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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다시 생각하며-천년도량해인사의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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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견 - 이병인 1999년 10월 212호
민족의 성지 가야산이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인 골프장이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가야개발 간의 행정소송 중에 있고, 경상남도에서는 가야산의 허리를 자르는 국가지원지방도 59호선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도로가 건설될 경우 가야산을 축으로 하는 순환도로가 생겨 한국불교 최후의 보루인 해인사의 수행환경과 가야산의 자연환경이 파괴될 것은 자명하다. 이에 사부대중의 간절한 발원과 사려 깊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할 때다. 편집자주


여러 해 전부터 사찰 환경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조사를 해 왔다. 그런 일과 관련하여,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일 년에 서너 번은 해인사를 찾곤 하였다.
올해에는 또 기야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도로인 국가 지원 지방도 59호선 문제와 해인골프장 문제 등 현안이 있는 지역을 답사하자는 취지에서 총무원 사찰환경보존위원회의 정기모임을 해인사에서 갖기로 하여 지난 7월에 다시 해인사를 찾았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사찰 예순 곳에서 발생해 온 사찰환경 문제에 관하여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였는데, 특히 최근에 주변에 위락시설을 짓는 바람에 사찰 환경이 쾌 훼손된 울산 가지산의 석남사 스님들도 참석하여 깊은 공감대 속에서 사찰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한 뜻 있는 자리였다.
다음날에는 해인사 지역을 중심으로 가야산 일원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확인하게 되었다. 하나는 가야산 해인사는 종교적인 성지로서 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자연 경관과 문화유적을 간직한 정말 보존하여야 할 곳이구나 하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렇듯 소중한 지역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곳곳이 마구 파헤쳐 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인사 일주문을 벗어나 버스터미널을 거쳐서 마장으로 올라가 보면 이미 그 곳은 실버타운과 채소밭과 주거지로 변해서 조금씩 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을 확언할 수 있다. 보통 큰 절 위에는 암자들만 있는데, 이 곳은 이미 일반 주거 단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답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유역을 경계로 하여 설정되는데 왜 상류 지역인 마장 지역은 중간에서 경계선이 결정되었는지 정말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바로 이 지역은 국립공원 경계 바깥이라서 개발이 자유로운 데다가, 도로 건설 계획은 이 곳을 더욱 확장하여 신부락의 해인 초등학교를 시점으로 하여 확장도로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 도로 건설 계획은 세 해 전에 계획되었는데, 그 설계 과정에서 환경 영향 평가를 실시하던 중에 97년에 해인사 스님들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지난해에 3차에 걸친 공청회가 개최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추진되던 개발 사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스님들의 노력과 전문가들의 자문, 그리고 환경부의 전면 재검토 지시로 인하여 노선을 변경하거나 도로 건설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여름에 경상남도와 합천군에서는 반대하던 몇몇 지역 주민들을 회유하고, 일부 주민들이 원하는 노선으로 국립공원 바깥의 노선만을 수정한 뒤에, 편법으로 환경 영향 평가를 작성하여 놓고는 다시 환경부와의 협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해인사 스님들과 전문가들의 반해가 있었지만, 그들은 공청회 개최를 방해하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리하여 환경영향 평가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몇몇 정책 결정자와 주민들에 의해서 호도된 채로 도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관여해 온 처지에서 보기에는, 이것은 설사 합법적일는지는 몰라도 정책 당국자들의 명백한 부조리이며, 국민에 대한 사기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환경부의 재검토 지시가 국립공원 지역이라는 이유로 도로 건설이 불가능해지니까, 한편으로는 주민들의 반대를 무마하고, 또 한편으로는 편법을 써서 공원 밖의 노선을 먼저 착공한 뒤에, 국립공원 안의 노선은 나중에 추진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 동안 불필요하게 소모한 10억여 원의 설계비를 낭비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다시 수억 원 이상을 들여서 재설계하고 재평가하고 있다.
