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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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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 김호성 1991년 08월 114호
우리는 율장을 공부하지 않는다. 계해 대해서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장 다음으로 율장이 고, 율장은 경장과 상호 보완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장은 외면당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계율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징표이다.
그 결과 오늘 우리의 삶은 얼마나 황량해졌으며, 교단은 또 얼마나 어려운 ‘위기’에 처하고 있는가; 그 까닮의 하나로 윤리의식의 결여를 들 수 있다고 한다면, 스님께서는 어떠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같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스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스승 경허(鏡虛)를 그대로 잇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삶의 양식에서이다. 경허가 원효(元護)라면 스님은 의상(義相)이다. 경허가 원효와 같이 격(格)을 깨뜨리고 격밖에서 무애자재함을 보이고자 했다면, 스님은 그 같은 무애의 세계를 이해하면서도 스스로의 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I영생 수분(守分) ·수굴(守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무애라고 하는 것이 파격(破格)이나 격외(格外)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언뜻 속박인 듯이 보이는 격내(格內)의 지계바라밀 속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스님은 1931년 만공(澈空)스님의 청으로 「선사경허화상행장(錯購蘭虛和尙行壯t)」을 집필한다. 그런데 이행장은 당시 펀집된 「경허집(鏡虛集)」 속에는 수록되지 않고 만다. 그 이유에 대하여 김지경박사는 “아마도 그 까닮은 경허의 행리(行層)를 논한 부분이 당시 편집자들의 의견에는 사자(師資)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선사경허화상행장), 대한전통불교연구원, p.87) 행장을 면밀히 검토해볼 때, 만일 그랬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시 편집자들의 오해였다고 판단된다.
필자가 보기에, 스님은 스승 경허의 그 무애자재한 행리에 대해서는 찬탄하는 태도를 보인다. 비록 먹고 마심에 자유이며, 성색(聲色)에 구애되지 않았다 해서 다른 사람의 비방을 초래한 일도 있었으나, 이는 廣大心으로 不二門을 증득하여 초월적으로 자재함이니 李通玄 같은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크게 깨친 사람이 아니면 어찌 소절에 구애되지 않음이 있겠느냐고 찬탄한다. 그러면서 혼동진속(混同塵洛)하여 업전수수(入聊壘手)힘을 들어서, 참으로 세상에 드문 위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이문을 증득한 경허와 같은 해탈인의 차원이며, 후래에 불법을 배우는 자〔後之學者〕는 그 행리를 함부로 배워서는 안된다. 오직 그 法化만 배워야 한다고 경계한다. “법화를 배움은 좋으나 그 행리를 배우는 것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다만 법안(빼良)을 강추지도 않은 채 먼저 그 행리의 무애만 본받을까 염려되어서 경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 법화를 배운다는 것은 ‘법에 의지함’ 이며, 그 행리의 무애를 함부로 본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에 의지하지 않음’ 이다. 여기서 ‘사람에 의지하지 않음’은 다른 사람의 득실시비를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 경허의 행리를 두고 그 법화까지 비방동는 자의 태도 역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승에 대한 찬탄은 그것대로 하면서 또 후학을 염려하는 자비심에서 사람과 법을 구별하고 나서 법을 앞세운 것은, 선지식으로서의 자세한 용심(用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애행을 할 만큼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 즉 후학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스님의 법어를 들올 수 있어서 크게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1945년 화산(華山)스님이, ‘평생의 육우명으로 삼을 만한 법어’를 청하자 적어 주었다는 다음의 법어는 이러한 우리의 의문에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해준다. 비록 그것이 스님의 창작이 아니라 중봉(中峰;1243~11323)선사의 법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통하여 스님 자신의 삶의 자세와 아울러 윤리의식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번역해 본다.
“견생코자 한다면 도심(道心)이 견고해야 하고, 화두를 의심하기는 생철(生鐵)을 씹은 듯 해야한다.
오래 앉아서 정진하되 자리에 눕지 말며, 불조(佛祖)의 말씀에 비추어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하라.
계체(械體)를 청정히 하여 신심(身心)을 더럽히지 말고 고요하게 행동하며 난폭하게 행동하지 말라.
낮은 소리로 적게 말하며 큰소리로 웃지 말고, 신망(信望)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비방은 받지 말아야 하리.
언제나 빗자루 들고 청소하면서, 도(道) 닦음에 게으르지 말고 음식을 배불리 먹지 말라.”

이상, 무애행(無愛行)에 대한 경계와 일상수행에 대한 스님의 가르침 속에서 우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영원한 구도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은 바로 삼학겸수(三學謙修)의 삶이다. 계 정 ·혜를 함께 닦는 것이다. 이 삼학겸수의 수행가풍은 초기불교에까지 그 연원이 이어진다. 그러나 불교사를 살펴보면 율종과 선종 이 따로 독립하고 교종도 세분화되어 종파불교로 발달함으로써 삼학겸수라고 하는 기본입장은 흐트러지게 된다. 각 종파마다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게 되면서 다른 수행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되는 것이다. 이른바 종파불교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과 한계를 인식, 삼학겸수를 다시 주창한 분이 우리 불교A에서는 보조국새普照斷) 지눌스님이다. 보소는 그의 결사운동올 정혜결새라고 이름했으나, 정혜가 계정혜 삼학의 약칭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삼학겸수 운동임을 선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율장 정신과 선종내 청규의 전통을 계승하여 ‘송광청규’라고도 불리는 「계초심학인문」을 저술·교육함으로써 선문내에서 계학을 회복시켰다. 스님은 이러한 면에서도 보조의 충실한 계승자임이 틀림없다.
청규에 의한 윤리적 삶을 통하여 개인적 삶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수행자 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승가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스님의 답 역시 ‘화합’이다. 아, 이 얼마나 진부한 말씀인가; 그러나 진작 진부하게 되어서 폐지되었어야 할 이 윤리덕목이 아직도 아쉬워지는 현실이니, 어쩌 다만 진부하다 하여 외면하겠는가

“비구란 말은 범어인데, 그 의미가 다양하므로 번역하지 않는다. 굳이 번역한다면, ‘청정한 계를 지닌다’ ‘번뇌를 깨뜨린다’ ‘악마를 두렵게 한다’ ‘6적(7嚴)을 능히 깨뜨린다’ 동의 의미를 가진다. 그밖에 ‘다툼을 없앤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다툼을 없애는 까닭에 화합이라고 하며, 화합하는 까닭에 승보라고 하며 인천(人天)의 복전이라 한다. 화합하므로 자성을 오수(悟修)할 수 있으며,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며, 나라와 세상을 복되게 할 수 있으며, 부처님의 교화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화합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영광을 드날릴 수 없으며, 나라와 세상을 복되게 할 수 없으며, 중생을 제도할 수 없으며, 자성을 깨달을 수 없으며, 인천의 복전도 아니고 승보도 아니다. 필경,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하겠거늘 어찌 애통하지 않으며 어찌 애석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금강저) 26호 권두언, 1943).

구체적으로 다툼은 무엇이며, 또 그 다툼은 어떻게 화합되는가 하는 점을 스님은 논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계제도 아니었거니와 어쩌면 그런 것은 기본적인 것으로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이에 대한 세부사항은 아무래도 율장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율장을 새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날, 譯事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스님의 이 같은 경책은 모든 불교인들이 되새겨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당시의 동경유학승들보다 이 시대의 불교인들을 위해서 남겨놓으신 법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