시 세계와 대중을 향해 걸어나가는 힘있는 발걸음을 담보해 준다.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서 환상과 질곡을 지양해 내려는 각운동이 결사운동의 사장적 지주라면 결사운동은 각 운동을 역사 속에 관철해 가는 조직적 기반이요 발판이다.
불교모에 있어 결사운동의 최초의 창조적 전형은 붓다가 살아 계시던 당시의 원시승가이다. 승가의 구성원은 붓다가 제시한 연기론과 여넓가지 치우침 없는 생맹의 길을 통해 자신의 해탈을 추구하고 올바른 삶의 길을 대중에게 제시함으로써 고통의 세간을 정토의 세상으로 변화시켜 가려 한다.
스스로 깨닫고〔自覺〕대중을 각성시키려는 각 운동의 실천 속에서 먼저 깨달은 이 붓다(佛)와 붓다가제시한 계 ·정 ·혜의 세 가지 배움과 가르침받은 대중이 혼연히 하나되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이 사문〔出家聚〕들과 가르침 받되 자기 해탈의 당당한 주체인 재가대중〔在家聚〕이 하나된다.
그러므로 승가대중이 머무는 곳인 아란야는 세상의 시끄러움을 떠나 다만 고요함을 지키는 곳이 아니다. 질곡의 역사가 강요하는 잘못된 세계관과 소외구조로부터 자신의 삶의 평화와 안락을 지키되 적극적으로 고통받는 세상에 안락의 길을 제시하고 해탈의 삶을 넓혀가는 곳이다.
아란야는 안거를 마치고 세상을 향해 전법의 길을 떠나는 곳이자 세상에의 유행을 마치고 안거를 위해 돌아오는 곳이며, 밥을 벌되 법을 베푸는 곳이며, 스스로 두려움 없는 삶의 길을 얻고 고통받는 세상에 두려움 없이 삶의 길을 제시하는(無뽑施) 곳이다.
그리고 숭가대중은 바로 연기론을 통해 지성사회의낡은 환상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자들이며 승가라고 하는 화해와 평화의 언간공동체를 통해 기성사회의 억합과 질곡을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의 모.텔을 제시한 이들인 것이다.
(2) 동북아시아에서 결사운동의 선례로서는 중국 남북조 때 여산 혜원(慧훌)의 백련사(白運批),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보조(普照)의 수선사(修揮社)와 원묘의 백련사(白畵社)가 주로 이야기 되어진다. 결사운동은 주변 사회상황이 극도의 혼란으로 치달릴때, 그리고 기성 교단이 세상을 정화해 가야 할 윤리적 책무를 다하지 못할 때 결성된다. 여산에 혜원이 결사한 때의 시대 상황도. 북방호족과 한족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과 전란이 끊일 새 없었던 시대이며, 보조와 원묘의 결사도 문벌귀족의 전황과 무신난·선교의 대립등 지배세력 내부의 모순이 심화되고 민중과 지배세력간의 모순이 극도로 첨예화된 시대 상황속에서 이루어졌다. 결시운동의 주체들은 대개 한 시대의 선진적 지식분자들로서 그러한 혼란한 시대 상황에 대해 ‘물러섬’의 행위양식을 취한다.
그러나 물러섬의 행위양식도 결사주체들·의 세계를 보는 시각, 대중과 역사에 대한 간여 양식의 차이에 따라 달리 표출된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물러섬이 좌절한 지식인들의 은둔적 수행의 기풍으로 닫혀진 모습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그 물러섬을 통해 새로운 역사 참여를 감행하기도 한다.
여산 혜원의 결사는 이민족의 침입과 살육의 사대현실에 좌절한 한족 지배계층 일부의 은둔적 수행결 사다. 그들은 불·유·선을 모두 섭렵한 최고의 지성들로서 죄악과 투쟁으로 가득찬 세상과의 떨어짐을 통해 자신들의 정신적 고고성올 유지하며 정토왕생의 종교적 소망을 달성하려 한다.