가뜩이나 길이 나기 무섭게 도로변은 위락시설로 채워지고 있는 터에, 해인사 주변의 도로 건설 문제는 여러 해 동안 끌어 온 골프장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현안의 일로 보인다. 차제에 가야산이 살고 더불어서 해인사도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인사를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해인사를 찾은 적이 있었다. 큰절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새벽 예불을 드리던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른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퍼지는 북소리와 스님들의 예불문 소리,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 된 그 소리는 도량을 가득 채우며 온 산을 감싸안는 듯하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장엄한 우주의 교향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간과 자연이 이루어내는 절묘한 조화의 소리와 율조가 온 주위를 휘어 감으면서 하나로 만들고, 모두 더불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여, 마치 모든 생명체가 안온한 정토의 모습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서서히 어둠이 가시면서 도량이 하나씩 둘씩 모습을 드러낼 때, ‘아, 이곳이야 말로 모든 사람이 가고자 하는 정토淨土로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진리를 찾겠다고 집을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다 보니 결국 마지막에 다다른 곳이 바로 자기 집 뜰이었다는 어느 선시禪詩에서 보여주듯이, 그것이 어느 종교이든지 그 종교의 의식과 시설 속에는 이미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모습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게 되었다. 특히 불교의 수행 도량인 사찰은 불교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의 정토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난30여 년 동안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물질적인 풍요를 얻게 됨과 동시에 사회가 도시화되는 바람에 생활의 모든 면에서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나라 전제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도시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정원이 있고 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고, 대부분은 집안에 화분 몇 그루가 고작인,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대부분이 자연과 흙에서 격리되고 포장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물질적으로는 풍요롭다 해도 정신적으로 궁핍해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자연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사찰은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 첫째는 자연이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에는 어김없이 이름난 사찰이 있다. 명산에 명찰이라고, 그 산의 이름이 높을수록 그 사찰 또한 이름이 높다. 가야산 하면 곧바로 해인사가 생각나듯이 말이다.
사실, 가야산과 해인사를 따로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가야산 해인사伽倻山海印라고 산문에 써 놓았듯이, 사찰은 그 산의 정기를 받으면서 산주山主로서의 역할을 담당

하여 왔다. 단순히 산의 주인이라는 세속적인 소유 관계가 아니라, 천여년 동안 산을 지키며, 산과 더불어서 살아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연 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은 대개가 사찰 인근의 산림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사찰은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앞장서 왔거니와, 사찰과 자연은 더 이상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둘째는 전통이다. 이는 그저 단순하게 문화유적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 사찰이라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근대화의 와중에서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수행에 전념한 스님들에 의해서 불교의 청정한 수행 가풍이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일제 치하와 해방 뒤의 정화를 거치면서 일부 스님들에 의한 종권 다툼과 분쟁도 없진 않았으나, 그래도 한국불교의 수행 가풍은 그 전통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니, 적잖은 올 곧은 스님들에 의해서 전해지고, 지금도 불철주야로 청정한 수행 가풍을 유지하면서 출가 본연의 맑고 청빈한 무소유의 삶을 사는 스님들이 도처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불교의 소중한 전통은 혼탁한 이 사회의 청정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정말 값지게 느껴진다.
그리고 세번째는 유산이다. 사찰은 오늘날 후손들에게 떳떳하게 몰려 줄 수 있는 미래의 유산으로서도 매우 의미가 크다. 깊고 풍요로운 정신 세계를 펼쳐 보이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사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좋은 자연 환경, 그리고 사찰의 건립 이후 조성되어 온 문화유적들이 바로 그 유산에 속한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대부분이 사찰 지역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들이 요즈음엔 무관심과 관리 소홀로 인하여 그 가치도 잊혀진 채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올바른 불교 정신도 찾기 힘들고, 사찰주위의 좋은 자연 환경도 날로 훼손되어 가고, 사찰내외의 문화유적들도 도난 당하고 파괴되어 가고 있다. 만일에 아무런 대책 없이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그 빼어난 정신 세계도, 그 찬란한 문화유적도 조만간에 힘을 앓고 유실되어, 나중에는 역사책 속의 기록으로만 남겨질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도 해인사는 종교적인 성지로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으로서 온전하게 보존시켜 나가야 할, 몇 안 되는 중요한 지역인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늘날 가야산 해인사의 빛나는 변모는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 가야산의 한 기슭에 골프장이 들어서려 하고, 가야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개발 사업으로 산이 온통 마구 파헤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막을 수 없는 세상의 흐름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찌 보면 가야산의 정기와 해인사의 청정한 수행 가풍이 그 힘을 잃어 가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하여 자못 걱정스럽다.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사람들은 큰 산에는 산신령과 호랑이가 있어서 감히 집을 짓거나 산을 훼손하려는 생각을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 산신령도 사라지고, 호랑이도 멸종되었다고 하니 과연 누가 있어 가야산을 지켜 주겠는가?
지금은 해인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야산의 산주로서의 제 역할을 담당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서 앞으로도 시공을 뛰어넘는 무량한 도량으로 보존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