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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게송 산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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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회해 - 반산 1999년 10월 212호
지난 호에서는 청량소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그 유통과 불교에 끼친 영향에 관해 살펴보고, 이어서 화엄경의 주옥 같은 게송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 떠나볼 예정이다.

청량소의 특이한 인연
청량소가 처음 전래된 것은799년의 일이지만 특이한 인연 때문에 해인사 고려대장경에는 입장入藏되지 못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 때부터 연구되어 오던 청량소는 수많은 외침에 의해 판본이 소실되거나 산질되어 조선 중기까지는 완성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숙종 7년(1681)에 큰 배가 임자도荏子島에 와 닿았는데 사람은 없고 책만 가득하였다. 이 속에서 명나라의 평림엽平林葉 거사가 교간校刊한「화엄경소초」가 벌견되어, 이를 발견한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은 숙종 18년(1692)에 대화엄법회大華嚴法會를 열고 소초의 판각과 유통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다. 임진왜란 뒤의 고통속에서 어렵고 힘든 불사를 완성하신 백암 화상의 공덕 또한 평림엽 거사의 공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해동에서 고려 이후 일실되었던 청량소초를 다시 유통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청량소는 해인사 고려대장경에는 실리지 못하였고, 따라서 한글대장경에서도 소개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무튼 이 판각불사 뒤로, 조선 후기의 불교는 화엄경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여 활발한 연구를 이루었고, 그 결과 환성 지인喚醒 志安(1664-1729)을 필두로 회암 정혜晦庵 定慧(1685-1741), 호암 체정虎嚴 體淨(1687-1748), 설파 상언雪坡 尙彦(1707-1791), 묵암 최눌黑庵 最訥(1717-1790), 연담 유일運澤 有-(1720-1799) 그리고 인악 의첨仁岳 義沾(1746-1796) 과 같은 많은 화엄 종장이 줄지어 배출된 것이다.

화엄경의 주옥 같은 게송들
제24 도솔게찬품에 “차라리 수많은 세월을 온갖 고통 받을지라도 마침내 부처님의 자재한 위신력과 불법을 멀리 하지 않겠노라〔寧可恒具受 一切世間苦 終不遠如來 不觀自在力〕”라는 게송이 있다.
여기에 대하여 청량 국사는 “진실한 법을 알고서 널리 법계에 들어간다면 수행이 쌓여서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이는 부처님을 친견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힌 것이다. 특히 이 게송은 고통을 감수할지라도 부처님을 가까이 하겠다〔甘苦近佛〕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였다. 화엄경에는 예부터 십만게송경이라 불릴 만큼 게송이 많다.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게송들도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이 게송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을 가까이 하려는 그 간절한 뜻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번 여름 수련법회에서도 화엄사상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이 게송을 소개하였다. 그에 대한 어느 불자님의 편지 한 통을 소개한다.

반산스님께
안녕하신지요, 스님!
해인사는 날씨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제가 있는 공주는 무렵기도 하고, 비도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이면 해인사에서의 시원했던 4박 5일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마치 다른 세계에 있었던 느낌입니다.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중략) 수련회 중에서 가장 제 마음에 남는 것은 스님 말씀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처님과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부처님 은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마음은 사라지고 안일한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곤하고 졸립기만 하던 제게 스님께서 들려 주신 화엄경의 그 게송은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무덥고 메마른 땅에 한줄기 시원한 소낙비 같았다고 할까요. 큰 충격이었으며 감동이었다면 너무 감상적인 표현일까요. 사실 저는 많이 울고 싶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잊고 살던 어떤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법을 만난 것은 제 인생에 가장 큰 만남이요 사건이요 큰 복입니다만,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스님 말씀이 쾌 남았나 봅니다.
대법행 정선희 올림

편지를 보며 잔잔한 감동과 기쁨이 느껴져 나는 답장을 쓰기로 했다.

대법행 불자님께
요즘은 편안하십니까? 보살님의 편지를 받고 저는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많은 수련생 가운데 누군가의 심금에 나의 설법이 전해졌구나 하는 기쁨, 그래서 편지를 몇 번 되풀이 해 읽었습니다. 강사의 기쁨이란 청중이 나의 말을 알아듣고는 마음을 부처님께 활짝 열었다는 사실 그 밖에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특히 요즈음 사회 분위기는 기독교나 천주교 일색이고, 더구나 교단에서는 아직도 사회 대중과는 동떨어진 구시대적인 착오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절이 이러하니, 화엄경의 그 많은 아름다운 게송을 제쳐 두고 이 게송이 더 간절하여 소개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법성게에서는, “보배로운 비가 하늘 가득히 내려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중생은 근기 따 이익을 얻는다네〔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고 하셨지요.
교단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불법은 마치 ‘보배로운 비〔雨寶〕’와 같이 중생의 찌든 가슴에 한줄기 단비가 되어 우리를 영원히 적셔 줄 것입니다.
해인사 적묵당에서 석반산 합장

고통을 감수할지라도 부처님을 가까이 하겠다〔甘苦近佛〕
제24 도솔게찬품의 게송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만일 중생이 보리심을 내지 못하였더라도 한 번 부처님 명호를 듣고 나면 결정코 보리를 이루리〔若有諸衆生 末發菩提心 一得聞佛名 決定成菩提〕.
여래의 자재로운 신통력은 무량한 세월 동안 만나기 어려우니 만일 한 생각이라도 믿음을 가지면 속히 무상의 도를 증득하리라 〔如來自在力 無量劫難遇 若生一念信 速證無上道〕.

여기에 더하여 청량스님은 “이미 고통을 감수하고서 법문을 들었으니 이러한 뛰어난 이익을 얻는다. 즐거움 받지 못하며 오랜 세월 오욕락에 빠지지 않고 고통을 감수하였으므로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하신다.
불법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불교를 아끼는 불자님들의 그 마음속에, 그리고 종단 싸움을 걱정하는 우리의 안타까움 속에 늘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인연회우시 因緣會遇時에 과보환자수果報還自受니라”고 했듯이, 어느 큰스님의 법문에 “불자라면 누구나 씨앗이 열매 되는 도리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절이다. 오늘의 불교현실을 돌아보면 너무 고마운 법문이 아닌가 싶다. 뜨락에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내리는데 가야산 정상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