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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건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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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바라봅시다 - 이죽내 2001년 04월 230호
인간의 최고 가치는 아마도 건강일 것이다. 건강하지 않고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고,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신체가 있다’는 격언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 격언은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은 불가분적임을 말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건강을 위해서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함께 돌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대체로 신체건강 일변도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런 경향에 편승해 근년 들어 건강식품이 인기 속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들 한다. 더더구나 정력에 좋다 하여 들짐승이나 산짐승들을 무분별하게 잡아먹고, 그것도 부족하여 해외로 보신관광까지 하는 유별난 사람들도 있다. 건강은 ‘균형’과 ‘조화’에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균형과 조화를 결여한 사람들이다. 자연과 인간, 정신과 신체의 균형과 조화가 결여되어 있고, 섭식攝食생활에서도 그렇다. 섭식생활의 경우, 건강한 섭식은 골고루 음식을 먹어 고른 영양을 취하는 것이다. 고른 영양섭취는 우리가 평상시 먹는 음식 즉 평상식平常食에서 취할 수 있다. 평상식을 하는 사람들은 평상심平常心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마음이 평상한 사람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 전반이 평상하다. 그런 사람들은 평상한 생활습관 속에 살아간다. 예를 들면, 적절한 운동을 생활 속에서 한다. 운동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닌, 생활을 운동과 연결시킨다. 이를테면, 걸어 다니는 습관 같은 것이다. 출퇴근도 가능하면 걸어 다니고, 직장 내에서도 가능한 한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걷는다. 이런 생활습관은 자신의 건강에도 좋고 에너지 절약도 되고 환경보존에도 좋다. 또한 기계적 삶에서 잠시라도 해방되어 좋다.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게 기계가 펼치는 질서 속에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거의 모두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여하간 현대인은 여러 면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 스트레스가 각종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위궤양, 두통, 고혈압, 당뇨병, 갑상선 기능 항진증, 신경성 피부염 등이 그 흔한 예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을 잘 관리하면 그런 스트레스는 지혜롭게 극복될 수 있다. 누구나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누가 밀어닥친 정보화 시대를 바꿀 수 있겠는가. 싫든 좋든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는 사회와 시대로부터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여건을 나 자신에 맞게 잘 활용하는 일이다. 스트레스도 사람에 따라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와 그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관리하는 자신에 대한 의식과 자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주인의식主人意識 같은 것이다. 주인의식이 없을 때 모든 세상사에 끌려서 살게 된다. 주인의식이 없을 때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도 생활할 수도 없다. 그저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맹목적으로 순응할 뿐이다. 이끌려 사는 삶, 맹목적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스트레스로 느껴진다. 말하자면, 제 정신이 없을 때 스트레스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제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에 적어도 20~30분 정도라도 조용히 앉아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자문하고 명상하는 시간 말이다. 그러할 때 세계를 깨어 있는 생각과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무슨 일이나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일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그 결과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깨어 있는 삶이라야 일에 쫓기지 않고, 일을 쫓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러기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남들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현대인들은 시시콜콜한 세상 잡사雜事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 그러나 정작 알아야 할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그것이 현대인의 정신적 빈곤이요. 정신적 불건강이다. 정신적 빈곤감을 물질로 채우려고 하니 물질욕에 부추겨질 수밖에 없다. 물질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물질로써 해결되는 것도 많다. 그러나 건강은 물질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물질만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병적이고 병을 만든다. 인간은 기계나 사물과는 다르다. 기계나 사물은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항상 정신과 연관되어 있고, 그 문제의 해결에는 정신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적 고통도 따른다. 물리적 사고와 편의주의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은 그런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고통은 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통을 만들 뿐이다. 고통과 직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지혜로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병뿐 아니라 그 환자의 삶을 눈여겨 본다. 병은 그 환자의 전체적인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의 진단에 앞서 삶을 진단한다. 환자들 가운데는 삶의 진단과 삶의 처방으로 치료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생활습관이나 생활태도가 잘못되어 병이 난 경우이다. 예를 들면, 음주습관을 바로잡아 절제된 삶을 유지하면 건강할 수 있는 것 등이다. 음주습관을 바로잡고 절제된 삶을 사는 것은 환자 스스로의 의지로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물론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고통없이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그 고통은 인간을 성숙으로 이끄는 필요한 고통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존재(homo patiens)이다. 현대인의 편의주의적 사고는 자신의 건강을 의학이나 의사에게 맡기는 의존적 태도를 강화시켜 왔다. 이것은 현대인의 물질지향적 가치관과 물리적 사고와도 맞물려 있다. 현대인은 건강에 유별난 관심을 가지면서도 건강하게 사는 태도는 결여되어 있다. 건강하게 사는 태도란 일상의 삶 속에서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는 태도이다. 자신의 ‘삶’이 건강한가를 반성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가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지켜가는 태도이다. 건강을 지키는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자기자신이다. 치유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자기자신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자신의 치유능력이 있다. 의사는 다만 환자 자신의 치유능력이 잘 발휘되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21세기에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길은 일차적으로 지금까지 소외된 자신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정신을 차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지향적 가치관과 물리적 사고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더 많이 ‘존재’하는 정신적 삶을 이끌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 건강관의 지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