전쟁과 살육을 일삼는 부도덕한 정치권력에 대한 거부의 의지는 혜원의 사문불경왕자론에 단적으로 표현되고, 타락한 역사의 흐름과 그 흐름에서 물러나 물음없이 살려는 지식인적 삶의 갈등은 신멸신불멸론이라는 영육이원론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생멸하는 육체의 세계와 영묘하여 불평등은 정신세계의 양분은 지식인의 정신적 고고성을 폐쇄된 자기정합성으로 굳어지게 함으로써 고통받는 역사 속에 내려와 소외와 질곡의 역사를 정토로 변혁시켜 내게 할 적극적 보살의 의지를 차단시켜 버리고 있다.
보조는 고려 중말엽의 타락한 숭풍을 개탄하고 산림에 숨어 정혜 닦기를 서원하고 뜻 맞는 도반을 모아 정혜결사를 시작한다. 보조의 수선사를 지탱하는사상적 기반은 하택 규봉의 공적영지 설이고 화엄론의 유심사상이다. 그러나 보조도 초기 저작에서 육체의 생멸과 영지의 불멸이리는 이원론을 지지함으로써 생사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가 갖는 정체성을 동시에 부정하여 생사의 모순을 그대로 열반의 해탈법계로 변혁시키려는 불교적 해탈관에서 이탈하는 편향을 보인다. 그리하여 보조선사는 타락한 승풍에 대한 부정의 실천으로 정혜쌍수의 아름다운 가풍올 창출했지만 열반의 정체성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고통받는 세간에 복귀하지는 못하였다.
원묘의 백련사는 보조선의 관념론적이고 유이론적인 수행관을 천태삼관(天台三觀)으로 비판함으로써 출
발한다. 보조가 「육조단경」 「대혜어록」 「화엄론」을소의로 하였음에 대해 원묘는 「법화경」과 「천태의」「법효얀}매예참」에 주로 의거하여 공부하고 대중올 교화하였다. 그는 정치권력과의 결탁은 거부하였지만 몰락한 지식인·지방향리·지역 백성들을 광범하게 결속하여 결사한다. 그는 주어진 역사현실을 말법의 소외된 역사로 규정하고 끊임없는 참회행을 통해 역사의 죄업을 보살의 원으로 전환시켜 내려는 윤리적 실천을 계속한다.
곧 보조가 본래청정올 자각함으로써 세상에의 초월을 주로 강조하였다면 원묘는 중생현실의 고통과 최업에 착안하여 죄업의 구체적인 참회를 통해 새로운 청정의 인간현실을 구현하려 하였다.
(3) 여산 혜원의 동림사 결사, 보조의 수선사 결사, 원묘의 백련사는 불교결사운동의 창조적 전통이다.
이와 같은 결사운동에는 결사주체들의 불교 이해의 차이와 봉건사회의 사회경제적 제약 때문에 여러 가지자기한계를 안고 었다. 그럽에도 그와 같은 전통 속에는 한 시대의 사상적 윤리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불교교단의 도덕적 결단이 깊이 배어 었다. 창조적 전통은 오늘 시대 대중의 요구와 역사의 부름과 만나면서 새롭게 내용이 채워지고 발전적으로 계승 되어야 한다.
결사는 결코 개인의 견성요도라는 닫혀진 목표 아래-꾸려지는 산중 속에 ‘처박힘’이거나 그렇다고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이런 명분 저런 명분으로 어울려 다니는 ‘떼꺼리’가 될 수 없다. 결사운동은 개별주체의 사장적 각성이 역사문제의 해결과 매개되고 교단과 사회문제의 해결이 각운동과 매개되는 실천적 공동체운동이다.
그러므로 결사운동은 각운동의 사상노선을 통해 꾸려져야 하고 각 운동은 결사운동의 조직노선을 통해 꾸려져야 하고 각운동은 조직노선을 통해 나와 교단, 교단이 서있는 이 땅의 민족 역사와 만나고 민족역사를 해탈의 역사로 변혁시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