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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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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땅 좋은 벗 - 안혜령 1999년 10월 212호
백로가 지났음을 다만 높고 청량한 하늘로만 알겠더니, 길상 저수지 지나 인천 카톨릭대학 거쳐 양도면 도장리에 이르는 길에는 가을이 가득하다. 길가 좌판에 쌓여 단내가 물씬한 포도송이는 알알이 새까맣도록 윤을 내고, 하늘 높이 치솟은 수수에는 짙은 갈색 열매가 빼곡하니 여물어 가며, 감이며 대추며 밤 또한 토실토실 제 속을 살찌우는지라, 오곡백과에 고루 미치는 늦더위 더운 햇발이 고마울 따름이다.
저 논. 마리산(옛 이름 마니산)이며 징강산, 그 산자락에까지 그윽히 펼쳐져 흐뭇하니 일렁이는 벼 포기들, 풍성하며 듬직한 알알의 생명들. 아름답고 거룩하다.
흔히 알려져 있기를 강화도는 역사의 섬이다. 단군 신화가 깃든 마리산이 이 섬 안에 솟구쳐 있으며, 그뿐이랴. 몽고의 침입을 받은 고려 왕조가 천도를 감행했던 곳이고, 호국불교의 꽃이라 할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졌으며, 조선 말 쇄국과 개화의 틈바구니에서 신미양요와 병미양요라는 굵직한 사건들이 터진 땅이다. 또한 전등사며 보문사 같은 유서 깊은 절들이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강화학파의 맥을 일으킨 학문의 고장이기도 하며, 이마적에 와서는 빛이 바래긴 하였으나, 아직 화문석과 인삼의 고장이라는 명맥을 간직하고도 있으니,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아담한 풍광의 이 섬은 나라 안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의 하나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 이 곳은 벼농사로써 나라 안에서 가장 부유한 고장의 하나였으며, 부지런히 도시화의 길을 쫓는 이웃 김포와 달리 여전히 주민의 육십 퍼센트가 벼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농촌임을.
요 몇 년 사이에 이 섬에 귀농자들이 몰려들더니, 유기농업을 일구고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꾀하며 공생의 삶을 찾으려는 운동이 두드러지고 있으니, 이 활발한 움직임을 이끌고 있는 것이 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다.
농민회가 출범한 것은 올 2월이나 그 뿌리는 3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시작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였으며 이는,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를 다루는 재활용분과위원회가 환경농업을 다루는 작목반과 함께 농민회의 두 갈래를 이루고 있을 만큼 중요한 과제인 즉, 그 내력은 이렇다.
96년 11월에 김포 매립지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과 인천, 김포 일대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김포 매립지에서 그 주민대책위가 젖은 쓰레기 반입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악취는 물론 이거니와 땅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젖은 쓰레기의 주성분은 음식물 쓰레기로서, 반입이 거부당한 지역의 골목골목에, 대로변에 그대로 이 쓰레기들이 쌓이게 되었다.
주민들의 항의가 드세지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저마다 골머리를 앓았으니, 그 당장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가 등장했는가 하면 음식 남기지 않기와 젖은 음식물 물기 없애는 일 들이 사회적 구호로 내걸렸으며, 종량에 봉투와 쓰레기 분리 수거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그 뒤에 이루어진 일이다.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에서 도시빈민 운동에 몸담았던 김정택 목사가 농사꾼이 되고자 경상북도 봉화를 거쳐 강화도에 자리잡은 것이 그 해 4월이었다. 그전 해, 허병섭 목사의 주도이래 일단의 목사들이 새로운 삶을 모색하며 전국의 유기농가와 공동체 들을 답사한 ‘생태기행’에 그 또한 참여했던 바, 인간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생활방식의 변화를 절감하며 스스로 귀농을 결심한 터였다.
그러나 그 자신 “농촌주의자는 아니어서” 홀로 생태적인 삶을 이루기 위하여 귀농하기보다는 “도시와 농촌이 균형 있게 발전하며 함께 사는 길”이 더욱 지대한 관심사였고, 그 ‘도농 공동체’란 농촌이 중심이 되어 농적 문화를 도시로 전파하고 확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진대,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두메산골 봉화보다는 수도권에 가까운 강화가 훨씬 적절한 지역이기 때문에 거처를 옮겨온 터였다.
