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색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단풍드는 가을산을 치지만 새생명의 빛으로 반짝이는 4월의 연초록 빛깔은 숨막힐 만큼 성스럽기까지 하다
버스에서 내려 해인사로 향하다 보니 길목 왼편으로 멋들어진(?) 현대식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해인사 박물관이다. 해인사로 걸어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해인사박물관은, 둥근 원형모양으로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유명한 김석철 씨가 설계한 것이라 하여 건물 자체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지난해 말 개원을 예정했으나 그 시기가 한참 뒤로 미루어져 빨라야 올 연말 아니면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다
박물관장 향적 스님은 해인사박물관만큼은 천편일률적인 유물전시에서 벗어나, 살아 숨쉬는 문화공간, 감동을 선사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향적 스님이 박물관장직을 맡은 것은 올해 들어서였다
건물이 거의 완성될 단계라 뒤늦은 감이 있으나, 누구보다 문화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것을 인정받고 있는 터라 주변에서는 스님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현재 향적 스님은 지족암 일타 큰스님이 쓰시던 그 방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 스님 방에는 일타 스님 사진이며,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관세음보살상, 간다라 불두 등 일타 스님 생전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일타 스님의 문화 취향은 어려서부터 시봉을 맡아온 향적 스님에게 그대로 이어진듯, 향적 스님 역시 문화에 대한 안목이 남다르다
“종교는 편을 가르지만 문화는 편을 가르지 않아 좋아요
아름다운 것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것이니까
기독교의 성화도 좋은 것은 누가 봐도 좋아요. 석굴암을 보고 많은 외국인들이 감탄을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유럽의 성지에 가서는 끌리는 것이 없었는데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려 명상에 잠겼다고 했듯이, 승화된 예술문화는 종교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죠.” 80년대 초반에는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사회 비판에 앞장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문화운동만큼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후에는 언론출판문화활동 (초대 해인 편집장)이라든지, 차문화 보급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박물관에 대한 본격적 관심은 물론 해인사박물관장직을 맡고부터지만, 그전부터 외국 여행지에서 반드시 들르는 곳이 도서관과 박물관이었다. 그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결국 투자죠
정신적 기쁨입니다. 음악회에 한 번 들어가는데 10만원씩이나 주고 들어간다고 배부른 것 아니죠. 자기만족이라고나 할까 여유가 있어야겠죠
음악과 시는 한소굼 자고 나서 감상하는 그런 여유라고 하듯, 문화는 눈에 나타나는 물질적 재생산이 아니라 정신적 활로를 주는 역할을 합니다
2시간짜리 영화에서 자기 삶이 바뀔 수 있듯이 박물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에 왔다가 자기 삶의 노선이 바뀔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는 90년대에 들어 박물관에 많은 관심을 보여 그 수가 많아졌다. 절만 해도 통도사,월정사, 수덕사 외에도 여러 사찰들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물은 고려시대의 옥제가화 (옥으로 갈아 만든 꽃화분)와 진주 붙은 등과 선조임금이 사명 대사에게 하사한 요령, 봉황촛대, 향로, 광해군의 옷 등과 희랑 조사의 흉상이 대표적이다 희랑 조사는 고려 왕건의 국사였던 분으로 스님의 가슴에는 구멍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흉상은 스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가슴에 구멍까지 뚫어 자기 흉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해인사박물관에는 이러한 유물들이 옮겨져 보관될 예정이지만, 그외에 나름의 특징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향적 스님의 생각이다
즉 박물관이 곳곳에 많이 생긴 만큼 이제는 주제가 있는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향적 스님은 그 주제를 목판 고려대장경으로 잡아놓고 있다
해인사 하면 고려대장경이 떠오르는 만큼 그 이미지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청주에 인쇄박물관이 있지만 그것이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거라면, 해인사는 목판 불경을 총망라해 수집 전시하고, 고려대장경은 어떻게 만들고 관리했으며, 찍은 시기, 종이, 먹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할 참이다
그러기 위해 밀랍인형도 만들고 팔만대장경 영화도 만들 계획이다
이번에 완성된 전자고려대장경도 비치해 열람도 하고 “세계 사람들이 고려대장경에 감탄하는 것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데 있어요
