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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보낸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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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황숙희 1991년 09월 115호
일간신문에서 해인사 수련대회에 대한 기사를 읽었을 때에는, 남편과 함께 여름휴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올 여름 휴가는 해인사 수련회로 가는 게 어때?”라고 남편이 제의할 때, 묘한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수련회 참가의 결심을 굳혔다. 정식으로 절에 가서 불공 한번 드리지 못한 우리들이었지만, 항상 불교를 좋아하고, 불교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신청서를 받아서 보내고, 동참 통지서를 받고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이미 해인사의 숲과 산자락을 맴돌았다. 이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다, 길지 않은 며칠 동안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파에 얼룩진 마음을 정화하는 기회, 처음 마음낼때 이미 깨달음이라니. 휴가 기간이라 고속도로가 많이 밀릴 것에 대비해 출발하는 날은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사찰에서처럼 3시에 가상하는 훈련은 하루 전에 이미 시작된 셈이다.
해인사에 도착하여 종무소에 동록을 하고 남편과 함께 절 주위를 산책했다. “휴가 치고는 이렇게 멋진 휴가가 어디 있겠니? 다음에는 아이들과 같이 오자.” 장마비가 계속 내렸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더욱 차분했다.
첫날은 발대식에 이어 저녁공양, 그리고 저녁시간에 발우공양하는 법과 사찰예절, 행동요령등을 익혔다. 저녁 10시에 취침하여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는데 3시에 일어나야 하니 우선잠이 부족했다. 아첨예불, 108배, 참선까지 하고 나니 ‘이거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 앞으로 4일간을 어떻게 버텨내지?’
그러나 다음날부터 몸이 벌써 사찰생활에 익숙해지고 같은 조원들과 친숙해짐에 따라 하루하루가 즐거워지고, 스님들의 설법을 들올 때마다 가슴깊이 일어나는 환희심에 더욱 열심히 수련에 임하게 되었다.
108배를 빠짐없이 다 해내었는데, 몸은 지쳐가면서도 머리 속은 점점 밝아져 오고, 가슴의 응어리는 눈녹듯 풀리어 톰과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참선할 때, 강의들을 때, 반가부좌를 하고 있는 일이란 정말 고역이었다. 화두를 찾느니, 불교의 큰 진리를 재치느니 하는 것보다 우선 내 다리의 통증에 무감각 혜지는 법을 찾고 있었다. 넷째 날 참선 때에는 정말 그 작은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30분까지만 움직이지 말아야지, 15분만 더, 5분만 더------’ 그러면서 j50분을 꼼짝않고 견디어 내고 보니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천수물을 그냥 마셔야 하는 고역(?)을 겪으면서 배운 발우공양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가족을 위해 매일 조금의 고민을 해가며 식단을 짜고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로서 나는 너무 많은 음식을 낭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반찬 가짓수는 서너 가지, 조리도 깔끔하게, 한끼에 다 먹을 만큼 양도 조금만 해서 버리는 것이 거의 없도록 하는 극도의 절제된 음식문화가요즈음 조금 풍요로워졌다고 흥청대는 세태와 많은 대조를 이루었다. 내 아이를 포함해서 요즈음 아이들 중에 음식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 아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밥알 하나 반찬 한 쪼가리 버리는 것 없고, 자신이 먹은 그릇은 자기가 설거지하는 발우공양의 정선은 아름다운 절제와 자율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그곳에 참여한 많은 젊은 청년들을 보면서 역시 감동했다. 수련회 동안의 힘든 수련과정을 꼼짝 않고 이겨내는 아들의 자세는 일상의 근면함을 넘어서는 경건함을 가지게 했다. 움직임 없이 참선하고, 1080배를 꾀부리지 않고 해내고, 몸은 정진을 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내는 모습에서 불교의 장래와 나라의 장래가 밝아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수련일정 중에서 가끔씩 만나 얘기할 수 있는 남편의 모습에서도 새로운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사화 생활에 쫓기어 진지한 삶의 자세를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 우려들인데, 하루하루 안정되고 맑아져 기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미더운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4박 5일의 시한부 출가인 수련회. 이제 그 고행의 마지막에 수계식을 거행했다. 진언을 외우고 연비를 하는 순간 왜 그리 눈물이 나오던지. 이번 수련회는 내 삶의 긴 여정에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의 시기였다. 가산의 맑음과 해인사 스님들의 절제를 가슴에 가득 안고 대산 해인사 스님들께 존경과 신뢰를, 무한한 감사를: 남기며 떠나갑니다. 성불하십시요


황숙희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남매의 엄마로 가사일에도 분주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못다한 학문의 꿈을 이루고자 영어공부에 열심이다


