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연구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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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여연
1991년 09월 115호
뿌연 백야(白夜)를 지내고 모스크바의 강가에 일찍 산책을 나갔다. 바닷가 포구 같은 살찐 강물들이 넘실대고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평화롭게 자작나무숲 사이를 산책하고 하얗게 피어난 민들레 꽃 사이의 초원에서 담소하는 정경들이 사무친 아름다움으로 나왔다.
볼가강 쪽에서 왔다는 건장한 초로(初老)의 백계 러시아인의 수영이 일품이었다. 어린 강아지 새끼들을 데리고 유유히 산책하면서 담소하는 사람들, 아침 일찍 싱싱한 고기를 낚는 어부들의 몸짓 속에 자작나무숲 아래로 끝없이 피어있는 야생 풀꽃들 속엔 붉은 이데올로기도, 백색 반공주의도 없었다.
오직 존재하는 생명의 몸짓들 뿐. ‘따냐’보살이 아침을 먹으라고 강가에 나왔다. 이분은 먼 곳 사할린에서 사시는데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하며 지금 사할린의 연구소장으로 있으며 20일 동안 대학 세미나에 참석하려 언니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날 밤 그분과 볼쇼이파트르(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라용다)를 보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식사 후 따냐보살과 푸시킨 거리를 지나 거대한 장원에 서 있는 모스크바 대학에 들어갔다. 무성한 삼림 속에 웅장히 버티고 서 있는 건물은 스탈린이 세운 다섯 개의 건물 중 하나라고 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호텔로 쓰고 있는 건물과 이 대학의 건물은 암혹 통치 시대의 권좌의 상징물 같은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석조 건물의 대학 본부와 끝없이 높은 강의 실의 분위기들, 숱한 러시아의 회한의 숨결이 녹아있는 아카데미의 산실, 창 밖에서 멀리 아른거리는 러시아의 대명원, 그 위로 떠도는 인간의 역사를 저미어 보았다.
이 대학 속에 우리의 조선어학과가 있고, 그 커리클럽에 동양철학과 불교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다. 또한 동양학연구소에서는 다산(정햄)연구회, 그리고 조선시대에 사상의 쌍벽을 이루었던 이퇴계, 이율곡 사장 연구 논문들이 발표돼 있었다.
소련의 불교연구의 역사, 그리고 종교 연구에 관한 것은 따로 이 글의 뒷편에 자세히 적기로 하자.
조선어학과를 찾아 학생들을 만나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휴강이어서 포기하고 캠퍼스 벤치에 앉아 학생들이 오가는 모습, 울창한 삼림 위로 흘러가는 구름 조각을 바라보는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그 동료들과 차에서 내려 풀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시 제정 러시아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칼·마르크스의 동상을 건너 크레블린의 붉은 광장을 밟아본다.
시골 학교에서 여행 나온 듯 수줍은 금발머리의 소녀들이 여기저기서 크햄린 궁전의 아이스크림 같은 첨탑을 쳐다보며 무언가 소곤거리고 있었다.
흙은 깃발이 스산한 바람에 펄럭이는 고르비의 집무실 건물, 그 옆 오래 폐쇄되었다가 개방의 물결에 분을 연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의 성상(聖顧)들이 상처 난 역사의 그늘, 그 이끼 냄새들을 풍기고 있었다.
세계사의 거친 격랑 속에서 한 굽이 큰 변혁의 역류를 가르고 숨차게 헤엄치고 있는 세기의 풍운아 그는 지금 저 붉은 깃발 밑에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볼세비키 혁명시대를 지나 줄곧 공산당의 이념 속에서 사회주의를 집행 해 오던 한 인민의 수령이 이제 그 역사를 지탱해 주던 공산당을 떠나 그야말로 인민(민중)의 공산주의의 건설이 실천적으로 이론적으로 가능한지를 그는 묵상하고 있는걸까?
펄럭이는 깃발이 잠시 멈추는 사이 어디선가 읽은 한 칼럼이 바람처럼 잠시 스쳐 갔다.
부다페스트의 만원 버스에 한 사람이 허겁지겁 올라타며 “실례합니다. 선생님들, 안으로 조금만 당겨 주시지요”하고 승객들에게 외치자 차장이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선생이라고 하지 말고 동무라고 부르시오.”
그에 승객은, “아닙니다. 동무들은 버스를 타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검은 승용차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 검은 승용차(소유)에 대한 인민의 증오와 분노가 가시지 않는 한 어떤 개혁도 어떤 신앙도 실패 하리라는 그 칼럼의 의미를 고르비의 가슴 복판에 심어주고 싶었다. 진정 민중을 위한 공산주의 해체를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밤의 볼쇼이파트르는 정말로 장관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케스트라, 연극 무슨 귀한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중들은 보통 부르주아의 계급들이 속은 텅텅 빈 채 문화의 허영, 거드름의 냄새들로 그득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곳에서는 인민 모두가 함께 동참하여 정말로 즐겁게 관람하는 문화의 공동체, 동질성을 절감했다. 남녀노소 관객들이 한결같이 그들 일상의 삶 그대로였으며, 입장료도 일반 극장 요금이었다.
모스크바의 일정은 소련문화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것으로 대충 마치고 정작 불교창립일을 봐야 할 레닌그라드 행을 시작했다. 밤 12시 기차를 타고 가야 할 여정에 표를 구할 수 없어 웃돈을 얹혀주고 아이에어로프 소련 항공으로 발트해(海)가 맞닿는 레닌그라드에 도착했다.
