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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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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1년 08월 114호
무명옷에 풀 먹이는 작업을 하였다. 무엇보다 무명옷은 풀 기운이 살아있어야 제 맛이 난다. 아무리 낡은 옷이라도 새로 풀을 해놓으면 처음 업는 옷처럼 기분이 새롭다. 서걱서걱하는 그 느낌이 언제나 좋다. 특히 삭발 목욕한 날 꺼내 입으면 그 상쾌함과 맞물려 일상이 한참이나 훈훈해진다.
모직으로 지은 승복은 여러 가지로 편리한 게 사실이지만 무명이나 광목 옷 만큼 정이 가질 않는다. 양복 천의 세련된 분위기가 어쩐지 싫은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산중에선 무명옷이 단연 돋보이기 때문일게다. 많이 낡아 한두 군데 기워 입으면 괜히 수행자로서 당당해지려 한다. 중노릇이 익어간다는 단순한 사실보다는 수행자의 그런 삶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먹물옷은 명암(明暗)이 없는 빛깔이다. 늘 봐도 물리질 않는 게 참 신기하다. 수행자는 옷을 기워 입었다고 해서 결코 초라한 것이 아닐게다. 세속적인 명예나 이익에 길들여질 때 먹물 빛은 흉하게 변색되고 만다. 모두가 먹물 빛 사상으로 돌아갈 일이다.
지금껏 풀 먹이는 빨래를 많이도 했다. 절밥은 그냥 배우는 일 없이 먹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제는 굳이 다림질을 하지 않고 밟기만 해도 입을 정도로 손질이 매서워졌다. 풀을 쑤어 다림질까지 끝내려면 몇 번의 손질을 거쳐야 입을 수 있다.
날씨가 좋아야 한다. 풀 먹인 뒤 햇빛에 말리지 않으면 쉰 냄새가 나기 쉽다. 오늘처럼 바람이라도 약간 있는 날이면 빨래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
역시 일은 시작하기가 힘든 것. 금세 해치우는 일인데도 게으름이 생기면 그냥 며칠을 미뤄둔다. 사실 양말짝이라도 빨지 않고 그냥 두면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빨랫더미라도 놓여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늘 찜찜하다. 그래서 말끔히 세탁하여 빨랫줄에 널고 나면 새삼 마음이 밝아 오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다른 날처럼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빨래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흐트러진 내 일상 한 부분을 정리한다는 기분에 그랬을 게다.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는 건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
그전엔 밥을 끓여 풀을 쑤었다. 풀 기운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점이 있다. 언젠가 밥풀을 만들고 있는 나에게 도반이 이런 말을 했다.
“오늘 한끼 굶어야 하겠소.”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일침이었다.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밥을 옷 손질을 위해 소비한다는건 어찌 보면 시은(施恩)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밥 찌꺼기를 버릴 때마다 마음이 편하질 못했는데 도반의 한마디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밥을 버리면 채석보살이 밥알이 썩을 때까지 앉아서 운다.”
경전에 나오는 말씀. 이제는 밀가루로 풀을 씀다. 바글바글 끓는 물에 따로 풀어 놓은 밀가루를 부어서 몇 번 저어주면 된다. 덩어리도 생기지 않고 곱게 풀을 낼 수 있다.
이번엔 치대는 순서다. 조그만 자루에 풀을 한 번 거른다. 빨래통에 옷을 넣어 오래도록 치대어야 골고루 풀이 든다. 풀을 좀 세게 먹이려고 물을 조금만 부었다. 장마철엔 다른 때보다 풀 기운이 빨리 시들해지는 걸감안한 조치다. 치대는 무명옷은 사미시절부터 줄곧 입어왔다. 그새 먹물 빛도 많이 바랬고 같은 천으로 잇댄 부분도 생겼다. 이 옷을 처음 입을 땐 다림질한 부분이 구겨지는 게 싫어 차를 탈적에도 아예 선 채로 있다가 내리곤 했다. 그때의 그런 호기가 왠지 새삼스러워진다.
이쯤해서 빨래를 널고 나면 한숨을 돌릴 차례가 된다. 요즘은 빨리 말리기 위해 탈수를 살짝 해주곤 한다. 솔기가 있는 저고리는 뒤집어서 긴 대나무에 끼워서 두면 골고루 마른다. 바지는 길게 널어두면 꾸겨지는 부분이 적다. 이것으로 일단계는 끝마쳤다.
다림질만 하면 옷 손질은 끝난다. 옷을 반듯하게 접어 차근차근 밟은 다음 다리미질을 하면 일하기가 쉽다. 뒤집은 채 꼼꼼하게 다리미질을 하고 다시 바로 뒤집어서 손질해 주면 비교적 간단하다. 힘주어 다리미질을 할때 마치 어지럽던 마음도 곱게 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다리미질이 끝난 옷은 와이셔츠 모양으로 접어서 보관한다. 손놀림이 많이 빨라졌다. 늘어난 건 빨래하는 실력뿐인 듯싶다.
이러한 과정을 끝내고 나면 기쁨이 저절로 고여 온다. 일을 하나 마무리 한다는게 이토록 즐거운게 새삼 내 생활에 충실할 때 기쁨은 더욱 커진다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세탁기가 좋아도 손으로 하는 빨래 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손빨래의 즐거움을 세탁기는 대신해 주지 못할 것이다. 거품에 땐가 씻겨져 나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짜릿한 기쁨이고, 맑은 물로 행굴 때는 어두운 기분도 환해진다.
무명옷에 풀 기운이 시들해지면 또 풀 먹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일은 곧 내 수행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어떤 일을 반복함으로써 자기의 질서에 길들여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