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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문화와 그 삶의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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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여연 1991년 08월 114호
이번 소련 방문은 서울에서 국제포교를 위해 의욕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불교적 외교를 펴고 있는 ‘국제연등불교회’의 주관으로 타시켄트(우즈백공화국)의 수도:스탈린의 소수민족 분리정책에 의해 사할린에서 강재 이주한 우리 재소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전체 소련 교민 50만 가운데 20만이 이곳에 살고 있음)에서 한국불교창립대회(1917년 레닌 혁명 후 거의 사라져버린 각국의 종교들이 실로 74년만에 패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되살아나고 었다)를 개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한국불교창립대회는 그곳 우즈백 공화국정부익 정책상의 제한조치(소련의 연방공화국은각 공화국 마다 실정법과 종교, 문화가 상이하여 우즈백 공화국주갱부는 아직 대단위 군중집회,종교 집회를 허락하지 않았음)로 조금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많은 일행이 출국을 하지 못하고 연등회 회장인 원명스님과 모스크바에서 만나기로 하고 필자는 동경을 거쳐 소련에 가게 됐다.
동경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는 막 시베리아의 눈 덮인 구릉에 날개를 판두 세워 질주하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펄쳐 지는 시베리아의 산과 구릉, 벌판들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사이 협곡 속으로 흐르는 기다란 강들은 뱀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율동하고 있었다.
그 어디엔가 작은 강들이 만나는 곳, 바이칼 호수의 잉크색 향기가 묻어날 것 같은 벌판, 아니 가난과 존재의 방황 속에서 고통했던 저 위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학대 받은 영혼들이 눈덩이를 째고 일어나 울부짖을 것 같은 시작도 끝도 없는 들판은 아득한 침묵의 심연으로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의 들판은 곧 깊은 잠에서 깨어나 포효하며 인간들의 끝없는 이기심, 편리함의 야욕(野感)에 상처 받게 될 것이다.
저 시베리아 들판에 천연가스가 무진장으로 묻혀 있는데 세계인구가 100년을 쓰고도 남을 매장량이란다.
그래서 서방의 재벌은 쨉싸게 개발의 이권에 참여하고 있고 한국의 현대그룹도 이 대열에 뒤질세라 열심인 모양이다.
잠시 잠이 들어 깨어보면 그 들판은 그 들판으로 이어지고 무인도의 고도(孤島)처럼 촌락하나 보이지 않은 징그럽도록 지루한 벌판이었다.비행기 속에는 일어로 된 영국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좁은 한반도만 나오면 세계 어느 곳에 어느 작은 지방도시에서도 온통 일본산 제품과 일본말 등이 판을 치는 곳에서 나는 갈라진 땅, 조선민족의 비애를 맛보게 된다. 프랑스 비행기, 이태리 비행기, 싱가폴 비행기에서도 안내방송의 끝머리엔 항용 일본말 안내가 나오며 우리의 말은 어느 곳 어느 땅에서도 들어 보기가 힘든 우울함, 몇 마디의 짧은 영어단어 속에서 기도 펴지 못한 반도인 우리 땅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우리는 고구려의 옛 영화를 회복하여 해방의 길트엄 속에서 독일 비행기, 폴란드 비행기, 인도 비행기 속에서 기를 펴고 살 날이 올 것인가 그 씁쓸한 섬회로 다시 잠을 청하고 깨어나면 그놈의 듣기 싫은 일본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비행기는 10시간만에, 검은 땅의 산구릉에 촌락들이 보이고 초록색 광활한 들판이 펼쳐지면서 모스크바 가까이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지루한 비행기는 모스크바 국제 공항인 쉐레메쩨보제2공항에 날개를 움츠렸다.
다소 밝지 못한 국제공항의 분위기, 한산하고 느슨한 동작들이 침침 한 전구의 희미한 불빛들 아래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득 움츠렸던 기분이 느슨한 동작속에 섞여지면서 안정을 되찾고 하나 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의 숲에 서니 묘한 느긋함이 왔다. 이데올로기의 장막 속에 감춰진 인간들의 냄새와 언어의 향기들이 아무런 매듭 없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붉은 머리 붉은 얼굴을 한 택시 기사가 손님을 부르며 무언가 절실히 지껄였지만 별로 적극적이지 못했다.
비오는 모스크바 거리, 하얀 자작나무 숲이 물기에 젖어 창백한 소녀의 이마 같은 아름다움 던져주고 있었다. 미리 연락이 되어 있는 소련한인협회 부회장겸 레닌기치(고려일보) 발행인인 허진 선생님이 보내온 차로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모스크바의 거리엔 회색빛 고충 APT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건물사이엔 풀밭들이 만들어져 있고 민들레 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는 지금은 초여름, 약간 더위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벽보와 간판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건물들, 우중충한 빌딩 안엔 사람들 이 한산하여 이상한 적막감을 느끼게 했다.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북새통으로 숨이 막히고 들썩대는 곳에서 겨우 10시간만에 한산한 도회의 빌딩 속에 서니 바삐 움직이는 시간의 추가 정지하는 어떤 야릇한 운명의 멈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의아하게 안내원한테 물었더니 모스크바의 빌딩은 다 그런다고 그러면서 오히려 나에게 사람들이 들끓는 곳이 빌딩이냐고 물었다.
