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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宗祖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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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태완 2001년 06월 232호
중국 송대宋代의 설숭契嵩 스님은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에서 말하기를, “우리 부처님께서는 올바른 법의 요체로써 가르침의 종宗으로 삼으시고, 은밀히 전해 주는 것으로써 가르침의 조祖로 삼으셨으니, 종은 곧 성현이 의지하는 도道의 원천이고 중생의 묘한 근본이며, 조는 곧 만세에 계정혜戒定慧를 배우는 자의 커다란 본보기이다.”라 하였다. 여기에 따르면 종宗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法의 요체요, 조祖는 그 가르치신 법의 전수傳受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종은 모든 성인과 중생의 바탕이고, 조는 불교를 배우는 자가 의지할 영원한 본보기이다.
그러나 보통 종조宗祖라고 하면, 이런 철학적인 의미보다는 한 종파宗派를 창시한 개조開祖를 의미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종파불교가 형성된 이래로 생겨난 개념이다. 중국에서 불교는 후한後漢과 동진東晋 시대의 경전 번역시기를 거쳐 남북조南北朝 시대 이후에는 번역된 경전의 내용에 대한 연구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때 연구자들은 경율론 삼장의 여러 불전 가운데 각자가 최고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 학파나 실천 단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들 단체를 종파라고 일컫고 이 때의 불교를 종파불교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인도에서의 불교의 발전이 부파불교의 형성과 발전에 의하여 전개되었다고 한다면, 중국에서 불교의 발전은 종파불교의 개창과 발전에 의하여 전개되는 것이다. 이 때 종파불교를 개창한 개조開祖를 종조宗祖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한 종파를 개창한 개조를 종조라고 하여도 그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선 개창조의 경우에 종파로서 하나의 교단의 형성이라는 역사적인 역할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그 교단의 종지宗旨를 수립하여 제공한 이념적 역할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인물이 바꾸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두 역할이 명백히 한 인물에 귀착되어 시비를 불러올 여지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두 번째는, 하나의 종파 내에서도 시대가 내려오면서 여러 개의 다양한 종파가 새로 생겨나오기 때문에, 이념적인 기준으로 하든지 역사적인 기준으로 하든지 종조를 정함에는 또 줄기와 가지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선종禪宗의 경우를 보면, 중국의 선종은 달마종達摩宗이라고도 불리듯이 일반적으로 보리달마를 개창조로 한다. 그러나 보리달마라는 인물이 어떤 형태로든 선종과 관련되는 역사적 실존인물임에 틀림없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 내용을 파고들면 달마와 연관된 많은 전적이나 일화가 후대의 가탁假託 내지는 전설일 뿐 믿을 수 있는 것이 극히 적다는 것은 이미 여러 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진 바이다. 사실 선종에서 보리달마는 역사적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 如何是祖師西來意’라는 선의 종지를 묻는 질문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이념으로서의 존재이다. 즉 달마는 선종이라는 교단을 세운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선의 종지를 대표하는 이념적 존재로서 선종의 개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달마가 동토東土의 초조初祖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천西天 28조라고 하듯이, 이념적 개조를 추구해 올라가면 결국 마하가섭을 거쳐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로 귀착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선종의 개조로서의 달마는 역사적 인물로서가 아닌 이념 즉 법法으로서의 개조인 것이다.
달마로 대표되는 선의 이념을 실제 중국땅에 정착시킨 인물은 초조달마 후 육조에 해당하는 혜능慧能이다. 인도 이래 불교 수행의 전통을 따라 점수漸修에 중점을 두었던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달리, 남쪽 소주韶州의 조계曹溪에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여 주석했던 혜능은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혁신적인 선법禪法을 주창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중국 조사선祖師禪의 개창조가 된다. 혜능은 역사적으로도 선종이라는 한 교단을 이끈 대표자이면서, 동시에 언하言下에 문득 견성見性한다고 하는 조사선의 이념을 개창한 이념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선종을 대표하는 조계종曹溪宗은 그 명칭을 혜능에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세밀하게 살펴보면 조사선 수행의 요점을 나타내는 표어인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의 실천은 혜능 때부터가 아니라, 남악南嶽에게 계발된 마조馬祖와 청원靑原의 법을 계승하는 석두石頭에게서 비로소 뚜렷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들 역시 새로 선종의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므로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조사선의 한 종파의 종조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들 문하에서 위앙종仰宗?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운문종雲門宗?법안종法眼宗?임제종양기파臨濟宗楊岐派?임제종황룡파臨濟宗黃龍派의 이른바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는 조사선의 종파가 화려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 7개 종파에도 제각각 종조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오가칠종의 종조는 선법禪法이라는 이념적인 측면에서는 모두 조사선으로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들의 차이는 이념이 아닌 인물의 차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7종이 선종의 종파임에는 틀림없으므로, 이들 종파에서도 종조를 말할 수가 있다. 한편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대혜종고大慧宗는 간화선看話禪을 주창하였지만, 특정한 종파의 종조로 불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간화선을 위주로 하는 오늘날의 우리 나라 선종의 진정한 종조는 대혜종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종조宗祖라고 할 경우에 그 말에는 이념적 대표자냐 역사적 인물이냐 하는 양 측면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종교의 핵심이 인적人的 집단의 구성과 그 계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을 체험하고 실천함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종조라는 말도 ‘종조가 어느 집단의 누구냐?’ 하는 역사적 인물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종조가 어떤 이념을 대표하느냐?’ 하는 법法으로서의 의미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아가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은, 종조가 대표하는 그 법을 지금의 여기에서 우리가 얼마나 잘 살려내고 꽃피우느냐 하는 것이다.
《육조단경》에 보면 혜능은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도 내 가르침을 실행한다면 내가 있는 것과 똑같을 것이고, 내 가르침과 어긋난다면 내가 있어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종조를 운운하는 진정한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선을 올바르게 실행한다면 나와 종조가 별개의 사람이 아니라 내가 바로 종조요 종조가 바로 내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되지 못하고 종조를 자신이 소속된 단체를 선양하는 광고물로만 취급한다면, 종조란 단순히 역사의 먼지 속에 방치되어 있을 뿐이며 이는 《장자》에 나오는 초나라의 신령스런 거북이 껍질과 같은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