유기농업을 확산하며 아울러 일반 농민의 참여를 좀더 많이 끌어내기 위해서는 유기농산물의 판매에만 치우쳐서도, 자급자족에 그쳐서도 안될 일이니, 제 식구 먹을 것 내고 남는 것을 파는 방식을 가장 바람직한 방안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 터에 터진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그로서는 그가 꿈꾸는 도농 연대의 연결 고리가 되어준 셈이었다.
그 해 겨울, 그는 인천의 환경단체와 생협 들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인천 연수구의 아파트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오기로 하고, 이듬해 4월에 ‘음식물 찌꺼기 줄이기와 재활용을 위한 인천 시민협의회’를 구성했다. 아파트 단지의 천오백 가구와 그의 뜻에 공감한 세 농가가 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세 농가가 커진 것이 오늘의 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라 하겠는데, 삼년 동안 협의회에 참여하는 아파트 가구 수가 오천이백으로, 농민회에 속한 농가가 육십 가구 정도로 늘어났음은, 도농연대의 뼈와 살이 그만큼 튼실해졌음을 일러 준다.
육십 가구 중 마흔다섯 가구가 강화 토박이 농사꾼이며, 열댓 가구가 이 몇 해 사이에 귀농한 초보 귀농자들로서, 토박이들은 주로 청둥오리 벼농사를 짓는다. 농민회 총무를 맡고 있는 최부순 씨가 그 대표적인 예로, 팔구 년 동안 개인적으로 유기농업에 힘써 온 그는, 농민들의 “힘의 결집”이 이루어질 때 제 소리 또한 커지며 힘도 더 탄탄해짐을 깨달아 기꺼이 농민회에 참여했다. 청둥오리 농법은 곧 퍼져 나가서, 이들 논이 이제 오만여 명이 되며, 그 논에 풀어지는 청둥오리가 오천 마리 정도 된다. 다만, 그 수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논에서 거둔 청둥오리 처리 문제가 새로운 숙제로 떨어져 그 방안을 모색중이다.
반면, 귀농자들은 주로 양계에 힘을 쏟아 집집이 이백에서 오백 마리씩을 키우고 있다. 논 임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사정은 전국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태고, 강화도는 땅 값도 비싼 곳이다. 더러 생태적 삶의 이상을 찾기 위하여 온 이들도 있긴 하나, 그보다는 “도시에서 버티기 힘들어”, “집값 헐한 데를 찾아” 온 이들이 대부분인지라 당장 생계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 귀농자들이 손쉽게 기댈 수 있는 일이 축산임을 김정택 목사는 현장에서 비로소 이해했다.
대규모 축산은 애초에 염두에 없었으니 그는 ‘소규모 가족 복합농’의 형식으로 양계에 눈을 돌렸다. 양계는 위험 부담이 없고 시설비가 거의 들지 않는 일인 데다, 괴산의 흙살림연구소에서 연구개발한 폐닭, 곧 병들거나 몸에 약한 닭을 살려내 키우는 방법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집집이 폐닭을 헐값에 사들여 공짜로 실어오는 음식물 찌꺼기 사료로 실하게 키우면서 유정란을 얻어 계약된 도시가구에 내다팔 수 있게 된 것이다.
닭똥으로는 논밭의 거름을 쓸 수 있어 좋고,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쉽사리 거들 수 있는 일이니 제 식구 품만으로도 넉넉한 일이 또한 양계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의 각 가정마다에서 천 원씩 걷는 수거비는 차량 유지비를 제하고도 수거 담당자의 월급까지 보장해 주고 있어 귀농자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있다.
그러나 음식물 찌꺼기 자원화의 문제가 경제적인 이익을 꾀하자는 일만은 아닌 즉, 도농 공동체를 향한 이 일은 이제 귀농자들에게도 제 생업이 되고 있다. 예컨대 오로지 딸 셋의 건강과 교육을 위하여 도시 생활을 걷어 치우고 강화로 이주한 이광구 씨는 제 닭 이백오십 마리 정도를 키우는 한편 강화읍으로 출퇴근하며 자동차 영업을 겸하고 있었으나, 얼마 전에 그 “부업”을 그만두고 음식물찌꺼기 재활용분과 실무에 전념하고 있다.
