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은 태자와 공과 후와 재상들과 문무백관들과 더불어 목욕재계 하옵고 허공계에 가득한 시방十方의 한량없는 부처님과 보살과 제석천왕과 삼십삼천과 모든 호법영관께 비옵나이다.
고려대장경을 판각하면서 분명히 불력에 의지하고 있음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진정 불력만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이규보의 ‘군신기고문’ 은 부인사의 대장경이 불타 사라짐을 원통해 하면서 현종 2년에 거란병이 침입하매 임금과 신하가 대장경을 판에 새기기로 서원하니 거란병이 물러갔다고 하오니 그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대장경이요 판에 새기는 것도 다를 바 없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발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니 그 때의 거란병이 물러간 것처럼 몽고병들도 물러갈 수 있게끔 모든 부처님과 여러 하늘이 보살피기에 달렸다고 발원한다.
불력으로?
대장경을 갖고 있는우수한 문화민족이기에?
판각칼이 아니라 차라리 각수들이 창과 칼을 들고 싸웠더라면?
그런 고려대장경의 불력과 같은 신화 아닌 신화가 아직도 전해지는 것인지? 나는 그 의문을 풀수 없었다. 그런 내게 던져진 소설책이 한 권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대장경」이었다. 나는 그 소설 「대장경」에서 처음으로 수기스님과 만났다. 처음에는 수기스님이 소설가 조정래선생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물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뒤 나는 수기스님이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고려대장경 판각의 총책임자임을 알았다. 소설 「대장경」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작가의 말을 읽고 난 뒤였다. 나와 같은 생각과 의문으로 이 소설이 씌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이 부인사 대장경이 불타고 없어지는 불타는 성전부터 시작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 작가의 의도가 엿보여진다. 역사적 사건의 시간순으로도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할부분이지만, 그의 말을 빌리면 나는 불력으로 외적을 퇴치한다는 팔만대장경에 얽힌 기존의 신화를 전면 거부하고 부정하는 데서부터 이 소설을 시작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인식 아래 바라본 팔만대장경은 반역사적이고 반민중적인 것이었다. 몽고 외침의 처참하고 막다른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런 엄청난 규모의 불경판각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어떤 연유를 거쳐서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었다. 수기스님을 어떤 교훈처럼 나는 소설 「대장경」 책에서 꺼내 간직했다.
그리고그 해 4월 초, 해인사에 갔다. 버스차창 밖으로 가야산 홍류동 계곡이 따라오고 있었다. 홍류동 계곡물은 맑고 푸르렀다. 4월의 가야산 푸른 산빛이 젖어 있었다. 버스 차창 밖의 계곡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운 최치원의 농잔정과 둔세비遯世陣가 스쳐 지나갔다.
첩첩이 쌓인 바위계곡을 굽이치며
온 산을 뒤흔드는 물소리 때문에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을 분간하기 어렵다
나는 언제나 어지러운 시비가 두려워
흐르는 물길로 산을 완전히 에워싸 놓고 있노라
홍류동 계곡의 그리 높지 않은 석벽에는 고운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시를 등선시登仙詩라고 한다. 갓과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우화등선羽化登仙한 전설 때문이다. 흐르는 물길로 산을 완전히 에워싸놓고 싶던 고운 최치원. 당대 지식인이던 그의 고뇌가 오늘도 변함없이 흐르는 홍류동의 물소리로 들렸다. 고운 최치원이 기야산으로 들게 된 것은 신라 그 다음 시대를 고뇌하며 기다렸기 때문어라는 기록이 있다. 그는 고려 건국의 태조 왕건에게 글을 보냈다. 그 글귀 가운데에 ‘계림황엽鷄林黃葉 곡령청송鵠嶺靑松 신라 경주는 이미 가을 나뭇잎처럼 기울었고 개성은 푸른 솔처럼 푸르다’ 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 때문에 고운 최치원은 신라왕의 노여움을 사서 이 곳 기야산으로 들게 되었다. 최치원이 날개를 달고 등선하며 그리던 더 나은 이상국가와 시대는 무엇이었을까? 곡령청송. 푸른 솔 같은 개성과 고려. 그것이었을까?
홍류동 계곡물에 내 귀를 적시고 싶어진다. 아.
첩첩이 쌓인 바위계곡을 굽이치며 온 산을 흔드는 물소리를 빠져나오니 지척에서도 사람사는 말소리가 들린다. 해인사를 다녀온 뒤로 나는 다시 한 가지 의문에 빠져 있었다. 고려대장경의 불력이 어떻게 몽고군을 물리칠 수 있는가? 푸른 솔 같은 고려는 이미 없었다. 수기스님은 그 책 속에서 최우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고려대장경을 판각한다는 것이 어떤 죄를 짓는 것인지 최우에게 말하고 있었다.
“대감은 네 가지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불사를 빙자하여 패전의 책임을 은폐함과 동시에 권력을 존속시키려 함으로써 상감과 사직에 죄를 범했고, 둘째 상감의 흉중에 자리한 괴로움을 이용해 판각 불사의 필요성을 거짓말하였고, 셋째 전란의 사경 속에서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노동과 과세를 강요하게 되어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한 죄를 범하게 되었고, 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도함으로써 신성한 불법을 더럽히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경원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불력으로 적을 퇴치할 수 있다면 왜 부인사의 대장경이 적의 손에 의해 불탔는가? 불력은 적을 무찌르는 무기가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는 힘이다. 그런데 어찌 대장경 판각이 곧 불력이라 하는가? 판각된 대장경이 곧 적을 무찌르는 힘이라 하는가?
수기스님의 준열한 비판이 최우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이러했던 수기스님이 어떻게 고려대장경 판각의 총책임자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을까? 조정래는 말한다. 기왕 이루어질 불사라면 대장경만이라도 손색없이 제작되어야 그나마 백생들의 희생이 값진 시주로 바뀔 것이다.
수기스님의 생각을 바꾸게 한 백생들의 값진 희생의 보시. 그래서 수기스님은 그 어려운 고려대장경 판각의 일대 역사에 민중의 불력을 진정으로 대결집시켰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셜 「대장경」 맨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역사소설에서는 사실史實을 줄기로 보고 작가의 개성적인 문학적인 상상력은 가지와 잎새로 본다. 소설 대장경은 줄기, 가지, 잎새가 서로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자라난 나무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조남현 평론중에서
솔아, 푸르른솔아.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