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불교대중
이런 양측의 주장에 불교대중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양측 모두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나 속으로는 ‘종권지속 혹은 명예퇴진’대 ‘종권장 악’이라는 ‘실리’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양측에는 진정으로 개혁을 위해 참여한 분들도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흐름을 주도하거나 입장을 관철시키기에는 한계가 명백할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대중들은 개혁은커녕 망신만이라도 그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9대 종회가 개원되고 제도개혁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그 동안 개혁작업이 진행된 것은 어느 분야에도 없지 않는가
진정한 개혁이 되려면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하는 바탕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종단을 주도하여 많은 문제를 파생시킨 장본인들이 개혁 운운하거나 그 장본인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단체에서 개혁을 추진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지금 종단은 일대 위기에 빠져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믿고 기댈 만한 뚜렷한 세력이 없다. 그래서 대중은 더 허탈하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다시금 노정된 종단의 제 문제는 언제나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앉아서 구경만 해야 하는 것일까?’
‘현실적 대안이 없더라도 그냥 묵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떠나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 것인가?’
‘그래, 싸워라. 싸우다 4싸우다 깨지 치면 그때는 정신을 차리겠지.’
소위 종단의 간부들은 이러한 대중의 생각을 아는 것일까?
불교정신과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종단
그 동안 종단은 권력과 재력 있는 소수 인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왔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법력(法力)의 상징으로 여겨왔던 종정과 원로들이 철저히 홀대 받고 권력과 금권에 의해 움직이는 총무원장과 중앙종회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굳히 펴는 시도에서 이번 사태가 커진 측면도 없지 않다.
정신적 지도자인 종정과 원로의 추대가 금전거래와 같은 선거운동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드썼던 것이다.
주지를 안 맡으려고 새벽녘에 결망지고 조용히 떠나는 풍습은 옛날 일이 되어버리고, 주지자리 하나 맡으려고 혈안이 된 오늘의 모습에서 비애를 느끼지 않은 불교도는 드물 것이다.
불교를 근대화·현대화하자는 주장이 물질의 노예가 되자는 것이 분명 아닌데 오늘 우리 불가{佛家}는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불교교단의 실제적 주인이어야 할대중을 관객으로 전락시킨 채 운영되어온 종단에는 이제 ‘도덕성’이라는 새 문제까지 대두되었다.
사실 이번에 제기된 문제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진작부터 ‘항간에 유포’되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큰 문제없이, 종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연임되었었다. 그리고 그 연임에 적지 않은 역향을 끼친 세력들이 제 그 문제를 들고 나와 물러가라고 외치고있다.
자가당착도 이런 자가당착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 듯하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고 이러한 도덕성이 한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관계로 얽혀있다는 데 있다.
정권의 블교예속화
종단 간부들의 이와 비슷한 약점은 정보기관에 적잖이 포착되어 정권의 불교조정의 끈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정열처럼 되어 있다. 약점 잡힌 종단간부가 정권의 요구를 쉽게 거절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종단 문제가 터질 때마다 늘 정부측의 움직임과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이번에도 정부측은 다음해의 총선, 대선에서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흠집 없는 인사는 총무원장이 될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소문까지 떠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물러나지 않고는 ‘불교개혁’은 한발짝도 진전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권으로부터 자주화되지 못한 불교가 무얼 개혁한단 말인가 개혁의 제일은 정권의 예속으로부터 불교 자주화를 획득하는 일이다.
그럼 이 일은 누가 할 것인가?불행하게도 이 일을 담당할 확고한 주체는 아직 형성되어 있지 못한 듯하다. 이번 사태에서 승가대중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두 번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5월 1일 해인사회의와 7월 8일 승려대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척한 대로 이러한 대중의 움직임은 스스로 뚜렷한 주체를 세우지 못했고, 승려대회는 대회주최자와 참여 대중이 전혀 일체감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수대중이 소수 종단 정치가에게 말렸다는 해석이다.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이 험악하고 능수능란한 종단 정치가들을 능가할 수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래도 믿을 건 대중뿐
제가불자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여 재가 단체 중 그 규묘면에서나 성향으로 보아 가장 진보적이라는 명가를 받는 대불련, 대불청등이 이 사태를 거시 적으로 보지 못하고 일면만을 꼬집는 ‘건의문’올 발표해 한쪽의 입장을 두둔하는 결과를 빚었다는 해석이다.
비록 대불련은 후에 해명기자회견을 갖고 그 건의문에서 단체이름을 매긴 했지만 이후 사태 진전에 따라 중재 혹은 압력집단으로서의 역할에는 위축을 자초한 것으로 풀이해 미숙함을 드러내었다.
싸움은 세속법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소식이다.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고 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는 것이다. 꼴불견이다.
이번에 열리는 중앙종회에서 어떤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지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우리가 파악한 본질적이고 구조적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믿을 것은 대중뿐인 듯하다. 비록 아직까지는 미숙하고 뚜렷한 구심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승가·재가를 막론하고 좌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듯하다. 가능한 모든 양심세력과 대중이 결집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규탄하고 더 이상의 확전은 막아야겠다. 그리고 현실 가능한 작업들을 전개하자.
예를 들면 대중과 양측 모두 합의 가능성이 전망되는 종정문제를 먼저 해결토록 하는 것이다. 사실 대안이 없는 종권문제에 대중의 관심은 적다. 그리고 이의 해결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때문에 ‘종정’의 권위와 상정을 살릴 수 있도록 종정추대는 종권 문제와는 연계되지 말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 대안 재시가 없는 개혁에 관해서도 전체대중이 수궁할 수 있고 제도의 병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대안을 내어 총정리해 보는 것이다.
산발적으로 제키되는 본사중심제 도로의 전환, 유력사찰과 종단의 재정 구조 개편, 무능 ·부패 인사의 퇴진 등을 대중과 양심세력이 함께 결집해 ‘진정한 여론’과 ‘진정한 종도의 요구’가 무엇인지 내외에 천명하자.
지금도 묵묵히 수행과 중생제도에 여념이 없는 대중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