대충 승객들이 떠나고 만나기로 한 보디 불교단체(Bodhi Buddhist Com-munity) 레닌그라드 회장(이 협회는 국재연등 불교회관의 원명스님이 몇 차례 소련을 방문하여 결성한 불교회다인 이고 폴싸코프씨가 공항에 나오지 않아 황량한 마음으로 한참이나 서성이고 있는데, 얼마 후 한아름의 보라색 라일락 꽃더미를 안고 소련 친구들이 찾아와 나를 맞이했다. 비 오는 레닌그라드의 네바강을 지나며 소련공항의 감동이, 생을 묘한 환상의 춘풍으로 들뜨게 했다. 난생 처음 남자한테 꽃더미를 받는 감동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의 인간적인 향기가 물씬 라일락 꽃향기가 되어 내 가슴에 쑤셔박혔다.
페테르스부르크였던 도시가 1917년 레닌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1924년 이후 불여진 레닌그라드는 네바강의 렐타지역에 형성된 섬과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물의 도시였다.
1703년 표트르 1세가 발트해를 중심으로 스웨덴, 핀란드등과 해상권을 쥐는 경쟁에 이기자 여기 세운 도시로서 표트르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건축가와 조경사를 초빙하여 제정 러시아 수도로서 이곳을 건설했다고 한다. 인구 5백만의 소련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그러나 지금은 고색이 창연한 화려한 옛 건물들로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의 방황하는 영혼들도 잠든 조용한 도시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인 이삭성당은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와, 30층 빌딩에 맞먹는 높이의 건물로 우뚝선 채 그 옛 영화의 쓸쓸한 그림자를 황혼녘의 네바강에 뿌리고 있었다.
잠시 에르미타즈 박물관의 연초록잭 대리석에서 18세기 말 절대권력을 흔들었던 에카테리나 여제의 호사스런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종교가 권력과 야합하여 번성하는 역사는 곧 망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몇 개월 전 새로 문을 열었다는 티뺏 수도원(Celapa Buddhist Chard)을 방문했다.
레닌혁명 전 세웠었던 라마교가 그 후 폐쇄되어 닫혔는데, 다시 신도들에게 문을 열어 얼마 전 티뺏에서 Ten Zen스님이 오셔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몇 시간 스님과 소련불교의 전망과 그 활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한국불교 창립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타쉬겐트에서 이주해 온 최처사와 라마사원을 나와 레닌그라드시 협회에 소속돼 있는 고려문화센터(Korean CultuIal Center)에서 불교강의를 가졌다.
200여 명 모인 그들은 거의가 한국말을 잘 못해서 최근에 ‘보디불교’를 통해 신자가 된 최처사가 통역을 하며 한국문화와 불교사상, 그리고 한국의 현 정치상황에 대해서 두 시간 법회를 가졌다. 교포들은 무엇보다 모국의 변화하는 현실을 더 궁금해 하였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았다. 할리 사원이 마련되어 법회를 통해 불교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으며,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불교적 정서를 지니고 살아온 교포 3세들이었다.
혁명이후 거의 종교가 사라져 버려 소련의 ‘불교’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낯선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체제로 정비되기 이전에도 러시아에서는 그에 병합된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신앙을 갖고 살고 있었다. 그 중 불교를 믿던 대표적 종족은 현재 러시아 공화국 내의 부리야트(BuIyat) 자치구의 부리야트 족 및 튜빈(Twin) 자치구의 칼버크족, 우리얀카스키족 등이다. ·
이들은 몽골족 계통으로 라마교를 오랫동안 신앙하고 있었다. 그러한 역사를 지닌 신자들은 혁명 이후에도 바이칼호수의 근방에 살면서 불교적 정서와 의식을 지니며 살아왔었다.
또 러시아어l서는 19세기 말부터 불교의 논리체계에 관심을 갖는 일부의 학자들이 배출되어 왔으며, 이들에 의한 불교 연구의 성과는 실제로 많은 귀중한 시사를 던져주었다. 최근 에는 러시아의 많은 도시 특히 레닌그라드, 타쉬겐트, 알마타 지역 및 발틱 3국 등에서 불교의 선(禪) 수행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선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련 과학아카데미(Academy of Seieng the USSR)에 있는 동양학 연구소(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레닌그라드 지회장 에부게니 A.트르치도브 박사에게 찾아갔다. 그에게 종교 연구의 이론적 전제에 관한 논문을 받고 그 글을 통해서 소련의 과학적 무신론에 관한 이론과 불교연구 역사에 대한 글을 여기에 써 보았다. 소련에서의 종교연구의 이론적 실제는 과학적 무신론(mamhmy ateizm) 이라 했다. 과학적 무신론이란 종교의 환상적인 허위성과 필연적 소멸을 폭로해내는 유물론적 관점이라 하겠다. 따라서 ‘과학적 무신론’은 소련사회의 총체적 세계관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과학적 ~무신론은 그 자체의 독특한 문제들과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종교가 지닌 속성에서 연유된다.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대람되는 관념론적 철학은 그것의 사회적 인식론적 뿌리를 찾아서 비판하면 되지만 종교는 단순히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체의 정서와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심리적 ·정서적 뿌리를 찾아 비판한다는 것이 소련 학세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종교는 사회적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서 정서적 차원을 지니고 있으므로 단순환 이데올로기 비판으로는 종교가 소멸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지닌 정서적 차원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무신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