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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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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1년 04월 230호
방송이 없는 금요일은 아침 시간이 한가롭다. 요즘 나에게 금요일은 꼭 주말 같은 기분이 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에 알맞다. 듣고 싶은 음반 한 장 걸어 놓고 여유 부리면서 시간이 한 시간 남짓 걸려도 섬세하게 연주자의 표정까지 느끼며 감상할 수도 있다. 법당 앞마당을 발끝에 눈길을 두고 걸어도 본다. 괜시리 후원에 가서 ‘점심 메뉴는 뭐 별식이 없느냐’고 참견도 해 본다. 별식이라 해봐야 비빔국수이거나 몇 번씩 냉장고 문을 드나든 나물과 김치 그리고 두부?잣으로 양념을 가미한 야채 만두이거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냉면 정도다. 하지만 시중 식당에서 양념 범벅이 된 맛하고는 견줄 수 없는 담백함이 있어 좀처럼 음식 탓을 하지 않는 나도 가끔은 산중에서 먹던 별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랬겠지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누구누구처럼 되고 싶은 인물도 많았다. 성장하면서 자기의 능력과 한계를 가늠하게 되고 이루지 못할 것은 한 가지씩 가지치기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에 실망과 패배감도 느끼고 체념도 하게 된다. 스님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행자 시절에는 후원에서 음식이나 일에 통달한 실력자인(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원주 스님이나 도감 스님처럼 되고 싶기도 했고, 점점 눈을 뜨고 승가의 위계질서를 터득하고는 출타증이 없이도 출입이 자재한 주지스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강당에 앉으면 경전에 해박해서 어떤 경전을 물어와도 부처님 말씀과 선사들이 남긴 언어의 흔적을 좌로 우로 통달한 대 강백이 되고 싶기도 했고, 선어록에 심취해서는 걸림없이 바람처럼 살다가 멋진 오도송을 남기고 가신 선사의 길을 따르고 싶기도 했고, 설법제일의 부루나존자처럼 대중을 장삼자락에 다 포용할 수 있는 설법의 귀재인 포교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꿈은 잠시, 자신의 한계는 벌써 《치문緇門》을 몇 장 배우기도 전에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제일 잘 행할 수 있고 수행자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은 지난 일이 되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낄 때 나는 그랬다. 산자락을 무심히 넘는 구름 한 점에도 마음이 공허하기도 했고,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한 줌에도 마음이 아렸다. 하루하루 해질녘에는 그냥 하루가 지나는 것 같아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는 괜시리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고여서 도반들 몰래 눈을 부비며 눈물을 훔치는 날도 여러 날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알고 사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생활할 줄 아는 사람, 남의 밥그릇에 침 흘리며 갈증나고 목말라 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주어진 자기 밥그릇에 감사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 잿빛 옷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욕망이 적어 아픔도 절망도 적고, 마음속에 바람이 적어 어딘가를 향한 갈증과 목마름이 없어 하루하루가 충만하다. 단 한 가지 걸어가야 할 영원한 마음의 길은 잊지 않고 있다.

오늘도 내가 정해 놓은 세 가지를 잘 낮추고 살 수 있을지 점검해 본다. 마음을 낮추고, 머리를 낮추고, 눈을 낮추기를… 그리고 부처님 제자로서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에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기를… 그렇게 하루를 걸어가고 싶다. □