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신문 한 장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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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1999년 10월 212호
미영이가 방학의 한 보름 간을 잘 견디다 갔다. 밥도 잘하지 못하는 어린 것이 신통하게도 날마다책 읽고 차 마시다 때 되면 함께 밥 챙겨 먹고, 반복되는 생활에 지겨울 법도 한데 지루해 하지도 고 잘 견뎠다. 하긴 그 더운 날 세속을 벗어나 산골에 묻혀, 계곡에 발 담그며 여름을 잊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더구나 여기는 전기나 전화도 들어오지 못해 이 시대로는 완전히 속세를 벗어났다 할 수 있는 곳. 이러한 형편이 아이들로서는 더 견디기 어렵고 심심하고 그러했을 터인데도.
여기는 정말로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못했다. 넣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거리가 너무 멀어 그런 시설을 하려면 막대한 비용어 들기 때문이다. 지극히 필요한 때만 발전기를 잠깐 쓸 뿐 나머지는 전부 원시적인 생활이다.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없이도 곧잘 살아진다. 전기가 없으니,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또한 신문마저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산다.
그래도 궁금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것이 없음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편안한지 서해에서 북한군과 교전이 있었고, 대도 신창원이 잡혔고 하는 이야기도 한참이나 지난 뒤 오는 사람들이 들려 줘 그랬는갑다 할 따름.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진다.
저녁이면 촛불을 밝히고 앉아 차도 마시고 책을 읽기도 한다. 전깃불에 비하면 좀 어둡지만 눈도 편안하고 머리도 심란하지 않아 집중력이 생겨 의식도 복잡하지 않아 좋다. 다 괜찮다. 실제 사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게 사는데,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들갑 떨고 야단이다. 이런 골짜기에서 불편하여 어떻게 사느냐고. 저저금 당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 간다. 아무리 옹색하고 어려워도 살면 방도가 있다. 지금 세상은 최고로 발달한 최첨단 문명의 홍수 속에 산다. 사람이 뭔가를 생각하며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모두가 시간과 육체의 수고를 돈으로 환산하여 빠른 길과 계산적으로 남는 쪽으로만 가려고 한다. 생활 속에서도 거계가 대신하고,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살려는지. 또 무슨 재미로 실려는 건지.
처음 이 곳에 와서 걱정스레하던 이도 하룻밤 지내 보면 재미있어 한다. 사방은 어둠에 싸이고 오직 방 안에는 촛불 몇 자루. 마주보고 앉아 있어도 겨우 얼굴만 알아볼 정도다. 모처럼 이런 원시적인 운치가 하루쯤은 즐거웁다
할 것이다. 오래 기면 어떨지 몰라도. 그러나 오래 살아 보아도 좋다. 여겨도 처음부터 문명의 편리함을 다 안 가지려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상황이 그리 되었고, 그리 된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삼으니 살만 하다는 것이지 일부러 즐겨 이렇게 사는 건 결코 아니다.
여름에는 음식이 쉽게 변해 참 애를 먹었다.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버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 보는데, 금방금방 변해 나가는 것이 의외로 많다. 시물施物을 허술하게 대하는 마음은 절대 아닌데 궁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로 인해 쌓일 또 다른 죄업이 문명을 거부한 대가일까 싶기도 하다.
이래저래 고민은 또 생기고. 여름내 미영이와 둘이서 이리도 해 보고 저리도 해 보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릴 뿐. 한 달에 한번은 읍내에 나간다. 「해인」지에 보내는 원고를 써 들고 읍내에 있는 ㅈ거사네 사무실에 들러 원고를 전송한다. 그런 뒤 내려온 김에 눈총을 받아가며 지인知A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도 떨고 오랜만의 안부도 묻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문명을 아주 거부하며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누구와도 상관하지 않고 혼자만 살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지막까지 남겨져야 할 인정이 다치지 않을 만큼만 누릴 일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아직은 아무 것 없어도 그대로 살 만하다. 괜찮다.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