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사람들이 오랜 해를 거듭하면서 언어 ·혈연 ·지역 ·정치 ·문화·역사·경제의 공동을 바탕으로 맺어지고, 나름의 공동체 의식이 쌓이면서 생겨난 사회적 ·역사적 산물이다.
따라서 민족형성의 역사적 배경과 시기가 서로 같을 수 없고, 민족집단의 규모나 내적 발전 정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가운데 물리적 힘과 천박한 우월감을 앞세운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누르고 지배해 온 것이 세계사의 흐름인 셈이다. 여기서, 자기 민족중심주의와 인종주의를 내걸고 다른 민족을 침탈해 온 무리들에 의해 상대적 박탈로 괴로움을 겪는 이른바 ‘소수민족 문제’가 발생한다.
흔히 ‘소수민족’이라 함은, 그 구성원의 수가 많고 적음을 헤아린 것이 아니라, 민족과 민족사이의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종속’이라는 틀거리 속에서 시달리는 민족을 일컬은 말이다.
그러나 지금껏 유행하고 있는 민족이론들은, 그것이 문화적 요소로 뼈대를 세운 서구 아카데미 사회학이건 혹은 경제적 요소에 뿌리박은 막스주의적 관점이건 모두 서양 사람들의 삐뚤어진 눈길일 뿐, 오늘날 복잡하게 얽힌 민족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뚜렷한 한계를 안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민족 이론들이 제3세계라는 틀과 그 속에 자리 잡은 소수민족이라는 이중의 구조를 가진 ‘제3세계의 소수민족 문제’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사팔뜨기 서양이론을 억지로 끌어다 맞출 까닮도 없는 것이다.
마땅히, 제3세계 속의 소수민족 문제는 제 3세계의 남다른 역사 경험과 사회체계 안에서 깨닫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이며, 이를 위해 소수민족들의 실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도 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소수민족을 바라보는 눈초리들은 언제나 근거없는 민족 우월감에 곁들인 호기심과 약간의 동정심이라는 슬픈 기만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오늘날 갖은 소수민족 문제로 뒤엉켜 있는 타일랜드의 실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타일랜드는 옛부터 이웃 버마· 중국·라오스·크메르의 틈바구니 속에서 절묘한 이중외교를 펼치면서 어렵사리 역사를 이어왔으며, 19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분할투쟁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2차대전때는 그 국제적 임기웅변이 극에 달해, 재빨리 일본에 항복하고 미국·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측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타일랜드의 발 빠른 변신은 동남아시아로 뻗어나기 위한 미국의 발판이 되면서, 잦은 정치적 변혁을 겪고 있는 이 지역의 반사회주의 혁명에 파수꾼 노릇을 하게 된다.
이러한 타일랜드의 역사적 경험은 지리적 조건과 맞물려, 예부터 이웃 민족들이 흘러 들기에 좋은 구실이 되었고, 이들 유민들이 바로 타일랜드의 소수 민족군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 물리적 제지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적 상황을 피해 미얀마·라오스·캄푸치아 ·베트남으로부터 타일랜드로 흘러들고 있는 난민들이 바로 이러한 민족 이동의 유력한 본보기가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리비아 등의 음성적 지원을 받으며 분리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타일랜드 남부 이슬람교도(인종적으로는 말레이족) 들의 해묵은 불길이 지난 해 가까스로 잡히기는 했으나, 전통적 불교사회인 타일랜드에서 민족·종교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실정이다.
