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부처님 오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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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문종남
1991년 05월 111호
머지 않아 우리는 또 다시 부처님 오신날을 맞는다. 이 날은 ‘온 우주의 스승으로 오신 분’, ‘진리의 광명으로 오신 분’, ‘중생을 고(苦)로부터 구제코자 오신 구제자’라 해서 부처님이 오신 뜻을 기리며 경축하는 불가의 명절 중에도 으뜸 명절인 날이다.
그래서 사찰 혹은 각 신행단체에선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 알 수 없는 끄달림 같은 것으로 시작된 나의 불교입문 당시만 해도 초파일은 어릴 때의 명절을 맞는 것처럼 잔뜩 들뜨게 했다.
서울 중심부의 큰 절을 물어 물어 찾아 청년회에 가입한 후 나의 신행활동은 제법 분주했는데, 특히 초파일을 맞는 이맘때쯤 이면 청년회 특유의 완벽한(?) 계획 하에 바삐 움직였던 것 같다. 한달 전부터 틈만나면 청년회 사무실이나 회관에 모여 연잎을 비비고 말며 불이기에 지칠 줄 몰라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당일에는 대부분 회원들이 정장을 하거나 한복을 차려 입고 행사진행에 나섰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가두에 나서 종각 사거리의 오고자는 행인들에게 리본 달아주기 활 때의 희비 얽힌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기억에 생생하다.
합장하며 고마워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불교신자요 알레르기 반응으로 노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은 이교도요, 그저 그런 빗빗한 태도로 거부도 반기지도 않는 이들은 비신자들이었다.
대인과의 접촉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한 내가 그때는 무슨 용기가 그리도 솟아나 즐겨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불교인으로서의 자부심 내지 긍지심 보다는 청년회 소속원으로서 의무감 같은 것이 더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느 때는 역할분담에 의해 후원일을 맡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안내요원이 되어 분주히 움직인 다음 오후엔 여의도 제등 행렬에 참석하여 늦게서야 귀가하곤 하였다. 몸은 피곤해도 즐거운 마음이었던 것은 신앙의 대상이 된 아기 부처님이 오신 기쁜 날인 때문이었으리라.
근래 들어선 어찌 어찌 살다 보니 예전의 열성적인 모습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지 못하지만 봉축하는 마음은 훨씬 깊다. 새해 첫 달력을 펼칠 때면 으레이 우선적으로 헤아려 보는 날짜 중 하나가 되었고, 어린시절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보다도 큰 명절로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벌써부터 거리를 수놓은 오색등과 봉축을 알리는 각종 홍보물에도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마침내 그 분이 오신 날을 또 맞는구나’하는 설레임.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봉축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외형적인 봉축형태를 논함이 아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불교신자나 스님들의 의식의 변함이다. 자체적인 행사에 치중하기 보다 대사회적인 외부로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이다.
연말이면 약속이나 한 듯 쏟아지기 시작한 불우이웃 돕기 등의 자선업들이 잠깐 피었다 지는 꽃처럼 일어났다 사그러지는 풍토였는데, 다행히도 근래 들어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하여 각 사찰과 신행단체에서 활발히 행해지고 있는 사실이다.
몇 해전 초파일 날 받았던 감명은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청년회 소속 사찰에서 어느 정도 일을 마친 후 오후 늦게서야 변두리 작은 포교당을 찾은 적이 있다. 전부터 가끔 찾아 뵙던 스님이 계신 곳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던 것인데 뭇밖에 감명을 받은 것이다. 대부분 사찰에선 봉축법요식을 사시에 행한다. 그런데 그곳에선 오후 늦은 시간에 스님의 법문이 있다고 신도들이 자리정돈을 하며 때아닌 법회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어본 즉, 스님은 전날부터 준비하여 아침 일찍 몇몇 신도와 함께 어느 고아원을 다녀오신 길이라고 하신다. 법당에 특별히 연등을 만들어 걸지도 않았고 중심부에 조그마한 모양의 탑등을 만들어 각자 소원을 적어 붙이게 한 것이 고작인 포교당.
스님은 부처님 오신날이라 해서 다른 날보다 바쁘고 거창하게 봉축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으셨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들려주시길, 이런 날일수록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불우이웃을 찾아가 위로해 주는 일이 진정 부처님 오신 날을 보람되게 맞는 일이며 부처님 제자 된 도리라고 하셨다. 물론 스님의 뜻을 따르는 신도도 적지 않았지만 일부에선 그래도 특별한 날이니 기념법회를 열어야 하지 않느냐는 성화에 늦게서야 법석을 마련한 참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왔다며 해맑게 웃으시던 스님 모습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일도 막상 실천부터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선행의 진가는 묵묵한 실천에서 빛남을 안다면 말부터 내세울 일이 아닐진대 실제행하질 못한다. 그래도 지금쯤 어딘가에선 연꽃잎을 펴듯 말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보살들이 많을 터이다.
시각장애자인 무의탁 할머니를 때때로 찾아 뵙고 살펴 드린다는 산중의 어느 스님 이야기며, 일요일마다 고아원을 찾아 빨래도 해주고 놀아준다는 청년 불자들의 이야기. 그들은 불제자로 부처님과 뜻을 따르고자 어둠 속에서 자비의 빛을 밝히고 있다. 그들에겐 사월 초파일만이 특별한 날이 아니요, 나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겠는가.
의외로 작은 정성에 감동해 하고, 기뻐하며, 소홀함에 서운해 하는 것이 우리네 중생의 마음이다. 정성껏 비비고 말아 팔각철지에 연꽃잎을 불이듯, 이왕이면 마음을 모두 기쁨을 나누어 갖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부처님 오신날이라 해서 외형적인 봉축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그렇듯 누누히 설파하신 자비 보살행을 실천함이 진정 이날을 봉축하는 자세가 아닐 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