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종교를 찾은 것은 기독교이다.
어린 시절 성탄절을 맞는 설레임은 잊혀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아름다운 불빛과 한 봉지씩 나누어 주는 과자의 맛, 그리고 교회의 종소리와 기쁘게 불렀던 찬송가는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6?25 직후 가난했던 시절에 마을의 교회에서는 점심 때가 되면 우리들에게 작은 주전자에 따뜻한 우유죽을 가득 퍼주었다. 지금도 그 고마움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집 가까이 성당이 있어서 영세를 받기 위해 6개월 동안 수녀님으로부터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지막 교리 시험을 보는 날이 할아버지 제삿날이어서 시험을 보지 못하였고 결국 성당 가는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친구의 안내로 잠시 불교학생회를 다니던 중 원불교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생활 속에서 불법을 실현하는 종교로서의 원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깊은 매력을 안겨 주었다.
원망과 불평이 많았던 나의 삶에 큰 변화를 안겨 주었으며, 이를 지켜본 많은 친구들이 원불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아버님을 따라 천도교 포교당을 찾아가서 의식에 참석하고 경전을 접해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교 경험을 통해 다른 종교들에 대한 이질감을 크게 갖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원불교에 출가하여 전문 공부를 하면서 “모든 종교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하나이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각 종교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한 형제이며 이웃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일깨워준 이웃종교의 지도자
나는 공부하면서 원불교 밖의 다른 신앙의 지도자와 그들의 저서를 통하여 신앙과 수행의 체험을 많이 넓힐 수 있었다. 기독교의 훌륭한 목회자인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 머린 케도러스 목사, 한국의 조용기 목사님 등의 저서는 대단히 밝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갖추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천주교의 앤소니 드멜로 신부님의 여러 저서를 숙독하면서 선禪체험과 깨달음의 세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서양인들에게 전하는 신부님의 구체적이고 명료한 선과 영성靈性의 가르침은 평이하고 재미가 있었다.
특히 불교에서는 많은 법 높은 스님들의 가르침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받았으며, 이미 열반하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고익진 교수님으로부터 원시불교와 초기 대승불교의 교설을 가까이에서 지도 받을 수 있었음은 나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토대는 원불교 교리를 가장 뿌리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모든 만남이 지금 나의 신앙과 수행에 튼튼한 밑거름이 되었고 나아가 나의 체험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다 쉽고 단순하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하였다.
그리하여 종교가 서로 다르더라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마음을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게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되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
지금도 함께 어울려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스님과 목사님,수녀님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한 형제요,도반이다. 우리의 만남에서 종교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은 조화를 이룬다.
자연 속에 있는 장미와 연꽃은 서로 다르면서 각각 독특한 개성과 향기가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장미라 할지라도 서로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를 발견한다면 자연의 놀라운 신비와 조화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만날 때 여기서 우리는 화합을 배우게 되고 서로 각기 특별한 존재 양식으로 자기 삶을 열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삶이 풍성해지고 그 속에서 다양함을 체득하며 성장할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이 이 세상을 선택하여 찾아올 때 각각 자신에게 필요한 경험과 배움을 위해서 혹은 기독교로, 혹은 천주교로 혹은 불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각자 자신이 믿는 종교를 통하여 자신에게 매우 유익한 체험을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영혼이 원불교를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듯이 그들도 그들의 종교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비판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웃의 종교와 그 교리를 인정하지 않음은 곧 자신의 종교를 깊이 신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기 종교를 성실하게 믿으며 수행이 깊은 사람일수록 한결같이 상대를 존중하며 또 서로 다르면서 하나임을 인정하고 있다. 신성神性과 불성佛性과 본성本性 등은 모두가 하나의 의미로써 우리의 마음 깊이 내재해 있다. 이를 믿고 깨달아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모든 종교인의 공통된 삶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 함께 손잡고 서로가 하나의 진리 속에 사는 한 형제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