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두고 보지 않으면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보고 싶으나 볼 수 없는 것에 더욱 문제가 있다. 듣고자 하나 듣지 못하고, 가고자 하나 가지 못한다. 하지만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 가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범부에게는 더욱 심각하다
앉은자리에서도 볼 수 있고(天眼通), 들을 수 있고(天耳通), 갈 수 있으며(神足通). 남의 마음을 알 수 있고(他心通), 숙명을 통하는 것(宿命通)을 신통神通이라 한다. 이 신통이 방편이 되어 얻어지는 것이 누진漏盡의 경지이다. 진리로의 행보에 비록 신통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내어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보실의 마음이다. 보살의 신통은 중생을 보살핌에 방면이 되며, 중생의 미혹한 발걸음을 바로 세우는 죽비소리이다.
마하목건련은 목련존자木蓮尊者로 불리기도 한다. 지혜제일인 사리불존자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석가모니 열 분 제자가운데 여섯 가지 신통을 통해 중생을 교화한 신통제일神通第一로 알려져 있다.
어느날 목련존자가 천안天眼을 통해 아귀지옥을 살피니 자신의 어머니가 그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계심을 알게 되어 시아귀회施餓鬼會를 베풀어 어머니를 구제하나 이것이 곧 백중(우란분절盂蘭盆節)의 유래가 되었다.
목련존자가 본 것이 어찌 자기 어머니의 고통뿐이었겠는가. 천안으로 살핀 것은 모든 중생의 고통이며, 그 귀로 들은 것은 여느 중생의 어려움일 것이다. 보살의 눈길과 자비의 마음은 지옥 중생에게도 진리의 길을 볼 수 있게 한다.
푸른 안목으로 중생의 고통을 살펴는 것은 먼 곳에 있는 천안天眼이 아닌 내 뜰 안의 매화이다. 마치 울타리에 활짝 핀 매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