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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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1년 05월 231호
구지수기수지俱竪起手指하여 득실시비돈거得失是非頓祛로다.
구명만법전진苟明萬法全眞인데 단익족기다거但益足起多擧로다.
구지가 한 손가락을 세워서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모두 쫓았네.
만 가지 법이 모두 참인 줄을 알면 여러 번 말했던 기록만 더할 뿐.
당나라 때 무주州 땅 금화산金華山의 구지俱 화상은 평생 동안 누가 와서 무엇을 묻든지간에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들었습니다. 입적할 무렵에 대중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천룡天龍 스님에게서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일생 동안 써 먹었지만 다 쓰지 못하였다.”이 말을 마치고서 그대로 열반에 들었습니다.
구지 화상이 젊었을 때 깊은 산중의 토굴에서 정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날이 거의 저물어 가는데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혼자서 육환장을 짚고 삿갓을 쓰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삿갓도 벗지 않고 육환장을 짚고서 화상이 참선을 하고 있는 선상禪床을 세 바퀴 돌면서 말했습니다.
“말할 수 있다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이처럼 세 차례 질문하였으나 구지 스님은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 좀 한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별볼일 없는 스님이군.”이에 비구니가 떠나가려 하자 이미 날이 저문 까닭에 구지 화상은 하루 머물고 가기를 청하였습니다.
“말할 수 있다면 하룻밤 쉬어가지요.”
구지 화상은 이번에도 무어라고 할 말이 없어 묵묵히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한 말씀이 없으니 저는 여기 머물 수 없습니다.”그리고는 바로 떠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법거량도 종문에 더러더러 전해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관계지한灌溪志閑 선사와 말산요연末山了然 비구니와의 법담이 유명합니다.
관계 선사가 행각을 다닐 때 말산 요연 회상에 가서 먼저 자청하여 말하였습니다.
“대답하면 머물 것이요, 대답하지 않으면 선상을 뒤집어 버리겠다.” 그래도 요연이 법상에 오르니 관계 선사는 참문하였습니다.
먼저 요연이 물었습니다.
“오늘 어디서 떠나 왔습니까?”
“길 어귀에서였다.”
“왜 일산을 쓰지 않았습니까?”
관계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서 절을 하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말산인가?”
“정수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말산의 주인인가?”
“남자의 모습도 여자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러자 관계가 할을 하고는 말했습니다.
“왜 변하지 않느냐?”
“신神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거늘 무엇으로 변하리오.” 이 말에 관계 스님은 굴복하였고 그 곳에서 삼년 동안 원두園頭소임을 살아 주었습니다.
구지 화상을 찾은 실제 비구니나 관계 화상이 찾아간 요연 비구니는 모두가 훤칠한 대장부의 기개를 지녔습니다.
당당한 공부인으로서 이미 남녀의 모습을 벗어났다고 할 것입니다.
지한 스님은 바로 그 곳에서 원두를 살아 주었고 구지 스님은 이로 인하여 더욱 분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구지 스님은 탄식하였습니다.
“나는 장부의 모습을 가지고서도 장부의 기상이 없구나.”여러 해 동안 토굴에서 죽자고 공부를 했는데, 결국 오늘 난데없이 나타난 비구니의 한마디를 감당하지 못하여 한마디 말도 못하고 여지없이 짓밟힌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분심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이 일’을 밝히고자 토굴을 버리고 여러 총림의 선지식을 탐방하여법문을 청하려고 신변을 정리하여 행각을 떠나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이 나타나 스님에게 고하였습니다.
“스님은 이 곳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육신보살이 찾아와서 스님에게 법을 설해 줄 것입니다.”과연 천룡 스님이 이튿날 그 암자에 이르렀습니다.
항주杭州 천룡天龍 화상은 마조 스님의 손주제자입니다. 그의 스승은 대매법상大梅法常입니다.
이런 법문이 전해져 옵니다.
천룡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이에 불자를 세웠습니다.
다시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삼계를 벗어나겠습니까?”
“그대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어쨌거나 구지 스님은 선지식을 만났는지라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분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도를 닦는다고 이 깊은 산중에서 토굴생활을 몇 년씩 했는데도한마디도 답할 수 없었으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디 큰스님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한마디만 가르쳐 주십시오,”그 스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있다가 손가락 하나만을 척 세워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 찰나에 구지 화상은 확철대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뒤부터는 누가 무엇을 묻든지간에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깨친 뒤에 묻기만 하면 한 손가락을 세웠는데 무엇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묶으려 하였으나 묶지 못하였고, 그를 쳐부수려고 해도 깨뜨리지 못했겠습니까? 만일 손가락 그 자체를 가지고 알려고 한다면 결코 옛사람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참선은 참구하기는 쉽지만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요즈음에는 묻기만 하면 손가락을 세우고 주먹을 불끈 드는데, 이는 망상분별일 뿐입니다. 모름지기 뼛속에 사무치는 투철한 견해가 있어야만 합니다.
구지 스님이 천룡 스님의 한 손가락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중하게 한결같이 참구하였기 때문에 칠통 같은 밑바닥이 쉽게 빠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분심을 가지고 대용맹심으로 정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그 때 천룡 스님이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을 들어보였더라도 깨쳤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지 화상을 시봉하는 동자승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자기 스님이 누가 와서 무엇을 물을 것 같으면손가락 하나만을 들어보이는 것을 보고는 어린 마음에 ‘법문하기란 참 쉬운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지 스님이 안 계실 때 누가 와서 “요사이 큰스님께서 어떤 법문을 하시느냐?”고 누가 물으면 자기도 손가락을 세우곤 하였습니다.
구지 화상이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하루는 몰래 칼을 소매 속에 숨기고는 그 동자승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냐?”
이에 동자승은 늘 하던 대로 아무 생각없이 손가락을 세우므로 구지 화상은 칼로 그 손가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아파서 소리지르며 달아나는 동자승을 보고는 구지 화상이 불렀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냐?”
이에 동자승은 습관대로 또 손가락을 들었지만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보고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손가락을 끊기고 나서 비로소 참으로 손가락 하나 드는 법문을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손가락 하나 드는 법문은 그 손가락을 끊어 없애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니, 손에 붙어 있는 손가락만 보다가는 손가락 드는 법문을 모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손가락을 보지 말고 이 손가락 드는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손가락이 있든지 없든지간에 실지로 손가락 드는 법문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사 스님이 “내가 천룡天龍 스님에게서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일생 동안 써 먹었지만 다 쓰지 못하였다.”는 구지 선사의 이 말을 듣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 때 보았더라면 손가락을 꺾어버렸을 것이다.”현사 스님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구지 스님을 인정한 것입니까?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까?인정했다면 어째서 손가락을 꺾는다 했으며, 인정하지 않았다면 구지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대종사수지두 老大宗師竪指頭하니 일생용득최풍류 一生用得最風流로다.
현사요절무인회 玄沙拗折無人會하니 연래연거냉수수 年來年去冷로다.
대종사스님이 손가락을 세워서 평생 동안 사용하니 뛰어난 풍류로다.
현사 스님이 꺾은 일 아는 이 없으니 해가 가고 해가 올수록 찬 기운만 감도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