“농촌중심의 도농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되도록 많은 도시인들 이 농촌을 찾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또한 그의 생각이다. 논에 청둥오리를 풀어 넣어 주기 같은 행사가 그런 의도로 마련된 것으로, 올 5월에는 인천시 부평의 생활협동조합원과 아이들 이백 명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와 더불어 올 여름에는 도시 어린이들의 강화도 문화 유적 답사와 자연 생태 기행 프로그램을 농민회에서 마련했다. 강화도 남단의 갯벌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거니와, 바다와 육지의 완충지대로서 육지의 오염 물질을 정화해 주며, 바닷새와 어류의 서식지이며 다양한 생물의 보고로서 갯벌이 가지는 가치는 한두 가지에 그치는 것이 아닐 터인즉, 이렇듯 문화 유적이 풍성하고 갯벌이 펼쳐진 강화도야말로 가장 생생한 생태교육의 현장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환경농업을 결합하여 강화도의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 농민회의 계획인 것이다.
올 여름 동안 인천의 사십여 개 어린이집과 공부방 어린이들이 이 프로그램으로 강화도를 다녀갔다.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청둥오리 벼농사 답사와 닭장 견학, 갯벌 탐사와 때로는 도장리를 둘러싼 징강산 자연 체험까지 하나로 묶인 일정 속에서 아이들은 논의 벼가 어떻게 밥이 되는지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했으며, 닭에게 모이를 주고 제 손으로 달걀을 모아 볏짚에 싸 넣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하여 귀농자들 중 다섯 부부가 선생님으로 나섰으며, 이들이 가장 공들인 것은 물론, 자연과 사람, 도시와 농촌, 사람과 사람의 공존공생이니, 예컨대 아이들은 닭장 견학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닭은 하루에 150그램 정도, 요만큼 쌀을 먹어야 알을 하나 낳는단다. 그런데 이만한 양이면 사람이 한 끼 먹을 수 있는 밥이 되지. 너희들 달걀만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겠어? 못 하지?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거든. 그런데 사람에게 필요한 곡식을 닭에게 줘 버리면 어떻게 될까?”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이 그만 밥을 못 먹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을 곡식으로 가축을 키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란다.”
대규모 축산이 전 지구적인 기아문제로 이어지는 현실 비판인즉, 사사로운 욕망을 줄이고 제 가진 것을 나누는 공생의 삶의 씨앗을 아이들은 제 마음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일들을 좀더 체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하여 계획하는 일이 ‘환경농 교육장’ 설치이다. 강화군청에 제출할 제안서에서 환경농업 견학과 생태 기행 등의 계획과 함께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음식물 찌꺼기 자원화를 원활히 할 사료 생산인데, 농촌의 발전을 위해서는 식품 가공 시설이 반드시 농촌에 들어서야 한다는 김정택 목사의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계획이다.
어쨋거나 관건은 현재 대세를 이루는 소비적이고 물량주의적인 생활 양식의 변화인즉, 말이야 간단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과정에서 “피나는 자기 노력이 필요한” 지난한 이 일을 지속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해서 도농 연대 운동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다. 김정택 목사가 ‘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와 ‘음식물 찌꺼기 재활용운동 협의회’ 회장이라는 직함말고도 ‘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인천 시민협의회’와 음식물 찌꺼기를 재활용하는 시민 기업인 ㈜녹색기술의 공동대표, 인천귀농학교 교장 등 갖가지 역할을 떠 맡은 것이 오로지 ‘도농 공동체’를 위한 일이다. 이 길을 농민회 회원들이 함께 갈 것이며, 이십년 가까이 탁아 사업을 벌이고 있는 부인 임정숙씨 또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터이다.
아울러 십여 년 계속해 온 ‘비파사나’ 수련을 통해 제 마음 다스리는 일 또한 그가 농민회 회원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이니, 사회 변화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개인의 자각이라 볼 때 그의 마음닦기는 저 자신의 온전성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성숙함을 지향하는 또 다른 방편이라 하겠다.
농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귀농자들이 벌이는 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자연과 가까운 학교, 작은 학교와 교육”을 지향하여 시도하는 ‘서당교육’이다. 그 출신 성분이 참으로 다양한 이 곳 귀농자들 가운데에는 화가며 소설사 같은 자유직업인은 물론이고 특히 전교조 교사들이 많으며, 대안 교육을 연구하는 모임인 출판사 ‘내일을 여는 책’도 한 마을 안에 있다.
이 마을 어른들이 다 훌륭한 선생님들인즉, 토요일마다 열리는 ‘마리서당’에서 스물댓 명 아이들이 그림과 글쓰기, 한문을 통한 고전 읽기를 배운다. 그 작은 서당안에서 기존 교육이 돌아보지 않고 있는 전인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질지니, 강화도 구석구석에 또 다른 ‘마리서당’들이 생겨날 때, 강화도는 도시와 유기적인 순환 관계를 맺고 자체적으로 대안 문화를 꽃피우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