고려일보의 사무실에는 신문, 잉크 냄새와 타자 치는 소리로 분주했다. 무엇보다 이 먼 소련 땅 모스크바 시에 와서 한글로 된 조선신문을 보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사무실 직원들의 대화들도 우리말이어서 답답했던 마음이 기지개를 펴고 혈관속의 피들이 싱싱한 자유의 리듬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무엇이 그렇게도 당당하게 기를 펴게 할까, 일상의 삶에서 쓰는 언어 와 문자가 우리들 생명, 존재 자체임 올 절감해 보았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우리 교포들이 약 5만 정도 사는데 모두가 생실하고 부지런하며 또한 학구열이 대단하여 소련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도 누리고 우수민족의 대접을 받는다는 안내원 의 얘기에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든 자기 민족이 잘 살고 대접 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이다.
이곳 교포들은 사할린에서 타시켄트로 강제 이주 되어 숱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굳굳이 살아 남아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음을 보면서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레닌기치, 지금은 고려일보로 제명 (題名)을 바꾼 이 우리 글 신문은 약 30년 가까이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해주는 역할과 민족사상올 고취해주려는 데 노력하며 계속해서 발행된다는 것이었다. 작년까지 타시켄트 지방에서 만들다가 이곳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허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국내외 정세와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러시아의 예쁜 아가씨가 치를 달여왔다. 갈증 속에서 마시는 향기 짙은 홍차가 아주 맛이 좋았다.
도심의 한가운데로 도도하게 흐르는 모스크바 강을 지나서 혁명의 거리, 프롤레타리아의 영웅 레닌의 동상 앞에 섰다. 러시아의 가난한 민중을 위해 짜르의 전제와 서방제국의 수탈에 항거하여 볼세비키 혁명을 완수한 혁명가 레닌 앞에서 그의 이런 말을 되새겨 보았다.
“프롤레타리아의 당의 이념적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주의 자의 불변의, 부동의, 절대의 임무이다. 이 임무에 실패한 사람은 아무리 그의 ‘사회주의적’ 신념이 투철하더라도 더 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레닌의 이 창백한 교시는 페레스트 로이카 시대를 연 사람들과 새로운 러시아를 위해 새로운 정당을 창설하려는 사람들은 분명 반동 세력들인데 그의 침묵은 모스크의 강물 속으로 던져져 내리고 청동 빛 무게 아래로 내리깐 레닌의 눈빛은 비에 젖어 있기만 했다.
변화하는 러시아 카자흐가 고향 이라는 택시 운전수는 래닌의 얼굴이 있는 루블보다 워싱턴 얼굴이 있는 달러의 매력을 너무 쉽게 알아버렸고, 호텔의 붉은 아가씨들은 외국손님 접촉하기에 그들의 발걸음을 허둥대고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지하철에 꽃을 파는 아가씨도, 춤추는 댄서도 식당의 종업원도 달러를 훤하면서도 그들은 고르비를 죽일 놈이라고 자유롭게 욕설을 퍼부어 했다.
변화하는 러시아률 원하면서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들은 서슴없이 페레 스트로이카 이전엔 감자도 고기도 언제나 손쉽게 살 수 있었으며 보드카도 마시며 춤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몇 시간씩 줄을 서야 된다며 오히려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고 투덜 했다.
새로운 세계를 원하면서 불편한 생활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만의 욕심일까. 이 세계의 민중은 다 그런 것인가 레닌기치의 허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유(이 자유의 개념은 자본주의 척 의미가 아님)를 위해서 불편한 것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줄을 서서 기다리며 참는 조그만 힘이 러시아 역사를 변혁하는 힘이 되는 것인데도 무지한 민중은 우선 양파 몇 덩이 빵 몇 조각 사는 불편함 때문에 패레스트로이카 이전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파트 앞의 가게 어느 곳에도 기다랗게 키 큰 러시아인들이 하품을 하며 줄을 서고 있었다. 러시아는 정치개혁을 시도하면서 경제개혁의 어려움에 시련을 겪고, 중국은 경제개혁을 시도하면서 정치개혁의 실패에 처해 있다는 뉴욕신문의 한 칼럼이 자작나무 숲 아래 핀 민들레 꽃잎들을 바람에 날렸다.
돈투라스 호델에 숙소를 정하고 배가 고파 식당에 갔다. 식당은 거리낌 없는 인간들의 따뜻한 냄새로 가득했고 식당의 가운데 스테이지에는 검은 자켓에 붐은 장미를 꽂은 가수가 담담한 밴드소리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늙은 사람 젊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그들의 춤을 추고 아무런 꾸밈없는 밝은 행복들이 넘쳐났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호텔처럼 흥청거림이 없는 유흥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은 러시아의 하루. 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땅에 희망이 보인다. 때묻지 않는 인간들의 향기에. 소비와 향락과, 범죄와 폭력, 모든 가치가 물신주의에 병들어 버린 세계의 도시, 그 도시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 남은 러시아. 아직도 신선함이 남아 있을 것 같다. 모스크바의 거리에 백야가 왔다. 자정이 넘어도 희미한 햇빛이 남아 있는 호텔의 발코니에 그 누군가의. 연인을 위해서 켜는 발라라키아(러시아 민속악기)의 음색이 내 가난한 영혼의 들판에 빗소리처럼 젖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