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문명비판과 우리의 각성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진열 1991년 08월 114호
인류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삶이란 치열한 투쟁을 상기할 정도의 과정을 밟아왔다. 그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바로 우리는 문명(文明)이라는 자연정복의 열매를 이룩하였다. 그런 만큼 인간은 보다 편리하게 보다 풍요하게, 보다 만족하게 되었다고 자만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들이 바람직한 인간행복을 보장한다고 결론할 수 있을까 하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1. 문명의 3가지 형태와 욕구
동물들로부터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되는 계기를 이룬 것은 반듯이 서서 다니게(直立步行)된 데에서 시작한다. 앞 두 발 즉 손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두뇌용적도 커지면서 점점 다른 동물군과는 다르게 생활양식이 변모하여 갔다. 도구이용과 두뇌회전에 의하여 먹거리 구입과 적들(맹수들)에 대한 기술도 향상되었다.
그 기술들이 더 발전한 것은 불(火)을 생활에 이롭게 이용한 데서이다. 불을 이용함으로써 먼저 익혀먹으니(火食) 소화도 잘 되고 병균 감염도 적어 급격한 건강유지와 신체발달을 가져올 수 있었고, 또 주거생활에서도 불을 중심으로 혈거(七居)하니 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과거 여러 맹수들로부터 수동적인 빵1자세에서 이제는 적극적인 공격자세로. 전환하여 효율적인 안정과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인류는 불을 이용하여 식생활의 혁명, 주거양식의 혁신 그리고 방어공격수단의 진보를 가져왔다.그러는 사이 몸짓 ·소리 ·표시 등에 의한 언어형식이 진전되고 의사소통과 보존에 힘쓴 결과 의식(意讓)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의식이 있음으로써 인간은 다를 동물들과는 다르게 판이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이제는 인간의 의식의 진보가 언어 ·문자의 발달은 물론, 불·도구 등을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면이 실생활면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신세계가 현실세계 즉 안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지배 ·관리하는 체계를 이룩하고 말았다. 도구 ·불의 이용은 언어 ·표시 ·의식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의식이 인간의 삶을 지 배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여기에서 인류는 신화(神話)를 만들어갔다.
신화는 조상 인류의 인생관이자 세계관이며 또한 문화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인간의 원천적인 본래면목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신화라는 의식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도구의 발전과 불의 이용을 거듭한 결과, 현실적인간조건(먹고·입고·주거하는 것)과 정신적 인간이상 (신화·종교·예술)이 상호보완적으로 또는 상호대립적으로 진전되었다. 전자의 대표자는 과학이요, 후자의 대표격은 종교이다. 그런데 여기서 논하는 요점은 인간 이상인 종교면을 다루는 것보다도, 인간조건을 물질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과학면을 살피는 것이다.
먹고, 입고, 사는 인간 조건을 보다 편리하게, 더 풍요롭게, 더욱 만족스럽게 변혁시켜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신화보다는 문명(文明) 또는 이기(利器)를 만들었다. 그 편리함·풍요로움·만족함 동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 속에 살면서도 자연의 구속을 벗어나 독자적인 생활과 영역을 구축하였다.(中略)
그 과정은 자연지배 속의 인간(Man under the Name)→자연과 동화하는 인간(MaI1 with the Nature)→자연을 지배하는 인간(Man over the Nature) 이라는 세 형태를 초래하였다. 소위 원시사회나 고대 사회 초-기에는 자연의 지배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 있었으나 그것은 편리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만족함을 추구함에는 절대 부족이었다. 신석기학명(1만 년 전)을 거쳐 고대국가{5천 년 전} 이후가 되면 농경생활을 하면서 안간은 자연과 맞추어 동화(同化)하는 공존의 가치관을 이룩하였다. 이 자연동화의 기간은 적어도 근대 산업혁명(18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자연의 품 속에 있거나 같이 어울리는 생활양식은 주로 동양사회의 긴 역사이며 철학이었다. 서양보다 1~2백 년 늦게 산업사회로 접어든 동양사회 및 우리나라는 그 늦은 만큼 문화적 충격 때문에 엄청난 고난과 재난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사회는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상을 으뜸의 가치로 여겼다. 인간의 오랜 숙원이었던 더 편리함, 보다 풍요로움, 더욱 만족함이라는 꿈을 만끽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거보다는 분명히 더 편리하고 풍요하며 만족스럽게 의 ·식 ·주 생활이 변모 하였다. 그토록 지겨웠던 인간의 노동(일)거리, 아니 먹고 사는 데 하루 종일 소비해버린 인류의 과거사에 비하여, 현대는 물에 손을 적시지 않고도 밥을 지을 정도로 한마디로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편리함의 추구, 풍요함의 만끽, 만족함의 성취는 a세기에 비로소 달성 시켰다. 이제 하루종일 먹거리를 위해 쏘다닐 필요도 없이 육체적으로 편안한 세상이 되었다.

