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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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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1년 09월 115호
하루 두끼, 저녁은 조금.
차(茶) 이외에는 간식은 일체 먹지 못함.
정해진 시간 내에 자리에 앉지 않으면 산문출송.
송장이 되기 전에는 산문을 나가지 못함. 아파도 눕지 못함.

용맹정진 때 지켜야 할 사항들이다. 공부의 성취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시작하는 게 바로 용맹정진의 기본정신. 장좌불와. 무엇보다 일주일을 눕지 않고 화두를 성성히 챙져야 한다는 게 견디기 힘든 일이다.
용맹정진할 때마다 대중의 힘이 무섭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혼자서 정진하면 쉽게 무너지고 말 이런 일도 대중과 함께 하면 거뜬히 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참들은 대중 처소에서 공부법을 익혀야 된다고 한 모양이다.
용맹정진 때면 간혹 엉뚱한 일이 일어나 대중스님네들 웃게 만들곤 한다. 이런 용맹정진 뒷 이야기는 두고두고 몰리질 않는 지대방 한담으로 남는다. 신심나는 용맹정진 뒷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새벽에 밀려오는 졸음은 참기 힘들다. 대중들은 스멸 스멸 혼침에 빠져들고 있었다. 긴 장 군죽비를 어깨에 메고 경책올 도는 인혜스님의 잠을 깨우는 죽비소리만이 이따금 새벽의 정적을 깨고 숲을 찌렁쩌렁 울리고 지나갔다.
“흐흐혹.”
어디선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에 대중들은 환청이려니 생각하고 저려오는 다리를 다시 고쳐 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복받쳐 우는 듯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구참(久參)스님네 앞줄에 앉은 한 학인 스님이 어깨를 뜰먹이고 있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시요”
열중(憶聚)스님이 이렇게 말하자 옆자리에 앉았던 스님이 얼른 업고 나갔다. 아마 근처 숲으로 데려간 모양이었다. 엉엉 소리를 내며 몇 차례 우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좌중은 금새 조용해지고 정진은 계속되었다. 줄곧 그. 스님의 일이 궁금했는데 행선시간에 도반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 스님 죽비소리에 시달리다 그만 울어버렸대요 그래서 지금 귀에다 솜을 박고 있어요,”
“어떨 땐 죽비소리가 신경에 좀 거슬리긴 하지요 저도 여러 번 놀랬으니까요”
다사 업선(入神)이 시작되었을 때, 비로소 그 직접적인 원인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열중스님의 한마디가 뺀지 설득력 있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공부를 하다보면 마장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의 정진을 방해하곤 합니다. 뱅금 학인스님께서 울었던 것은 아마도 심마의 경계에 부딪친 결과라 생각됩니다. 심마가 찾아오면 모든 보이는 것들이 슬돼 느껴지고, 괜히 서러운 생각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고 말지요, 섬약해지는 것은 참선공부에 있어 큰 병통 중에 하나 입니다.”
열중스님의 힘있는 말에 어두웠던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그 학인스님은 그후로 다시는 우는 일없이 죽비경책을 자청할 정도로 공부를 살해 나갔다.

2
음식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용맹 정진 때는 가볍게 먹고 정신을 맑게 해야 된다고 노스님들은 말씀하신다. 과식은 정진 중 복통을 일으키고 잘못하면 배탈까지 동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배탈 때문에 일어난 일.
입선중에 배탈이 난 스님이 도저히 참다 못해 경책을 보는 인례스님에게 다가가 살짝이 말했다.
“스님, 대사간엘 다녀올까 합니다.”
순순히 허락해 줄 것 같은 인례스님은 갑자기 그 스님을 향해 이렇게 일갈하였다.
“스님이 앉은 그 자리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는 대사간인데 또 어딜간단 말이요”
배탈난 스님은 얼굴이 빨개져 자리에 도로 앉았고 현쪽에선 실낱 같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통 변올 보는 일을 큰일이라 하여 대사(大事)간이라 부른다. 지금도 생사를 해결하는 일이 우선인지, 그 얼( ? )올 해결하는 일이 급한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새로운 화두처럼 느껴진다.

3
용맹정진에서 무엇보다 힘든 일은 졸음을 참아 내야 한다는 것일 게다. 육체의 고통은 수마에 비길 바가 못 된다. 꾸벅 졸게 되면 어김없이 어깨를 들이대야 한다. 그러면 장군죽비가 천둥처럼 선실을 울린다.
따닥 ! 탁! 탁! 탁 !
죽비소리가 경쾌하고 맑아야 잘 쓰는 경책이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 경책을 받는 이도 시원하지 못하고 자칫 죽비블으로 척추를 건드리기 쉽다. 선원에서 안거를 많이 지낸 구참(久參)일수록 죽비를 잘 쓴다. 그러나 잠이 심하게 쏟아질 땐 죽비로도 막을 수 없다. 졸다가
이마를 땅바닥에 절기도 하고 그냥 뒤로 벌렁 넘어지기도 한다.
그날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죽공양(網供養)을 마친 뒤라 약간의 포만감요로 인해 대중들 역시 하나 둘씩 수마에 떨어지고 있었다. 강원에서 올라온 학인스님이 그냥 스르르 누워버렸다. 죽비로 흔들어 깨우자 덜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밤이 깊었는데 왜 자질 않고 앉아있는지 모르겠네. 불꺼요오------.”또 한차례 웃음이 지나갔다.

4
주지스님이 정진하는 대중들을 지도하기 위해 선방엘 들렀다.“눈을 감지 말아요 눈을 감으면 화두가 달아나 ! ”
이리저리 다니시며 잠을 깨우신다. 그러다 어느 수좌스님 앞에 멈추었다. 들릴 듯 말듯한 대화가 서로 오갔다.
“눈을 감지 말고 떠요”
“아 눈을 떠 ! ”
그때 옆에 있던 스님이 주지스님께 재빨리 말했다.“그 스님 눈이 작아서 그래요,”
순간 좌중에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열심히 정진하시던 구암 노스님도 며칠간 ·까칠까칠하게 자라난 수염을 만지며 한참을 웃으셨다. 이런 일로 해서 긴장된 용맹정진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아무튼 대중이 모여 사는 곳엔 싸울 일보다 웃을 일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