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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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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1년 05월 111호
ㄱ. 이야기의 줄거리
법사품의 설법이 끝났올 때,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칠보탑이 땅에서 솟아올라 허공 높이 걸리고, 탑으로부터 ‘좋고 좋도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설하심이 모두 진실 하시도다.’ 라는 큰 음성이 들려 왔다.
하도 불가사의한 일이라 모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대요설보살이 어찌 된 일이냐고 부처님께 여쭙자, 저것은 먼 과거세의 부처님인 다보불의 전신을 모신 사리탑인데, 생전에 세우신 서원을 따라 「법화경」이 설헤지는 곳이면 언제나 나타나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시게 되어 있어, 그러기에 지금도 출현하신 젓이라는 설명이셨다.
그래서 대요설보살이 그 부처님을 뵙게 해 달라 요청하니, 후세의 부처님들이 다보불을 대중에게 보이려 할 때에는 자신의 분신불들을 한 곳에 모아놓아야 한다 함이 다보불의 서원이섬을 밝히신 부처님께서는,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사 시방에 산재해 계신 분신불들을 소집하시는데, 그 수효가 너무 엄청나 사바세계를 정토로 바꾸시는 것만으로는 다 수용하실 수 없는 까닭에 팔방 각각 이백만억 나유타의 세계를 두 번에 걸쳐 정토로 바꾸시니 이것이 삼변토전이다.
이리하여 분실불이 모두 모이심올 확인한 부처님께서는 허공에 오르사 다보탑의 문을-여시니 빗장을 벗걱 큰 성문을 여는 듯한 소리가 나고, 전신이 아니 흩어져 미이라 모양을 하신 다보불이 보탑 안에 앉아 계신 모습이 환히 들어 왔다. 그리고 다보불이 내어 주시는 자리에 석가여래께서 앉으시니, 이에 대중들은 과거불 ·현재불이 나란히 앉아 계심을 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석가여래께서는 신통력으로 대중들을 허공에 머물게 하시고, 이리 선언하신다.
“뉘 능히 이 사바의 국토에서 「법화경」을 널리 설 할 것이랴. 지금이 바로 그때로다. 여래 오래 잖아 열반 들리니, 부처이 「법화경」을 위촉할 데 있었으면 하노라.」
이것이 이야기의 대체적인 줄거리거니와, 경의 서술에 의거하면서 여기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검토해보자.

ㄴ. 다보불의 정체
우리에게 있어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다보불의 정체요, 그 다음으로는 다보불이 석가·여래와 어떻게 관계되느냐 하는 점과, 나아가서는 그것이 「법화경」에서 차지하는 뭇이 구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먼저 그 부처님이 들어 계셨다는 보탑의 기술부터 살펴보자.
‘그때 불전(佛前)에 칠보의 탑-높이 오백 유순(由句)이요 가로 세로 이백오십 유순이나 되는 것이 땅에서 솟아나와 공중에 머무르니, 갖가지 보물로 치장되고, 오천의 난간이요 감실이 천만이라. 무수한 당번 세워 이를 꾸미고, 보배로 된 영락을 드리우고, 만억의 보배방울 그 위에 걸었는데, 사면에서 다 다마라발과 전단의 향이 나서 세계 메우며, 그 모든 번개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진주 ·매괴의 철보로 만들어져 높이 사천왕의 궁전에 닿았거늘· 유순은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여서 40리에 해당한다고 보면, 2만 리의 높이에 1만 21명방의 거대한 탑이 땅에서 솟아 올라, 사천왕의 궁전 가까운 까마득한 허공에 떠 있는 것이 된다. 아무리 상상력에 한계가 없는 것이 인도 사람들의 특성이라 해도,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져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어서, 그 탑으로부터는 「법화경」의 진리임을 증명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느니, 그 옆의 주인공이신 다보불을 대중에게 보이기 위해 석가·여래께서는 무수에 가까운 분신불을 소집하셨다느니, 탑문을 열자 미이라가 되신 다보불이 앉아 계셨다느니 하고 있으 공로, 그저 눈앞이 아찔해 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다보불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떤 서구학자는 이를 천체신화라 보아, 여기에 등장하는 석가여래는 태양의 상징이요 무수겸 전에 멸도하셨다는 다보불은 달을 말함이라고 해석했다. 하기는 칠보로 된 거대한 탑이 허공에 걸려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시방세계에 흩어져 있던 무수한 분신불이 시자 하나씩을 거느리고 모여드신 것은 밤하늘을 꽉 메우고 있는 별들의 출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점에서, 그렇게 해석될 여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경의 내용인 것이다. 불경에 등장하는 바에는 그것이 아무리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실존, 우리들의 마음의 상황과 유리돼 있을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불경의 기술은 어디까지나 불교적인 각도에서 접근함이 정도인 것이어서, 다보불은 법신불을 가리킨다는 천태대사의 해석이 타당하고, 또 그런 증거는 도처에 나타나 있다.