2. 문명의 종말과 우리의 각성
마침내 인간의 욕망, 즉 더 편리함, 보다 풍요로 움, 더욱 만족함은 그 관건이 소유(所有)인지라, 우리는 꾸준히 대량생산을 통하여 그 욕망을 충족시켜 왔다. 그 욕망의 충족 때문에 문명이라는 것도 이룩하였지만 그것도 전적으로 자연을 정복하여 지배하는 과정에서 성취된 것이었으므로, 인간의 숙원이었던 희망이 산업사회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현대에서 거의 충족되어 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편리하고 보다 풍요롭고 더욱 만족스러우면 인간은 행복하리라는 욕망추구는 자연을 정복하는 대량생산을 통하여 달성코자 하여 분명히 그렇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꿈이 이루어져 인간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결론하기에는 무리이다.
물론 정신적인 황폐는 말할 것도 없고, 의식주 생활면에서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문명 비판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개선을 주도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가정하여 인류의 종말은 @핵전쟁 @환경파괴 @천재(天淡) 등으로 분류되어 설명되고 있다. 천재란 지진 ·폭풍우(홍수) ·유성충돌·기근기아 등이고, 전쟁은 핵, 세균전, 화학전 등이며, 환경파괴는 수질, 공기, 식품오염, 산림파괴 등에 의한 것이다. 핵전쟁이나 환경파괴는 순수하게 인재(人災)이다. 여 기서 문제는 그 세 가지 재앙들 중에서 환경파괴에 의한 종말이 가장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환경파괴는 완전히 인간의 욕망추구 즉, 보다 편리함, 보다 풍요로움, 더욱 만족함을 위하여 대량생산을 하여온 결과 의 부산물이다. 환언하면 인간욕망의 지나친 추구가 환경파괴로 나타나고 그것의 극대화는 종말을 초래하고 만다는 도식이 성립되고 있다. 확실히 작금 환경 은 죽어가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환경변이로 말미암아 이상기후 현상이나 지질현상등 변재가 일어나고 있어서, 우리는 이른바 환경파괴에 의한 대량생산의 추구와 그 밑바탕을 흐르는 욕망 추구성을 재고하지 않으면 아니 될 시점에 서 있다.
불교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은 탐욕심을 근거로 한다. 탐욕이란 그 현상이 소유욕으로 나타나고, 그것의 과정은 자연정복을 통하며, 그 결과는 소비로 인한 만족에 있다. 즉 소유욕이란 소비를 함으로써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자연정복이나 남을 지배하고 과시하는 것들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 이거니와 그 바탕은 탐욕심에 근거한다. 탐욕심이 일어나므로 소유가 있고 여기에서 환경파괴가 있다.
비록 다른 동물들로부터 인간을 인간이게 한 것이 그 욕구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그 욕구가 파괴적인 방향으로 줄달음친 환경파괴로 지향하고 있는 지금, 그 욕구는 탐욕심이며 맹목적인 의지에 불과하다. 파괴로 지향 된 것이 인류문명이라면 그러한 것은 마땅히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 점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을 이념으로 한 파괴적인 과학문명은 결과적으로 보아 자연과 동화하며 사는 인간상을 이념으로 한 농경사회의 가치관에 비하여 결코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깨끗한 환경 속에서 동화하며 사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이 바람직스럽다. 소유한 물건은 적더라도, 소비하는 것은 적더라도, 덜 편리하고 덜 풍요롭고 덜 만족스럽더라도, 지금의 우리는 자연과 인 간이 공존하는 삶을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절실한 바람은 우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욕구 중에서 탐욕심에 의한 소유·소비충족을 핵심으로 하는 문명관을 재고하여야 한다는 각성에서 기초한다. 그럴려면 우리는 우리의 욕망풀이를 긍정적으후 지향하여야 한다. 그 풀이법은 욕망추구의 극 대화가 아니라 최소화에 의하여 자족(自足)한다는 요지이다. 고로 방하착(放下着)이란 그런 허망한 탐욕심을 최소화로 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