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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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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산책 - 재연 2001년 05월 231호
초파일에 다는 연등은 빛을 상징한다.
아미타불의 근본도 한량없는 빛이며 비로자나는 본래 태양의 아들을 뜻한다.
부처님은 빛과 함께 태어나신 것이다.
빛과 부처님오신날


천황봉 그늘에는 아직도 잔설이 하얗게 남아있는데, 골짜기에는 진작부터 진달래 화사하게 피어나고 산사 초입에 오색등이 줄줄이 걸려 있다.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동장군은 물러가고, 산과 들에 퍼지는 풀빛처럼 몸 마음 구석구석에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 오호라, 무상하고 무상하여라! 무상! 사람들은 흔히 이 무상이라는 말이 희망과는 전혀 무관한, 아니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무상한 까닭에 좋은 것이 원하지 않는 쪽으로 변하는 것도 사실이나, 무상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 좋아지기도 하고, 뒤틀린 것이 바로잡힐 수 있는 것이다. 무상하지 않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다. 즉, 세상 만사가 한 번 만들어진 그대로 절대 불변하는 것이라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이 무상은 그럴 만한 이유와 조건에 의해 생성?변화하고, 그렇게 유지되는 이 세상 모든 존재에 일관된 원리이며 또한 얼굴이다. 불교도들의 모든 종교적 노력이란 곧, 이 연기緣起와 무상의 도리를 바르게 깨닫고, 눈 똑바로 뜨고 이 세상을 직시하며, 이 가운데 속 편하게 살고자 애쓰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평생 동안 갖은 방편으로 당신의 이웃과 제자들에게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록이 퍼지는 산사의 뜨락에 정갈하게 밝히는 오색등불은 고따마 부처님 탄생의 의미를 멋지게 표현해내려는 옛 불교도들의 기발한 발상이었음에 분명하다. 등불, 광명, 밝음, 빛줄기는 곧 위대한 스승의 깨달음과 지혜, 자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신 스스로의 탄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으며, 어떻게 전하려고 했을까? 물론, 방대한 분량의 경전과 불교 역사서 가운데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기록은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붓다짜리따 Buddha-carita》 또는 《랄리따위스따라 Lalita-vistara》 같은 전적들이 있으나 부처님의 열반 이후 여러 세기 뒤에 조성된 것이며, 빠알리 어語 경전에도 고따마 부처님의 탄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장부 아함 Dgha-nika-ya 제 14경인 Maha-pada-na-sutta(한역 장아함 대본경大本經)에 미루어 당시 세상에 퍼진 전설과 정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과거 여섯 부처님의 출현에 대해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지금으로부터 91겁劫 전에 위빠시(毘婆尸)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었다. 그 뒤 시키(尸棄)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31겁 이전의 일이다. 그와 같은 겁劫 안에 웨싸부(毘舍婆) 부처님이 태어났다. 그리고, 바로 현겁現劫에 까꾸산다(拘樓孫) 부처님, 꼬나가마나(拘那含) 부처님, 까싸빠(迦葉)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뒤이어 나 고따마(瞿曇) 부처가 태어났다.”

이어서 낱낱 부처님들의 출생, 성장, 출가, 성불, 교화에 대해, 특히 위빠시 부처님에 관한 상세한 언급이 계속된다.

“비구들이여, 도솔천(Tusita)에서 수壽를 다한 위빠시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었다. 이 때에 위로는 천신과 마라, 범천梵天으로부터 아래로는 사문, 바라문 온 백성과 심지어는 해와 달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량없이 밝은 빛이 나타났다. 마침 그 곳에 있던 생명들은 신들의 그것을 능가하는 이 밝은 빛으로 인하여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말했다: ‘실로 여기 다른 생명들이 있었구나!’ 라고. 또한 천, 만 세계가 진동하고 전율하였다.”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진동과 전율의 이유야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엄청난 빛에 대한 이야기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생명과 세계에 대한 외경을 말하는 것일까? 너무 심한 비약일지는 몰라도, 머지않아 그 분의 깨달음과 가르침에 의해 존재와 세계의 실상이 밝혀질 것이라는 암시일 수도 있다. 어쨌든, 후기 대승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아미타불의 근본 역시 한량없는 빛(bha-)이며, 비로자나(Vairocana)가 본디 태양의 아들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교와 빛이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온 우주를 흔들어 놓은 빛과 함께 잉태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은 어땠을까? 미리 답을 말하면 그 분은 빛과 함께 태어난다.

보살의 어머니는 서서 아이를 낳는다. 사천왕들은 아이가 미처 땅에 닿기 전에 받아 어머니에게 건네준다. 아이는 마치 정결한 바라나시 산産 비단에 놓인 보석과도 같다. 보석이 비단을 더럽히거나 비단이 보석에 흠을 내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이 둘 모두 순결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보살은 북쪽을 향한 채 두 발로 굳게 서서 일곱 발짝을 걷고, 주변을 돌아본 다음 황소처럼 외친다: ‘내 이 세상의 꼭대기다! 내 이 세상의 맏이요, 으뜸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생이니,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으리라.”

이 부분은 한역 경전에 ‘천상천하 유아위존 天上天下 唯我爲尊’이라고 번역되었다. 빠알리 어語 경전에서도 꼭대기, 맏아들, 으뜸 등의 단어가 형용사의 최상급으로 쓰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역에 보이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쓰임새나 황소(a-sabha) 울음이 훗날 사자의 포효가 되는 것은 실로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거듭해서 나오는 빛의 법문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다시 새기고 따져보는 것이리라.

부처님오신날은 먼 옛적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기리고 봉축하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맑고 밝게 다시 태어나는 날이어야 한다. 또, 우리가 부처님 앞에 밝히는 등불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칭송과 찬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지혜의 등불이다. 언제까지 남의 등불로 긴긴 밤길을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