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이 땅에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만큼 혼돈에 빠져 있다.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악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어 올해 초부터 국민의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어 반정부 시위와 항의 규탄 성명이 날마다 이어졌고 거리는 최루탄으로 메워졌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거의 팔짱을 끼다시피한 채 정세의 가닥을 잡지 못하여 참으로 국민의 불안감만을 높였다. 게다가 이 나라의 열세번째 재벌에 속한다는 한보그룹이 엄청난 부도를 내면서 쓰러졌고 이런저런 여파로 올들어 지난 2월 초까지 50억 달라라는 사장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보그룹이 각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액수가 무려 5조원이 넘어 정부수립 이후 국가 경제는 최악의 위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실정에 놓여 있다. 그뿐이 아니다. 난데없이 북한의 핵심 권력자이며 ‘주체사상’의 창시자라고 하는 사람이 중국의 한국대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하는 대단히 중대한 사건도 발생하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 정도만해도 ‘난리북새통’ 인데 연이어 터진 사건들은 도대체 믿어야 될지 아니면 무슨 각본에 의한 연출인지 종잡을 수 없다. 총파업 정국이 고조에 달하자 ‘한보그룹’ 의 부도가 발생하여 천문학적 액수의 부정대출과 그 대출압력 의혹으로 정권의 핵심인물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근로대중의 절박한 요구는 뒷전으로 몰아 버렸다. 그리고 부정대출과 관련하여 대통령인 김영삼씨의 둘째 아들 김현철이 연루되었다는 야당의 주장이 차츰 국민의 공감을 얻어가자 북한의 핵심인물 황장엽의 망명사건이 터졌고, 이후 이미 오래 전 한국에 망명 귀순한 이영한이라는 사람이, 공안기관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에 의해 총격을 입어 거의 사망에 이른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불과 한 달 남짓 시이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 사건의 복잡한 내막으로 말미암아 이것들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은 또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앞서의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지 ‘의혹의 눈총’ 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 국민 일반의 심리이다.
왜 이런 국가의 안위에 대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부정적 심리만이 팽배하고 있는지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온통 ‘그것을 어떻게 믿어?’ 라는 불신과 의혹이 가득한 것은 국민에게 무엇 하나 진실됨을 주지 못하고 있는 김영삼 정부의 부도덕하고 파행적인 정국운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부도덕
현 정권의 출범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돌아보면 사회적으로 중차대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솔직하게 책임을 통감하고 반생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서울과 대구에서 대규모의 가스폭발로 많은 인명이 참사를 당해도 정부는 발뺌하기에 급급하였다. 삼풍백화점이 거짓말처럼 무너져서 정부 수립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났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 정권이 부패하여 부 공사를 부실하게 하였고, 그 결과가 현 정권에 와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리하여 전직 공무원 몇 명과 사업자 한두명을 처벌하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 하였다. 정부의 대표가 그리할진대 정부에 몸 담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사고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쉬이 짐작하게 한다.
무려 5조 원이 넘게 부정대출을 받고도 은행의 추가대출을 받지 못해 부도를 내고 망해버린 한보그룹 사건은 은행돈을 조금이라도 써보려고 했던 사람이라면 그 부정의 배후가 얼마나 강력한 배경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이 정의한 정치인의 떡값인 5천만원은커녕 그것에 십분의 일에 불과한 5백만 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으려면 재산세를 내는 사람두 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하며 거기에 드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대출 받는 조건으로 그 은행에 적금 한 가지를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만일 제때에 이자를 넣지 않는다든가 대출조건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당장 보증인에게 통지하여 재산을 가압류한다. 그런데 불과 4년 사이,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4조 원을 넘게 은행돈을 한보에게 주었다면 그 과정에서 비리가 없을리 만무하다.
