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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을 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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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오성 2001년 06월 232호
제주의 봄은 상대하기 어렵지 않은 가벼운 바람을 불어낸다. 얼어 있던 겨울의 소유물들을 하늘 높이 던져 올리듯 가볍게 한걸음에 날아올라 바람은 오름의 능선을 타고 억새들을 뉘이며 곡선의 미를 창조한다. 바람으로 하여 오름은 일어나고 다시 앉는다. 사람들이 오름의 바람을 예찬할 때 바람은 다시 내려와 숲의 생명을 흔든다. 바람이 송림에 가 앉으면 솔바람이 되고 대숲에 가 앉으면 대바람이 된다.
인연하는 모든 것에는 바람이 있다. 바람은 봄이 되어 아름드리 피어 있는 찔레꽃이 되고, 도시의 아침을 만나 사람들의 매캐한 짜증이 된다. 바람이 불되 바람은 없고 형상만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간도 공간도 머무름 없이 오고가는 바람에 시시비비가 걸린다.
수행과 포교도 마찬가지다. 선방에 있는 스님들은 수행만을, 포교현장에 있는 스님들은 포교만을 고집한다. 바람은 선방에도 불고 포교현장 곳곳마다에도 어김없이 불어댈 터인데 머무르는 곳마다 고집이 움튼다.

지난해 선방에 다니는 도반이 와서 해수욕을 며칠 하고 갔다.
간다기에 객비를 얼마 주었다.
도반 낯 색이 밝지 못하다.
내 머리에는 오늘 아침 생일 불공을 하고 간 보살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요즘 마늘 값이 안 좋아 걱정이라는데.

며칠이 지나자 다른 도반이 왔다.
간다기에 지난 번 일도 있고 해서 무리해서 챙겼다.
도반 눈빛이 과하다는 듯 하다.
조금 아꼈으면 어린이 법회 날 과자를 살 수 있었을 텐데.
어린이 법회 날, 서로 나누며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인다.

함께 했던 강원시절 눈 푸른 납자가 되어 어디에도 매이지 않겠다던 옛 맹세는 세월이라는 시간에 변질되고, 눈칫밥이나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 씁쓸한 웃음이나마 흘려보는 추억이 되었다. 저마다의 인연 따라 흐르다 언제부턴가 멈추어 서서 선 자리를 고집한다. 자신이 의지했던 진리는 이제 마음 창고에 가두어 두고 문을 열지 않는다. 창고 열쇠를 더 크고 단단하게 할 뿐이다.
창문 넘어로 밭이 보이고 다시 그 넘어로 바다가 보인다. 바람이 땅의 기운을 북돋우며 지장보살이 되어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넘어 바다에는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며 ‘사바하 사바하’ 하며 독경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