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한국에서도 가장 공기오염이 심한 지역이고 악명이 높은 울산하고도 온산이다.
내가 어린 날을 보내던 50년대의 온 산은 오늘날처럼 그렇게 공기오염으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환경이 나쁜 지역이 아니었다.
봄이 오면 해인가에 접한 보리밭 이랑으로 봄바람이 불어오고, 배꽃은 그 청정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꽃사태를 이루는데 특히 달 밝은 밤이면 달빛에 아롱지던 배곷밭…어떤 사람들은 달밤과 메밀꽃을 이야기하지만 달빛에 아롱지던 배꽃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가슴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가인 이조년은 그 시조에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라고 읊었지만 내 고향 온산처럼 사무쳤을까, 그 아름다움이
태화강은 마주치는 울산 앞바다의 은물결과 갈밭사이로 흩어지던 작은 게를 잡던 그런 평화롭던 시절과 고향 언덕은 사라지고, 굴뚝마다 연기와 견딜 수 없는 악취로 넘쳐 나고 있으니, 내 자라나던 온산만 생각하면 추억과 함께 우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산이 요 최근래 생겨난 신흥 도시쯤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울산은 고도 가운데에서도 옛도시이다.
신라 때부터 울산은 신라의 중요한 포구(浦口)로 개운포로 불리었고, 처용의 전설과 함께 얽혀있는 망해사나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동축사, 운홍사 등 오늘날 고도의 풍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진주보다도 더 오래된 도시이다.
최근래 ‘현대’를 비롯한 여러 공업체가 울산에 자리잡고 난 이후 공업화됨으로써 울산은 옛도시가 아니라 갑자기 생겨난 신생도시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사실은 옛 정취가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그리고 울산 지역으로 갯가라서 사람들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기는 하지만 순박하고 인심 좋은 고장이다.
대체로 엣부터 갯가에는 딴 지역보다 당집이 많고 절 또한 많이 있어서 딴 때에는 모르지만 이맘 때 사월초파일이면 으레껏 어머니를 따라 동축사나 백양사엘 갔던 기억이 새롭다.
길섶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철쭉을 따기도 했고, 다람쥐를 쫓기도 했던 절 길은 왜 그렇게 멀던지. 어머니와 그늘에서 몇 차례나 쉬면서도 언제나 따라 나섰던 기억이 새롭기만 한다.
대개 옛 아낙네들이 그랬듯이 어머니 역시 순종적인 여인네였다. 온종일 들것에 지치고, 가사일에 지치고, 오늘날과 같이 부엌의 현대식이었다. 냉장고가 있었나. 섶불을 때면 때면 연기는 얼마나 나고 눈은 얼마나 매웠는가? 그리고 빨래 손질이랑 아이들 시중은 얼마인가? 지금 가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고생에 눈물이 절로 난다.
그러나 불명 한마디 없이 여자의 일이거니, 으레 그 당시 여자의 삶은 그랬으니 인고와 순종의 모습에 서 그 뒤에 보살이란 딴 것이 아니라 바로 한없이 주기만 했던 어머니가 곧 관세음보살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어머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내 고향 온산도 옛 같지가 않다. 또한 나도 그곳을 떠나 옛 추억만 간직한 채로다.
최근래 공해문제가 대서 특필되고, 낙동강오염 사건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오염하면 언제나 빼놓지 않고 내 고향 온산이 비쳐진다. 호흡 곤란과 역한 공기, 그리고 죽어버린 물과 바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자기가 태어난 곳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법인데 요 며칠 사이 꿈속에서도 내 자라나던 옛 온산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머니도 이러한 고향과 어머니의 이미지를 나는 요즘은 내가 가끔 가곤 하는 통도사 부근에서 찾는다.
송림 숲으로 뒤덮인 숲길을 걸으면서 고향의 추억을 되살리고, 법당에 엎드려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어머니가 내게 주셨던 무한한 사량을 되찾는다. 이제 그 원천적 인식인 고향과 어머니는 모두 내가 되찾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절실하기만 하다.
그러나 최근래 통도사를 다녀오면서 한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양산공단의 확장과 통도사 입구의 거대한 아파트 촌과 상개 언양 부근의 공장지대 등이 또 나의 정신적 지주인 통도사의 환경을 부수어 버리지나 않을까 저으기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들이 도처에서 경험하는 일이다. 자연은 곧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며 우리들뿐 아니라 지상의 생명들이 돌아가야 할 단 하나의 의지 처이며 우리 앞에 펼쳐진 자비의 품안이다.
올해도 ‘부처님 오신날’이 한달 쯤 남았다. 나는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어머니의 명복과 함께 내 고향 온산이 보다 좋은 지역이 되기를 기원 드리겠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자연을 보호하기로 다짐해야겠다. 오염의 원인 가운데에서 가정 하수가 큰 비중을 차지 한다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자연보호 운동을 작지만 펄쳐 나가야겠다고 부처님께 발원해야겠다.
부처님은 이 땅의 중생에게 영원한 안락과 평화와 자비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 안락과 평화와 자비도 우리들의 마음과 행위 속에서 재창조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우리 스스로 부처님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헤아려 참으로 지혜 있는 불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