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 국민학교에는 천마(天馬)처럼 허공을 획 날으는 그네가 여섯개나 있었다. 모두가 아이들한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행복한 그네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그네는 아이들한테 ‘조랑말 그네’라고 불렸다. ‘조랑말 그네’는 키가 작은 것 말고도 다른 특정이 하나 더 있었다. 아이들이 엉덩이를 붙이는 발판이 고무로 되어 있지 않고, 딱딱한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나뭇조각은 한 가운데로 결을 따라 금이 나 있기에 언제 쪼깨져 버릴지 몰랐다.
그래서 수위 아저씨는 ‘조량말 그네’의 나뭇조각올 볼 때마다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고무판으로 갈아야지. 아이들이 다치면 안되니까.”
‘조량말 그네’의 나뭇조각은 수위 아저씨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빈 운동장이 더 넓게 보이곤 하였다. 더욱이 아침마다 새벽빛처럼 찾아주던 선재의 딸마저 보이지 않는 요즘은 잎 진 플라타너스 더 쓸쓸하게 보였다. 선재는 밴 운동장을 찾아와 이마에 송알송알 땀이 밸 때까지 몇 바퀴씩이나 달려주었고, 선재의 딸은 ‘조랑말 그네’를 씽씽 타고 놀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조랑말 그네’의 나뭇조각은 선재 딸의 조그만 발바닥으로부터 전해오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재네가 어디로 이사를 가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날씨가 추워서 옴싹 달싹도 안하는 것일까?”
“아니야, 선재의 딸을 기다리는 게 부질없는 일인지도 몰라. 이젠 나도 이 조랑말 그네에서 내릴 때가 됐는지도 몰라. 수위 아저씨 말씀처럼 아이들이 다쳐서는 안되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 몸도 늙고 병들어 있구나. 한때는 마을 아이들이 죄다 내 품안에서 더위를 식히며 땅따 먹기를 하고 놀 만큼 큰 나무였었는데….”
나뭇조각의 탄식은 사실이었다. 나뭇조각의 고향은 경상북도 어느 바닷가 마을-. 그는 그곳에서 푸른 가지를 치렁치렁 늘어뜨리며.
살다가 눈빛이 많은 어느 노승과 마주치면서 그의 삶이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운명이란 만남의 인연에 의해서 바뀐다는 생의 진리가 그에게도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노승은 부처님을 모시고자 법당의 기둥감을 찾고 다니던 중이었다.
“아, 이 나무라면 훌륭해. 어서 주인에게 시주를 받아 반질반질하게 잘 다듬어서 부처님을 잘 모셔야지.”
나무는 곧 수십 개의 기둥과 나뭇조각들로 다듬어졌다. 물론 하루 이틀에 끝날 만큼 간단하고 쉬운 일거리는 아니었다. 어찌나 큰 나무였던지 세 사람의 목공이 보름 동안이나 땀을 빨빨 흘리며 일을 했던 것이다. 그때, 나뭇조각은 귀가 번쩍 트이는 이야기를 늙은 목공으로부터 들었다.
노승은 나이 어린 목공에게 먼저 묻고 있었다.
“젊은이, 목공이란 직업이 힘들지 않소?”
“힘들지 않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부모님이 시키니 별 수 없이 하고 있어야죠.”
중년의 목공도 나이 어린 사람의 대답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니 귀찮고 싫어도 할 수밖에요 이렇게 더운 날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님.”
말하자면 그는 식구들의 양식을 마련하고자 억지로 일을 하는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노승은 늙은 목공한테도 똑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스님, 저는 기쁨을 느끼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듬고 있는 이 기둥들과 나무들에 의해서 훌륭한 법당이 지어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일 뿐, 조금도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법당이 지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법당에서 마음의 평화와 자비를 얻어간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이 깨끗하지 못한 손과 빼어나지 못한 재주로 나뭇조각들을 만지고 있다는 게 두려울 뿐입니다. 스님.”
그때 나뭇조각은 그늘에서 젖은 몸을 말리며 슬쩍슬쩍 졸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늙은 목공의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기쁨은 남을 위해 희생을 베풀 때 깃드는 것일거야. 오늘 이 순간부터는 고향을 떠난다고 슬프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사람들이 지혜를 얻어가는, 법당의 한 부분이 되는 나의 삶이 새로이 시작되는데 무엇이 두렵고 슬프랴.”
그래서 나뭇조각은 늙은 목공의 말을 보석처럼 가슴 속에 간직했다. 그날부터 ‘남을 위하는 삶’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노승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 객사를 하고 만 것이다. 전라도 광주로 설법을 나갔다가 군인들의 총을 맞고 두 눈을 부릅뜬채 객사를 한 것이다. 할 수 없이 기둥들과 나뭇조각들은 법당이 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지금의 ‘조랑말 그네’의 나뭇조각도 용달차에 실려 남대문 리어카 공장까지 왔다.
리어카 짐칸의 재료로 쓰이기 위해서였다.
“아, 이 고약한 냄새들.”
함께 실려온 나뭇조각들이 맨 먼저 느낀 것은 한결같이 고약한 서울의 냄새였다. 며칠 후, 나뭇조각들은 또다시 리어카의 한 부분이 되어 동녘 국민학교로 옮겨졌다. 그리고 또 일년 후, 리어카 짐칸 바닥이 쇠판으로 바뀌면서, 나뭇조각들 중에서 가장 튼튼한 조각이 ‘조랑말 그네’를 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조랑말 그네’의 나뭇조각도 늙고 병들어 그네에서 내려와야 할 운명인 것이다. 나뭇조각은 귀를 종끗 세웠다.
수위 아저씨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손에는 고무판과 연장이 들려져 있었다.
그래도 나뭇조각은 절망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보았던 그 늙은 목공을 떠올리면서 기도를 했다.
“이 학교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이제 제 몸이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마지막으로 제가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도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수위 아저씨가 ‘조랑말 그네’에서 그를 떼어냈다.
“아마도 그네의 나무 발판은 네가 마지막일거야. 잘 가라.”
그날 밤은 아주 추웠다. 수위 아저씨는 문득 무엇이 생각난 듯 밖으로 나와 그 나뭇조각을 찾았다. 미지근한 조개탄 난로에 그 나뭇조각올 넣어 온도를 올리고 싶어서였다.
쓰레기통 속에서 떨고 있던 나뭇조각은 곧 난로 속으로 던져졌다. 그러자 나뭇조각은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진 듯 연꽃 같은 불길을 그리며 활활 타올랐다.
나뭇조각은 기쁘게 자신의 온기를 수위 아저씨한테 힘껏 뿌려주며 그의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