한보그룹의 총회장인 정태수와 관련한 은행 대출 가운데 한가지만 보아도 그 비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얽혀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정태수로부터 10억에 가까운 뇌물을 받고 구속된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은 구속되면서 자신을 ‘깃털’ 이라고 비유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한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실체몸통’ 에 달린 깃털이기에 자신의 배후에는 더 막강한 세력이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지목받고 있는 쪽에서는 전혀 사실과 다른, 악의적인 음해라고 반박하고 있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정부의 부총리이자 재경원 장관이라는 사람은, 막대한 부정대출은 어디까지나 은행의 책임이며 한보의 책임이기에 정부는책임이 없다고 공식석상에서 태연히 밝혔다. 하긴 대통령조차 사회적으로 엄청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과거 정권의 부패라고 회피하기를 수없이 했는데 그 휘하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차에 북한의 핵심인물이 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 여당의 내로라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한시름 놨다’ 라고 했다니 국가의 존폐를 가름할 사건이 생긴다 하여도 누가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나.
집안에도 이런 일이
나라꼴이 그래서인가 우리 불교계에도사상 최대의 금융사고가 터졌다. 지난 1월 24일 서울지검은 불교방송 경영관리국 직원 두 명을 회사공금유용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는 한편 같은 부서의 경리부 차장을 검거하려 했으나 이미 해외로 도피하여 수배한 상태로 사건을 조사중이다. 이들은 수배된 경리부 차장 등과 공모하여 회사공금을 유용하였는데 그 액수가 무려 1백여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처음 일간지에 보도되기에는 15억 정도라고 했으나 그 뒤 조사결과 액수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불교방송 직원 중에도 여럿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어 그 액수는 더 늘것이라고 한다. 한보사태와는 액수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교계의 형편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방송 횡령사건에 있어 정작사건의 책임을 질 사람들이 한결 같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들이 진실한 불제자들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경영의 총책임자인 사장은 교계 한 신문과의 대담을 통해 “(취임 이후 회사 재정관리에) 진작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알고 고칠것을 명령했으나 그 뒤 사장이 일일이 개입하면 사기가 저하될 우려도 있고 하여’ 방관하였다는 취지의 변명을 털어 놓았다. 방송사의 임원 한 사람은 ‘설마’하여 일일이 검코하지 않고 결재해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사건이 터진 뒤에 책임을 지고 회사와 교계에 참회를 할 사람이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를 맡고 나서는 적반하장격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교게 언론의 지적이다. 그래서 교계 언론의 말을 빌리자면, ‘한보와 이상하리만큼 닮은 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방송은 사부대중의 뜨거운 정성으로 개국되어 초기에는 재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대한불교진흥원의 지원과 대중의 보시로 어려움을 견뎌 내며, 93년 부산과 광주에 방송국이 설립되고 이후 현재 대구 등에서도 방송국이 들어서는 과정에 있어 차츰 재정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런 성과는 사부대중의 한결 같은 염원과 정성의 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방송의 주요직은 특정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여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을 숱하게 들어야 했다. 경영의 총책임자인 사장도 제대로 신임하지 못한 채 운영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시로 외풍에 시달려야 했던 곳 역시 불교방송이었다. 이번 거액횡령사건도 이런 비전문인이 방송의 주요직에 앉아 경영을 쥐락펴락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이들이다보니 사건이 터져도 책임지기보다는 이런저런 구실로 회피하기 급급한 것이다.
최근 총파업 정국에서 어렵게 결정된 불교방송 노조위원회는 사건이 터지자 ‘책임을 지고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다. 이들의 요구에 대상자들은 하심의 자세로 임하길 바란다. 아울러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조사위를 구성하여 공정한 조사와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한보와 관련한 정부와 검찰의 발표에 대해 국민 전체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처럼 그 들기리의 조사와 처벌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검사제의 도입으로 한점의 의혹도 없이 공정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불교방송 사건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쨌든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근원은 부정한 권력이나 인물에 있으며 이들에 대한 준엄한 심판 없이는 사회의 건강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