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철학자의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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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1년 05월 231호
밤이 되면 도량이 미리 밝힌 연등 불빛으로 고즈넉하고 참 아름답다. 괜시리 연등 아래 서서 누군가의 이름도 불러보고 또 누군가의 건강도 빌어보곤 한다. 이제 스님과 불자들의 손가락에 분홍빛으로 피었던 꽃들은 지고 형형색색의 오색등이 부처님 오신날에 맞추어 피어나고 있다. 낮에는 꽃들이 세상을 밝히고 밤에는 연등이 세상을 밝히는 때가 바로 이 사월이다. 봄바람과 햇살이 계절을 재촉하고 있다. 햇살이 재촉하고 바람이 도와서 피고 지는 꽃을 보면 거룩한 진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코끝이 시큰하게 무상함을 느낀다. 사람은 무엇이 재촉해서 이 세상을 오고 가는가… 우리 불교 교리적으로 말하자면 업이고 숙연이라고 할 것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건강치 못해서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전전할 때 나는 방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해도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새는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짝을 찾느라 목청 돋우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나무들은 두꺼운 껍질을 벗고 새순을 피우느라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뭇잎 피어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따뜻한 봄날이었다. 먼 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산에 가득하게 메아리치고, 열어 놓은 문으로 가만히 비치는 봄 햇살이 따사로워 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내밀어 해바라기도 해보고, 꽃향기 가득히 싣고 초대하지 않아도 인심 좋게 살랑거리며 찾아오는 바람에 팔을 걷고 피부도 내주고 코도 찡긋거려 보곤 했다.
그 땐 왜 그렇게도 자연의 조화에 의문이 많았던지…… 햇살은 왜 따뜻한가? 저 해는 저녁에 어디에서 자는가? 꽃은 왜 피어나는가? 나뭇잎의 고향은 어디인가? 산은 어디다 그 많은 물을 저장해 두었는가? 먼 산에 우뚝 서 있는 저 바위는 언제부터 저 자리에 서 있었는가? 왜 사람은 아파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부모님을 만났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무엇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내 안에서 나를 향해 이렇게 끝없는 질문들을 해 왔다. 적당한 대답을 찾느라 며칠을 밥맛도 모르고 혼자 고심하기도 하고, 너무 진지해서 금방이라도 그 해답이 어딘가에서 다 쏟아질 것 같기도 했다. 결국은 논리적이고 검증된 정답이 아니라 어린 자신이 제일 원했던 대답을 자신에게 하면서 말이다. 아마 어렸을 적엔 누구나 한번쯤은 이렇게 세상이 다 의문투성이인 어린 철학자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수학문제를 공식에 맞추어 풀어 가듯이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삶 저변에 산재한 문제들이 의외로 작고 쉬운 데서 풀리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일지라도 사람들은 자기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적당히 해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가끔은 햇살 한줌보다 더 가벼운 삶의 문제가 태산보다 더 큰 의문덩어리로 다가와서 막막하게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어린 철학자의 눈에 비친 세계처럼 세상은 신비하고 복잡하고 환희롭고 괴로움투성이다. 내가 있으므로 존재하는 이 모든 세계…… 어딘가에서 와서 어딘가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오늘도 어린아이처럼 나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