또한 남부지방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 온 해양족들의 해적화도 타일랜드가 안고 있는 소수민족 문제의 하나로 불거지고 있으며, 북부지역에서는 미얀마로부터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미얀마의 소수민족들이 타일랜드 국경을 넘나들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터에, 미얀마의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던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국경지대 소수민족 마을로 흘러 들고 있어 타일랜드의 또 다른 소수민족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타일랜드의 소수민족 문제는 도시에서도 쉽사리 둘러볼 수 있다. 전 국민의 기껏 15% 남짓한 화교들이 타일랜드 나라살림을 손아귀에 쥐고 있어 80%를 웃도는 타이계 사람들과 소리 없는 마찰을 빚고 있으며, 도시 속의 ‘차이나 타운’이나 ‘인디안 타운’은 이러한 이주민 소수민족 문제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소수민족 문제로 휩싸인 타일랜드는 오늘날 제3세계 소수민족 문제의 살아있는 표본실이라 불릴 만하다.
타일랜드의 소수민족은 편의상 언어학적 구분에 따라, 중국-티뺏계(Sino-Tibetan), 오스트로-타이계(Ausno-Thai), 그리고 오스트로-아시아계(Ausno-Asia-hc)등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중국-티뱃계는 중국계(화족), 티뺏계-버마계(리수족, 라후족, 아카족)와 카렌계로 나눌 수 있고, 오스트로-타이계는 몬-크메르족으로 나누어지며, 그 아래 숱한 소수민족의 가지가 뻗쳐 있다.
여기에다 여러 갈래 인종적 특성을 가진 남부지역 사카이족(니그로) , 모켄족(바다의 집시) , 말레이족(이슬람교도) 등이 뒤엉켜 타일랜드의 소수민족군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소수민족 분포 속에서 타일랜드가 처음으로 소수민족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959년 ‘산족을 위한 국립위원회’를 설치하면서부터 였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활동은 극히 형식적인 데 그쳐, 그나마 소수민족들에 대한 지원사업은 U.N.특별기관·시민단체 등이 내놓은 기부금에 의존해 왔다.
그 뒤 1976년 7월 6일 ‘산족을 위한 왕립 개발계획’이 세워지면서 타일랜드 정부는 나름대로 소수민족들을 위한 의료·환경 ·교육· 산림 ·가족계획 등을 꾸려 오고 있으나, 소수민족 문제의 본질을 무시한 채 전시효과에만 치우찬이 계획에 의해 오히려 소수민족들은 그들의 삶터에서 쫓겨나고, 전통적인 정신과 문화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한편, 이 계획의 취지문에서 밝힌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타이족과 마찬가지로 소수민족들도 1등 국민이 되게 한다’는 구호가 한낱 타이족 중심의 이기적인 동화정책에 지나지 않음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소수민족 마을들은 타일랜드 정부에 의해 관광상품으로 둔갑해버렸고, 때문에 도시로 내몰린 소수민족들은 범죄집단으로, 매춘인력으로 변질되면서 새로운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가 하면, 서양 자본을 끌어다 댄 ‘타이-저먼 프로젝트 ‘나’ ‘타이-오스트레일리아 프로젝트’라 불리는 소수민족 개발정체에의해 소수민족 마을에는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가 심어지면서 극심한 혼란이 일고 잇는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초 이른 바 타일랜드의 민주화 기간 동안, 미국의CIA와 타일램즈의 COSOC(공산당 진압작전 사령부, 그 뒤 보안작전 사령부 ISOC로 바뀜)는 ‘메오족’을 반혁명 세력으로 조직하는 등 의도적인 인종, 민족, 마찰정책을 펼쳐 왔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소수민족들은 제국주의와 이에 빌붙은 타일랜드 정부의 의해 정치적 노리개가 되어 온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타일랜드 한 모퉁이에 움추려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앞마당에서는, 인도주의, 국제평화주의라는 제목을 내걸고 제국주의 연출에 따라 이기심을 탈바가지 속에 감춘 기생놀이꾼들이 민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구경꾼들의 장단에 맞춰 한바탕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동네 어귀로 내몰린 소수민족들의 고유한 권리와 나름의 삶터가 지켜지는 참다운 해방을 맞을 때, 비로소 인류평화라는 세계사의 가치가 실현 될 것임에 틀림없고, 이것이 바로 타일랜드 소수민족들과 인류 양심의 하나 같은 바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