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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미망 속의 편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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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안종국 2001년 05월 231호
초월적 상태에 대하여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든 그 실재 여부를 판단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있다거나 없다는 단정은 모두 불가능하다. 다만 가정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향한 노력은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시도할 만한 것이다.

한때 나는 십일조보다도 더 많은 퍼센티지의 헌금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집단에 속해 있을 때 나는 참으로 편했다. 그들은 구도자들의 모임을 표방했지만 교주와 같이 군림하는 지도자가 있고 의식이 있었으니 일종의 종교집단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강의록을 읽고 스스로 그를 찾아갔다. 새해 인사차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인사를 했을 때 그는 뭐라 했던가. “내가 복이야.”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 때 나는 ‘라즈니쉬 병’에 걸려 있었다. 라즈니쉬-. 여러 스님들의 방에서도 그의 책을 본 적이 있다. 그의 말은 현란했고 물 흐름처럼 자연스러워 나는 그에게 반했다.
또한 나는 ‘크리슈나무르티 병’에 걸려 있기도 했다. 그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나 라즈니쉬의 《마하무드라의 노래》 같은 책을 밑줄 그어가며 읽기가 무려 몇 차례였던가. 그러고 나서 보면 온 책의 거의 모든 행간에 밑줄이 그어져 있곤 했다. 그러한 방황 끝에 나는 ‘혹시 진짜일지 모른다’며 그 모임을 찾아갔던 것이다.
집단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다. 기존의 회원들이 어찌나 그 스승에 대해 경건하고 공손하였던지 나는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던 스승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의 말은 크리슈나무르티에 못지 않은 것 같았고 라즈니쉬를 능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자 이내 구름장처럼 의심이 마음 한가득 퍼져올랐다. 그 스승은 “그대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볼 수 있다.”면서 제자들의 영적 성장의 단계를 점수 매기듯 매겨 호칭을 달리했다. 수련이나 강의 시간중 이들 몇몇 제자는 화려한 복색으로 갈아입고 앞자리에 앉았다. 이게 뭐냐 싶어서 ‘떠날까’ 하고 되뇌어본 순간 의심의 구름은 순식간에 두려움의 구름장으로 변했다. 어느덧 나는 마취되고 세뇌돼 있었던 것이다.
그 스승이란 이는 아주 드물게, ‘자신으로부터 방사되는 기운이 제자들을 교통사고나 질병으로부터 지켜 준다’는 말을 했다. 그야말로 가물에 콩나듯 한 달에 한 번이나마 했을까.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말에 세뇌돼 있었던 것이다.
그 두텁고도 무거운 두려움의 존재를 실감하는 순간 나는 떠날 결심을 확고히 굳혔다. 분명코 이런 종속 상태로는 내가 원하는 바의 성취엔 근처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한동안은 얼마나 두려웠던가. 차가 다니는 길거리로 나서는 일, 그리고 호흡하는 일조차도 두려웠던 며칠간의 그 악몽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루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성한 종교들은 모두 모양새가 그 집단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기본 틀을 실은 사랑도, 자비도 아닌 두려움에 가장 크게 의지해 구축한 느낌이다. 오히려 그 집단보다 훨씬 더 노골적인 것 같다.
스키장을 다녀오던 어느 날 밤, 느닷없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운전하던 친구가 이마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채로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크게 다쳐 혼절을 한 줄 알고 놀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친구는 오늘 아침의 기도를 소홀히 한 죄를 신께 반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이 오늘 아침의 무성의를 벌하신 것이라고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무서웠다. 그 무서운 속박은 누구의 책임인가.
지금 나는 그러한 속박에서 자유로운가, 하고 자문해본다. 잘 모르겠다. 혹여 또 다른 속박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되돌아본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건 다행인지 모르지만 사는 게 영락없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꼴이다.
고백하자면, 답답해진 나는 몇 해 전 속박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또다른 스승을 찾아나섰다. 그는 뭔가 달랐다. 그는 수련 중 종종 “나에게 매달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무례한 질문도 했다.
“선생님께선 깨달으셨습니까?”
그는 이렇게 받았다. ‘선생처럼 의심이 많은 분이 실은 가장 미혹되기 쉽다’고. 나는 내 질문에 바로 답해달라며 물고 늘어졌다.
“깨달음이 무언지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길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깨달으셨습니까?”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알아보십시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어서 꾸준히 수련에 참여했지만, 아쉽게도 어느날 그는 갑자기 “나는 이제 필부로 돌아간다.”며 모임을 파했다. 아직도 아쉽고 궁금하다.
돌아보면 나는 너무 재고 따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실은 궁극에 이르기 전까지는 모두가 미망이 아니던가. 어차피 구도란 미지의 대상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지는 일 아니던가. 깨달음이란 것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내가 터럭끝만큼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인가.
오욕칠정이며 백팔번뇌를 모두 떠난 공의 세계란 나에겐 말로만 존재하며, 혹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망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간혹은 이 글을 모니터에 띄워 놓고 읽어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곤 한다. 서양의 어느 사회학자가 한 말이다.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고,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생존은 고통과 절망의 끊임없는 연속이라는 사실의 인식에서 출발한 초월적 세계에 대한 욕망은 장차 누구나 가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인간은 전적으로 상이한 조건에서 나오는 저마다의 가치판단에 한정된다. 이 단순한 사실에 의해서도 그러한 초월적 상태에 대한 가치판단은 모두 정당할 수 없게 된다.’그렇다. 누가 알 것인가. 그 초월적 상태에 대해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든 그 실재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있다거나 없다는 단정 모두 불가하다. 다만 가정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향한 노력은 성패 여부를 떠나 시도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과거에 그런 내적 평화를 성취한 사람이 과연 있었느냐의 여부는 검증이 불가능하거니와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늘 이런 식으로 결론을 맺는 나는 그래서인가, 여전히 삭발한 스님들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놀고먹는다’ 라거나 ‘묵언 한다면서 손짓발짓으로 온갖 말 다한다’ 어쩌고 하며 사뭇 모진 농을 하기도 하는 나이지만, 실은 부러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정작 스님네들을 보는 시선은 미덥다.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인류에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방식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인류에겐 끝없는 도로徒勞와 미망만이 남는 것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