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끝나지 않은 방황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나의 행자시절 - 박원자 2001년 04월 230호
내 삶 속에 있어 ‘방황’은 숙명적인 것 같다. 철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것과 함께 있었던 느낌이다. 십 년 전쯤 티벳의 다람살라에 살 때도 미세하게 따라붙는 고뇌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라이 라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에겐 어떤 권위의식이나 인위적인 위엄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한 인간에게서 나는 사람을 저절로 순화시키는 ‘자연’을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그즈음의 내 마음의 흐름을 꿰뚫어보는듯 그랬다. ‘너 스스로 마음의 집을 삼고 의지처로 삼아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오랜 방황의 길에 한 점의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서 보았던 ‘담백’과 ‘솔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권위가 아니라 ‘자연’과 동의어인 바로 그런 것들이라는 걸 경험했던 만남이었다.
내 출가에의 여정은 고뇌와 방황의 연속이었다. 출가자의 첫 출발인 행자시절부터 그랬다. 이십대 중반 수덕사 원담 노스님 시자로 시작해 몇 군데를 거쳐 해인사에서 행자시절을 마칠 때까지도 사실은 끝없는 방황 속에 서 있었다. 돌아보면 출가자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었다. 자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나’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 길 없는 그런 혼란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절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피워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나아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이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때로는 스스로 못 견뎌 나오기도 했고 때로는 그 곳의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결국은 낙산사에서 행자로 있을 때 그 당시 종정스님인 고암 노스님께서 오셨다가 나를 데리고 건봉사로 간 것이 행자시절을 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오래고 깊은 방황 속에서도 불가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게 한 것은 ‘예불禮佛’이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내 정신을 올곧게 세웠던, 부처님을 우러르며 다시 서게 했던 그 장엄하고도 아름다웠던 예불이었던 것이다.
미명의 새벽,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절 마당을 지나고 법당에 앉아 은은히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은 끝없이 따뜻해져 왔고, ‘그래, 잘 살아야지’하는 그런 마음이 다져지곤 했다. 한겨울 새벽 예불 때 한기 서린 법당에 앉아 삭발한 머리를 손으로 만지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기쁨이 솟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한 생애는 이렇게 앉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녁 예불이 주는 감동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황혼에 물들어가는 산자락을 바라보는 일도 조촐한 즐거움이었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때론 장엄하게 때론 절절하게 울려 퍼지던 대중스님들의 부처님을 향한 서원이 담긴 예불은 묵은 내 업장을 녹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다. 예불 속에 녹아 있던 그 진지한 염원과 발원의 소리가 내 마음을 잡아 주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태초의 순수한 어떤 에너지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미명의 새벽예불 속에 있어 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혼이 정화되고 있음을 느낄 것이요, 그 완벽한 순수 에너지가 자신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예불은 철저히 하고 있다. 예불에서 얻은 공덕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의 그 숙명적인 방황은 예불이 인연의 끈은 놓지 않게 했지만 모든 것을 잠재워 주진 못했다. 해서 계를 받고도 나는 여전히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구름처럼 떠돌아 다녔다. 나라 안팎으로 많은 여행을 했다. 이 땅의 곳곳을 발로 걸어 다녔고, 인도 티벳, 이집트,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수십 개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행을 통해서 비로소 ‘나’와 만났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다녔던 수많은 유적지에서, 그리고 여행길에서 만난 이방인들의 삶 속에서 나는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보았다.
내게 여행은 곧 ‘비움’의 여정이었다. 끝없이 비우고 또 비우고 나니 드디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지여행을 주로 했다는 누군가가 그랬던가. ‘그 수많은 날들의 여행을 통해서 만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고.
나는 여행을 통해서 삶의 지혜와 에너지를 얻었고, 멀리 고통의 시간들과 방황의 날들을 에둘러 오면서 고통이 곧 해탈의 밑거름이라는 걸 알았다. 이해가 곧 사랑이라 했던가. 그러므로 이젠 지난 날 가졌던 그 방황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여행을 통해서 또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우리 문화유산의 전승 방식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집트 룩소에 갔을 때 일이다. 그 곳에서 ‘클레오파트라 나이트 쇼’를 보고 매우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밤에 야외에서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의 쇼로 보여 주었는데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국인에게도 감동적인 테마의 구성이 돋보였다.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고 흥미롭게 꾸민 그들의 기획력이나 구성은 유적지를 실제로 둘러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을 달리하게 해 주었다.
나라 밖 유적지를 다녀본 사람은 누구나 느낄 터이지만 우리는 우리 문화유적을 내보이는 데 매우 인색하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불국사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만 해도 밤에도 관람할 수 있도록 ‘나이트 쇼’를 기획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는 천년 고찰의 아름다움을 밤에도 관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행자들이 다른 곳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지 않고 절 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스 맥스 영화관을 만들어 절을 관람하기 전에 불국사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면 절을 보는 시각이 좀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의 경우도 일반 관광객은 물론 학생들이 수행여행을 많이 온다. 사찰을 둘러보기 전, 스크린으로 해인사 총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물론 선방이나 강원, 율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 포교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문화에 비하면 우리 것은 역사도 짧고 별로 내놓을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우리는 나름의 역사와 자연에 바탕한 특수성이 분명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을 그냥 전승해 내보일 게 아니라 새롭게 개선해서 우리 것을 찾는 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행자시절을 돌아보자니 자연스레 ‘예불’과 ‘여행’의 공덕을 들추게 되었다. 고백하자면 지명知命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내 방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겨울을 묵묵히 지낸 한 그루 나무가 봄이면 싹을 틔우고 꽃을 활짝 피워내듯 방황 속에 머물러 있는 내 삶도 끝내는 보석 같은 순간과 마주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