자연을 이용한 우리 조상들의 건축술을 홍보도 하고, 700년이나 된 경판이 어떻게 썩지도 않고 좀도 먹지 않을 수 있는지 과학적인 입증도 보여 주려고요. 장경각에서는 그런 것을 알려 줄 시간적? 공간적인 것이 안 돼 있거든요.” 요즘 향적 스님의 머리는 온통 박물관 운영계획으로 꽉 차 있다
단순한 유물전시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문화공간으로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순히 관람하고 가는데서 그치지 않고 화엄경변상도, 법화경 등의 원판을 모방한 판에 직접 먹을 발라 찍어서 가져 갈 수 있도록 하는 체험실도 운영하고,분기별로 판화전시회 등 기획전도 열고, 목판문화강좌도 열고 등등….’ 하루에 서너 사람이 왔다가는 그런 구태의연한 박물관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찾아와 북적이게 만든다는 것이 스님의 야무진 목표다
또한 한 20~30분 슬쩍 보고 가는 공간이 아니라 1시간 이상 머물수 있도록 하겠단다
그래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박물관 옆에 부속건물을 하나 지어 매표소 겸, 휴게실, 전통찻집, 사찰음식 식당을 만들려고 해요. 절밥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일반인들이 많잖아요
이왕 해인사에 온 김에 해인사에서 재배하는 야채로 스님들이 먹는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이는 사실 박물관 자체운영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드는 1년 운영비가 5억. 해인사 관람객을 연 6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그들 가운데 박물관 관람객을 10분의 1로 잡는다. 6만 명에게 입장료 1천원씩을 받아봐야 6천만원이다. 입장료로는 박물관이 운영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일단은 사찰에서 지원을 하겠지만 언제까지라도 지원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힘들다. 이것이 바로 스님의 가장 큰 고민이다
향적 스님이 박물관장이 되기 전, 애초 박물관을 맡았던 전임자는 박물관 옆의 공간에다가 종합불교수련원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뒤에는 만불전을 모시고 대불도 모셔 놓으면 사람 동원이 많이 될 것이므로 박물관의 자급자족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현재로서 실현가능성이 너무 요원하다
그리고 경기가 너무 어렵다 해인사박물관은 4월 중순 현재 외형만 완성돼 있는 상태로 내부 인테리어는 한창 진행중에 있다. 조명 설치문제며 1개밖에 없는 수장고 (유물 보관창고)를 하나 더 만드는 일 등을 추진 중이다
수장고를 늘리는 것은 본사 유물뿐만 아니라 말사의 것들을 위탁 보관하는 경우도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그리고 출입로가 지금은 박물관과는 멀찍이 돌아서 가도록 나 있어 해인사 오르는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탓에 박물관 앞으로 갈 수 있도록 해인사 오르는 길도 바꿀 참이다
향적 스님은 문화이해의 폭이 넓다. 아마 은사스님을 통해 익혀온 기본적인 안목에다
여행을 좋아해 세계 각국을 다닌 견문이 더해진 덕분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란서 수도원에서의 생활이다
스님은 불란서 ‘비에끼비브’라고 하는 수도원에서 1년을 생활한 적이 있다. 그 곳에는 90명 정도 되는 신부와 수사가 완전 자급자족 체제를 이루며 살고 있다. 수력을 일으켜 전기를 마련하는가 하면, 도자기도 만들고 인쇄소도 운영하며 100마리 정도의 소를 치면서 거기서 생기는 치즈를 내다 팔기도 한다. 그 안에서 목공소며 철공소 등도 갖추고 있었다
향적 스님이 이 수도원에 들어간 것은 우리 불교도 이러한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이 사람들도 헌금으로 먹고 살았단다
그러나 산업화 정보화 사회로 전환하면서 헌금이 점차 줄자 자급자족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향적 스님은 그 곳에서 도자기를 굽는 일을 했는데, 팬티와 양말까지 기워 입고 신는, 그들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청빈과 검소가 스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 와서 그러한 수도원을 만드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아직 때가 아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불란서 수도원을 다녀온 후 스님은 사람들이 개종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한다
“의식은 어떤 종교의식이든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어요
수도원에서 마지막 기도를 ‘꼼쁠레’라고 하는데 수도복 입고 성상을 향해서 라틴어로 ‘그대는 이스라엘의 어머니요’ 하는 멜로디가 그렇게 성스럽고 좋더라구요.” 장엄하기로 알려진 자정미사 때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에 모든 걸 압도당했는데,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까지 나더란다. 결국 승화된 의식은 종교를 초월해 감동을 안겨 준다는 귀중한 교훈을 안겨 주었다
향적 스님은 요즘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면서 효과적으로 박물관을 운영할 것인지에 매달려 있다
스님의 경영마인드야 앞으로 계속될 과제지만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습득한 스님의 넓은 안목과 올바른 시각이 걱정을 밀어낸다 박물관에서 보이는 앞산 봉우리가 참으로 장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