참선뒤의 투명해진 가벼움
공도연

“웬 죽이에요.”
“너 오늘 절에 가잖아.”
“……”
아침상엔 콩과 쌀을 갈아서 만든 우유 빛 콩죽이 놓여있었다. 짐 싸기에 바빴던 분주함 속에서 엄마의 따스한 정성이 해인사행을 가다듬게 했다.
안개비로 처음 만난 해인사. 적당한 무게의 배낭과 받쳐든 우산 속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콧노래가 흥얼 거리고 있었다.
짐을 풀고 씻었다. 먼지와 생활의 때까지 씻어내고 느슨했던 일상에서 깨어나 이곳의 나로 새롭게 일어 서고 싶었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위대했던(?) 6조에 소속된 것은 엉터리 수련생의 첫 발자국이었다. 천수를 무려 4번에 걸쳐 보신했으니 그놈의 고춧가루가 웬수였다. 어느날은 공양 끝에 잡담으로 조원 모두가 눈감고 서 있는 또 다른 참선(?)까지 맛보았으니, 우리 조의 남다른 친밀감은 당연했다. 물 사건 아니 물고문은 두고두고 우려먹을 에피소드로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으리라. 조장 아저씨의 유머로 좀은 딱딱할 수 있었던 일정 속에서 웃음은 늘 우리의 것이었다. 내년을 기약했던 6조에게 모두 재회의 기쁨을!
강행군은 시작되었고 처음 해보는 절은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108배를 거뜬히 해내는 주위 사람의 신섬에 눌려 다음날은 오기로 도전했고,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절의 횟수를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을 썼더라면 더욱 세련된 수련생으로 기죽지 않았을 텐데 1080배, 그것에 임하는 모두의 눈빛이 진지하고 엄숙했기에 함께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처음엔 무조건 굽히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온 몸에 열기를 느꼈다. 횟수는 다 채우지 못했지만 이 싸움에서 나는 이겼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절내를 구경하는 날, 숲과 나무를 함째 보았다. 짜여진 일정 속에서 수련장과 세면장을 오가기에 바빠 나무는 봤으되 숲은 보지 못한 셈이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해인사 전체와 만났고, 팔만대장경에 기울인 정성은 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이었다. 옛분들의 지혜와 여유에 말을 잃었고, 나무 말리기를 3년, 한 자 쓸 때마다 절을 하고, 3년을 연습하여 하나의 글씨체로 통일시킨 면면들이 듣고 있는 이를 고개 숙이게 했다. 고고히 앉아있는 팔만대장경을 바라보며 내 삶에 던져진 정성과 노력을 자문했다. 얄팍하고 짧은 시야로 하루에 급급하며, 그것이 전부인 양 바둥거렸으니.
참선시간이면 영화 한 편씩을 만들었다. 졸음과 잡생각은 총출동하여 타임머신은 여기저기 오가며 굳이 제목을 붙이면 공상 비과학 영화였다. 망념이 허리깨로 죽비가 느껴지면 호흡을 따라가다 어느새 필름은 또 돌아간다. 그러나 한 사간의 인내를 풀고 나면 육신에선 샘물이 흐르고, 투명해진 가벼움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사탕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는 햇살이 눈부셔 문을 좀 닫아주겠느냐는 말에 한 치의 햇살도 들어오지 않게 세 번에 걸쳐 수고해 준 학생에게 침묵으로 고마움을 답했다. 저녁 공양 시간이었기에, 그리고 마지막날 예불 전에 책이 없어졌고 혼자 법당안을 헤매는데 함께 찾아주는 이가 바로 그 학생이었다. 따스한 배려에 깊이 감사하며 마음을 어떻게 표하고 싶은데------그때 호주머니에 만져지는 것이 있었다. 사탕 2개로 내게 온 달콤한 친절을 대신했다. 북소리에 눈을 뜨고 긴 호홉 내쉬며 시린 물에 얼굴을 담그면, 그 올림은 더욱 투명해진다. 새벽 하늘의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의 미소를 받으며 법당에 이르고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부 깊숙이 닫혀있는 창으로 바람이 찾아 들고 심신이 모두 깨어나 예불에 들어간다. 4박 5일의 생활 속에서 가장 귀하고 맑은 순간이었다.
나는 이제 이곳에 있다. 혼자 하는 108배나 참선이 몸에 익지 않아 서툴지만 거리나 버스에서 해인사를 오가는 생각에 빠지면 혼자 미소 지으며 넉넉한 여유가 흐른다. 그곳에서의 짧은 수련은 내 젊은날의 깊이를 더했고, 훗날 생활에 흠뻑 젖어 있을 때 바람에 실려 은은한 향으로 다가오리라. 아직 그 모든 순간이 살아 숨쉬기에 지금은, 이야기 꾸러미를 채우고 있다.
감사와 수고의 인사를 스님 모두에게 보냅니다. 정말 힘드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