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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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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혜만 1997년 03월 181호
임자년 추위가 정축년 새해에도 계속 되려는지, 차가운 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안거를 시작하면서 용맹정진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일 주일 동안 등을 바닥에 대지 않는 장좌불외長座不歐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막연한 기대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축년 첫날 새벽 두시 삼십분 기상을 알려는 죽비 삼 타에 스님들의 소리 없는 움직임이 다른 날보다 알 수 없는 민첩함과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오늘이 바로 용맹정진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일까? 스님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하기만 하다.
다른 날같이 혼침에서 벗어나려는 눈빛과는 사뭇 다른 단단한 각오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견성 할 수 있는 기세였다. 세면을 마친 스님들은 선방으로 향했다. 나도 조금은 두려운 기분과 용맹심을 함께 갖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해인사에서 세번째를 맞이하는 용맹정진이건만 긴장감은 멈출 수가 없다.
간단하게 아침 예불을 마치고 자리를 잡고 앉자 무거운 공기가 선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다. 선원, 강원생을 포함하여 칠십여 명이다. 용맹정진에 대한 방장 스님의 말씀과 열중 스님의 주의사항 등등. 입선죽비를 친 뒤 오 분이 지나 들어오면 꼼짝없이 서서 정진을 해야 하며 일 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참선하는 생활이라 대중이 함께 앉아 있는 대중 방에 십 분 늦게 들어오면 선방 스님이나 강원 스님 할 것 없이 누구든지 해인사를 떠나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주의사항이 끝나자 방장스님은 몸이 불편하지만 대중 스님들과 똑같이 정진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탁, 탁, 탁 첫 입선을 알려는 열중 스님의 죽비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나의 자리는 가운데에 있고 방장 스님과 어간 스님이 바로 앞에 계시니 더욱 진지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앞을 쳐다보니 시간표가 눈에 들어왔다.

용맹정진 시간표음력
12월 1일
03 : 00 예불 및 입선
05 : 30 행선(서서 하는 선)
06 : 00 조공(아침 공양)
07 : 00 좌선
10 : 30 행선
11 : 00 오공(사시 공양)
12 : 00 좌선
16 : 00 청소 및 행선
17 : 00 약석(저녁 공양)
18 : 00 예불 및 좌선
23 : 30 죽 공양
24 : 00 좌선
음 12월 8일 방선

안경을 벗어 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이 올수록 망상이 생길수록 “이 뭣고” 화두를 챙겨 본다. 하지만 밀려드는 망상에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꺾이고 있는 나 자신이 어쩐지 수행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허리를 한번 더 펴 본다. 망상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사시공양 시간이 되었다. 공양을 마치고 나니 포만감과 함께 대중 소임을 맡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벌써 피곤하고 다리와 허리가 아왔다. 참자 참아 보 자. 이를 악물고 다시 화두에 몰두해 본다. 자리 지킴과 앉는 자세에 신경을 쓰다보니 하루가 지나간 듯하다.
이튿날, 첫날 긴장해서인지 새벽부터 자꾸만 졸립다. 정신을 차려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어김없이 찾아 주는 죽비경책이 혼침婚沈에서 깨어나게 하지만 역시 잠에는 장사가 없나보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나의 눈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죽비경책 소리가 윗가에 메아리 치고 있다. 신체의 리듬이 깨져서인지 피곤만 몰려오는 듯하다. 정신을 차리고 화두를 챙기다보면 망상이 먼저 저 잘났다고 찾아오는 괴롭히고 괴로움과 싸우다보면 어느사이엔가 졸음이 먼저 와서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영 말이 아니었다.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럭저럭 사시공양을 마치고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화두를 챙겨 본다. 역시 또다시 찾아드는 망상에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열심히 화두를 챙기고 있는 듯하였다. 나도 해 보자는 마음을 먹고서 화두를 챙겨 본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 몸은 어디서 왔는가?”
열심히 정진을 계속해 본다.
망상이 찾아들면 관음정근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며 열심히 정진을 계속한다. 시간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몸은 지쳐 가고 있었다. 올해는 눈이 많이도 왔건만 왜 용맹정진 기간에는 눈 한번 오지 않는지….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이면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눈이 덥힌 산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차분해지면서 어린시절 어머니 품속 같은 따스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왜 눈이 와 주지 않는가?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나도 깨끗해 청아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도반들에게 너무나 순수한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고 하였더니, 언제는 안 그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었다. 서로가 보는 안목이 틀려서인지 아니면 나만이 멍청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드디어 마지막 날, 마지막이라는 해방감에 앞서 역시 힘이 들었다. 일 주일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허무함이 순간 가슴을 억누르고 있는 듯하였다. 정신력과 싸움만 하고 있었을뿐 옛 고승들 말씀이 일 주일이면 누구든지 깨우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에 무엇 하나 이루지 못 했기에 서운함과 함께 허탈감이 앞서고 있었다. 스님들 모습이 조금씩 수척해 보였지만 눈빛 만큼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초롱거리며 빛나는 눈동자를…
용맹정진의 핵심인 이십사시부터 세시까지 또 한번만 감아도 어김없는 죽비공세, 정밀이지 한참을 앉아 있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절에서 울려오는 새벽 도량석 목탁소리가 들려 온다. 탁, 탁, 탁죽비 삼 타에 일 주일 동안의 용맹정진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제 큰절로 내려가고 있는 스님들의 눈빛은 고요함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나도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오전에 남산산행과 목욕을 마치면 따스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지나온 일 주일을 점검해 보리라.
앞날의 수행 목표를, 한 잔의 차를 우려 놓고서 나의 마음과 함께 아주 조용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