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초파일날 연등에 불을 켜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박희준 1991년 05월 111호
어머니는 절에 가기 며칠 전부터 절에 가는 준비를 하신다. 목욕을 하시고 향과 쌀을 보따리에 따로 싸서 놓고, 아침은 비린 내가 나지 않는 음식을 준비하신다. 절에 가시는 날에는 동치미 국물이나 물김치로 서둘러 아침상을 물린 다음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얘야, 깨끗한 편지봉투 하나 없니?”
어머니가 나에게 봉투를 달라고 하실 때는 대체로 결혼식이나 경사가 있는 날 아니면 조문을 가실 때, 그리고 절에 가실 때이다. 결혼식이나 조문을 가실때의 편지 봉투에는 반드시 어머니는 볼펜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어머니의 이름 석자나, 큰 누이의 이름 아래 어미 묘자를 적어 넣으신다. 남들이 분명히 알아보게 하기 위한 배려이시다. 언젠가 한번은 붓글씨 흉내를 조금 내는 나에게 어머니는 편지봉투 한 장을 써달라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글씨 자랑을 하고싶은 마음에서였는지 모르지만 흘러가는 행서로 봉투를 썼다. 그러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글씨는 남이 알아보게 써야 한다.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쓰면 누가 누구인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알겠니?”
그러나 절에 가시는 날에는 집안 청소부터 하시고 염주가 들어있는 보따리를 몇 번이나 챙기신다
“얘야 깨끗한 편지봉투 하나 없니?”이 말씀을 마치셔야지 어머니의 절에 가는 준비는 비로소 끝난다. 그땐 나는 편지봉투에 종이돈 한 장을 넣는다.
“이건 네 것이고 다른 봉투 하나 더 다오”어머니는 절에 가서 어머니의 절과 내가 하여야 할 절을 대신 하신다. 내가 다시 드린 다른 봉투에는 어머니의 용돈에서 푼푼이 모은 톤이 들어갈 것이지만, 그 돈이 얼마인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요사이 어머니는 나에게 “얘야 깨끗한 편지 봉투 하나 없니 ?”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보살님들의 신도회에 들어가셔서 한동안 보살님들과 어울려 절 일에 열심이시던 어머니가 말수도 적어지시고 즐겨하시던 노스님 친견 이야기도 하지 않으신다. 처음에 나는 무심코 넘기다가 절에서 오는 기도 안내문도 뜯어보지 않고 쌓아 두시는 어머니를 보고 웬지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언 짧은 표정을 지으신다. 그래서 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절에서 무슨 일이 잇으셨죠?”
“얘야, 아무 말도 마라. 복잡한 속 부처님 뵙고 나면 좀 편해질까 해서 절에 가서 절을 하는데, 절에 가면 속이 더 복잡해진다.”
절에 가면 속이 더 복잡해진다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가 절에서 같이 지내시는 보살님들과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말문이 한번 터지자 어머니는 시종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이으신다.
“절에 가면 큰보살·중보살·소보살이 있다. 큰보살은 앞자리에 앉고 중보살은 뒷자리에 앉고 소보살은 그 뒷자리에 앉는다. 이 어미는 큰보살·중보살·소보살이 못되어 대웅전 밖에 밀려나서 노스님 법문을 들었지만, 부처님 뵙고 노스님 법문 듣는 것으로도 환희심이 일어났다. 참선공부도 해보려고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잘 되지 않아 그저 엉뚱한 욕심 내지 않고 남에게 죄 안 짓고 너희들 부처님께서 잘 보살펴 달라고 부처님께 절했다. 그런데 절에 가면 부처님께 절하고 노스님 법문 들으면서 참선하는 일보다, 큰보살·중보살·소보살은 누가 시주를 얼마나 하였는지, 누가 무엇을 시주하였는지에 더 관심이 많단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라시던 부처님 말씀을 실행하기보다는, 누가 시주를 얼마 하였는지에 관심이 더 많은 그런 보살님 들하고는 나하고 인연이 없나 보다. 그래서 요새는 절에 사람 모이는 일이 있을 때 가지 않고, 마음 울적할 때 절에 간다.”
이렇게 말씀을 마치신 어머니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 말씀을 듣고 난 나도 어머니의 쓸쓸함이 전해졌는지 어딘가 허전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즐겨 나와 함께 절에 가셨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즐겨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갔었다. 대학시절부터는 어머니와 같이 다니는 것이 쑥스러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절에 다녔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절에 갔었던 일이 내가 절에 간 첫번째 일로 기억된다. 절 입구에서 죽 늘어서 있는 등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보니 울긋 불긋한 집 앞에 수많은 등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빨랫줄같이 쳐 놓은 철사줄에 등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세숫대야보다 큰 곳에 금빛 나는 아기부처님을 담궈 놓고 사람들이 물을 부어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나도 어머니와 함께 한 손가락을 하늘로 세우고 있는 아기부처님에게 물을 부어 목욕을 시켰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초에 불을 붙여서 등에 꽂고 몇 번이고 절을 하셨다. 어머니는 나네게 분홍빛 나는 고운 연등에 불을 켤 기회를 주셨다. 환한 연등을 보면서 나는 아침에 목욕을 시키던 아기부처님 생각이 나 싱긋 웃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 너도 좋으냐? 어서 합장해라. 이렇게”
이렇게 라고 말슴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나도 합장을 하였다. 자꾸 연등을 쳐다보면서 그때 그 기억으로 몇 년 전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초파일날 연등에 불을 켜다가
그 연등 속에 살고 있는
참한 아기 하나 보았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
나도 가만 웃어 주었다.

이번 초파일에는 절에서 마음 상하신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가고 싶다. 가서 어머니와 함께 연등에 불을 켜며 연등 속에 살고 있는 참한 아기에게 그 동안 안부를 묻고 싶다. 큰보살, 중보살, 소보살도 같이 그 환한 연등 아래 밝은 마음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