ㄷ. 법신불과 보신불·용신불
먼저 탑만 해도 그렇다. 그것이 칠보로 이루어졌음은 실상(實相)이 칠각지 ·철성재(七聖財)를 보배로 삼고 있음을 나타내니, 실상은 법신의 의지처다. 그것이 땅에서 나와 허공에 머무른다 함은 무명(無明)의 심지(心地)가 깨짐으로써 공의 세계가 열린것이니, 법신이 무소주(離住)의 공 말고 그 어디에 머무르시겠는가. 갖가지 보물이란 여러 선정과 지혜로 장엄함이요, 난간이란 다라니요, 감실이 천만이란 무량한 자비요 영락을 드리운 윤차십지의 공덕으로 장엄함이요 보배의 방울은 사무에변으로 교화합이요 사면에서 향이 남은 사제(四調)의 바람에 사덕(四德)의 향기가 풍겨남이요 높이 사천왕의 궁전에 닿았음은 사제의 진리를 다해 그 궁극에 이르렀음을 뜻하니, 모두가 법신에 갖추어진 덕 아님이 없다.
그리고 법신은 절대척 진리 자체여서 용(用)이 없기에 보탑 속에 들어 계실 수밖에 없겠으나, 그러면서도 용이 없지도 않으시기에 어느 부처님에 의해「법화경」이 설해질 때는 거기에 나타나 그것의 진리임을 증명도 하시는 것이니, 용이 없다 합은 법신불 자신은 법을 설하지 못 하심을 이르는 것이 되고, 용이 있어 증명하신다 함은 여러 부처님의 「법화경」 설법이 법신불의 처지에서는 바로 자신의 용에 해당함이 되시는 까닭이다.
무릇 법신불(진리)에 의지하지 않는 성불이란 있을 수 없고, 성불하신 바에는 보신불로서 무수한 응신을 드리우사 도처에서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시는 부처님도 있을 수 없으니, 법신불은 보신불에 의해 인격화되시고, 보신불은 웅신불을 통해 구체적인 불사를 지으시는 것이어서, 이 삼신(三身)은 곧 일신(一身)이시요 일신은 곧 삼신이실 따름이다. 그러기에 분신불을 모아 들여 보신불의 자격에 서실 때만 법신불이 좌정해 계신 다보탑의 문을 열으실 수 있었던 것이며, 미이라 같은 법신불의 처지에서는 보신불과 자리를 나누어 하나가 되시는 것에 의해서만 부처로서의 용을 발휘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라 여겨진다.
이는 결국 다보불과 하나가 되신 석기여래가 영원한 부처님이시며, 그 같은 부처님의 최고의 법이 「법화경」엄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뒤 능히 이 사바의 국토에서 「법화경」을 널리 설한 것이랴.”고 하신 말씀도, 이 같은 부처님의 참뜻을 이해한 견지에서 「법화경」의 홍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일깨우신 것이라 할 것이다.

ㄹ. 앞을 증명하고 뒤를 일으킴.
이렇게 석가여래가 영구한 부처님이신 사실이 드러났다 해도 그것은 시사되는 데 그치고, 당장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엄청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연달아 벌어지는 바람에 넋을 잃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런 중에서 그들이 의식했건 못했건 삼변토전의 절차까지 거쳐야 했던 분신불들의 운집은 놀라운 일이어서, 그들의 무의식의 심층에 지우지 못할 인상을 남겼을 것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그리나 많은 분신불은 역사적 불타만을 부처님의 전부로 알고 있는 처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 쪽에서는 이것이 뒤의 수량품에서 자신의 영원한 부처이심을 밝히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셨던 것이니, 불신(佛身)에 대한 의혹이 커짐을 기다려 부처님의 본색을 드러내시려 하는 세심한 배려였다 할 수 있다.
이리하여 큰 안목으로 볼 때 이 견보탑품의 두드러진 성격은 둘이라 할 수 있으니, 하나는 진작 보아왔듯 법신이신 다보불이 나타나사 석존이 이제껏 설하시는 「법화경」을 진실한 법이라 증명하심이요 다른 하나는 무수한 분신불을 등장시킴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의혹을 싹틔워 이것을 뒤의 수량품에서 자신이 영구한 불타이심을 설하시는 토대가 되게 하신 일이니, 이것이 앞의 것을 증명하고 뒤의 것을 일으키는 중전기후다.
그리고 불국사의 다보탑·석가탑의 근거가 이 견보 탑품에 있을 것은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