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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지에서의 기록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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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蘭雪軒 - 김선우 2001년 04월 230호
안개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전

내가 아는 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과 바람입니다. 보탠다면 너무 강렬하여 빠닥빠닥하지 않은 빛살, 일테면 새벽빛이나 저녁빛 같은 것. 그리고 나무들.
이른 새벽 피어 오르는 산안개는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참으로 아름다운 경전입니다. 체體를 입었으나 체體가 없는, 가붓하게 제 몸을 띄워 올려 바람의 길 위에 몸을 부린 저 잘디잔 물방울들 사이로 내가 아는 모든 이름들이 스며들고 흘러갑니다.
새벽빛 속에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이 순간, 몸을 띄워 천지 사방 흩날릴 것도 같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멸의 이름으로 산안개는 피어 오르고 까마득히 흩어져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이처럼 지극하게 공양되는 예불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말을 문득 중얼거려 보는 것입니다. ‘나’는 본시 없고 ‘나’가 없었던 적도 없으니….
이 아름다운 예불의 마지막에 즈음하여 나는 참으로 순하여지고 이미 없는, 이미 흩어져 사라진 흔적을 향해 지극한 합장을 올렸습니다. 허공을 향해 드리는 합장. 아, 그러고 보니 이와 비슷한 합장의 기억이 내게 두 번 더 있습니다.
한 번은 운문산 꼭대기의 기도 도량인 사리암에서 입니다. 어머니에서 누이에 이르기까지 이래저래 나는 불연이 깊은 사람이지만 내게 있어 불교의 매혹이란 그 종교적 입성 때문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지극하고 치열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나는 고착된 형상을 입은 절대자를 믿지 못합니다. 붓다도 예수도 참으로 아름다운 구도의 인간들이었으나 그들에게 절대적 신격과 권좌가 부여되는 순간 나는 매혹을 잃습니다. 번쩍이는 금물을 입은 불상이나 북적거리는 십자가의 상징은 이 땅을 지배하는 다른 상징들― 내가 참으로 혐오해 마지않는 부와 권력과 관습의 힘 속에 천박해져가는 여타의 사회적 상징 체계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막연하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주의 도처에서 조용히 여닫히는 어떤 불가지한 힘, 내적 필연성을 지닌 에너지이며 그것은 편협한 인간의 관점이 고착화시킨 절대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삼라만상에 차고 넘치는 불가해한 기운이라고 할까요.
신앙으로 치자면 나는 정령 신앙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풀, 돌, 이슬, … 나무와 바람의 정령들이 만들어 내는 속삭임을 향해 내 귀가 열리고 그 메신저들이 전해 주는 생과 사의 비의를 나는 숨가쁜 즐거움으로 듣곤 합니다.
이런, 사리암 얘기를 하던 참이었지요. 이슬비 내리던 초겨울날, 산꼭대기 암자를 찾아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초겨울 나무들의 벗은 육신이 뿜어내는 향기, 나는 그 뭉클한 냄새를 부표 삼아 장님처럼 산길을 더듬어 올랐지요. 남김없이 버릴 수 있는 자들의 그 소슬하고 고적한 평화로움이라니. ‘버림’을 통해서만 이듬해 소생의 근원을 얻는 이 엄정하고 아름다운 질서라니.
나는 ‘적극적인 가난’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으로 한 계절을 살아낸 이들만이 다다를 수 있는 영혼의 풍요로움. 자작나무 둥치에 오랫동안 이마를 대고 있던 나는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천팔십배 절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내 마음이 그리 시키는 것이었어요.
암자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이나 나반존자 화상 같은 건 내 안중에 없었습니다. 허공을 향해, 겨울로 깊어가는 산과 낱낱이 하나의 우주목들인 헐벗은 순례목들을 향해 드리는 기도였다고 할까요. 어느 틈에 날이 저물고 밤이 깊고 미명이 터오기 시작했습니다. 미명 속에 산을 감싸고 도는 젖줄기처럼 새벽 산안개가 피어 오르고 이런, 말로만 듣던 천팔십배를 내가 행하였구나, 문득 깨달았지요.
아침 공양을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어 오더군요. 아직 어린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리도 간절한 기도를 올리냐구요. 저마다 각각의 소망을 품고 기도하러 온 그들에게 내가 품고 있는 기도의 품목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난처했지요. 내 마음에는 아무런 기원의 말도 없었거든요. 아무런 생각도 일지 않고 허공, 겨울산, 겨울나무의 이미지만 간간이 피어 올랐다 사라지고 ‘평화…’ 라는 말이 몇 번 떠올라 왔을 뿐이었습니다.
허공을 향한 합장의 기억, 그 두 번째는 강릉 사근진 바다에서였어요. 일출을 보고자 했던 나는 사근진 해변, 물 속에 반쯤 잠긴 바위 위에 오두마니 앉아 있었지요.
미명의 때, 청록의 바다가 거대한 가시연잎 한 장으로 화하는가 싶더니 크고 잔 포말들이 연잎 위에 무수히 돋아난 가시들로 하늘을 찔러대기 시작했습니다. 가시에 찔린 하늘이 선연한 핏방울들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고 그 핏방울을 머금어 삼킨 바닷속으로부터 해가, 지금 막 수태되어 찰나의 순간 출산의 문에 다다른 그것이 어미의 살을 찢고 허공으로 던져 올려지고 있었습니다.
아, 나는 그토록 충일한 허무의 의식을 본 적 없습니다. 일출, 나는 그것에서 희망이라든지 시작이라든지 하는 말들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출산되는 저 허무의 납자를 향해, 그 어미인 바다와 허공을 향해 나는 삼배 합장을 올렸습니다. 가여워라, 허무의 납자인 내가 그 절을 받습니다….

수련 : 경계를 떠도는 여행

목우정에 올라갔다가 참으로 어여쁜 수련을 만났습니다. 정자에 오른 누이는 가부좌를 틀고 이내 삼매에 빠지더니 백중날 영가 천도를 위한 독경을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요령이 수련잎 위의 이슬 방울을 털어내듯 울리고 매미 울음이 연못 아래로 가라앉으며 물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는 수련꽃. 수련은 놀라운 환생의 이미지를 내게 보여 줍니다.
진흙 속에 구근을 묻고 잠들어 있던 그것이 물 속에서 깨어나고 자라나 물의 표면으로 떠올라 오기까지, 세 개의 차원을 동시에 치러내는 한 생生의 흔들림. 그 흔들림은 그러나 저의 원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물과 대기의 경계를 부유하며 여리고 상처 입기 쉬운 한 꽃송이를 피워 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리며 저 아름답고 슬픈 꽃의 이마에 조심스레 입 맞추었습니다. 아름답고 슬픈 당신의 이마 위에 고요한 입맞춤을 드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